영화 <스탠바이 웬디> 포스터.

영화 <스탠바이 웬디> 포스터. ⓒ 판시네마(주)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다코다 패닝의 최근 필모그래피를 보면 과거보다 작은 영화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브레이킹 던>(2012) 이후 그는 작은 영화들에 출연해 흥행 영화와는 다소 멀어졌다. 의도치 않게 동생인 배우 엘르 패닝과 비교선상에 놓이는 경우도 많았다. 어렸을 때부터 연기를 해왔던 두 자매는 어쩌면 부득이하게 서로 경쟁하는 상황이었을지 모르겠다. 엘르 패닝이 주요 흥행작들로 필모그래피를 채워가는 동안 다코다는 작은 영화에 충실했다. 그래서 더욱 한국 관객들과는 멀어졌고 보이지 않으니 존재감도 작아졌다. 그런 그가 <스탠바이 웬디>로 돌아왔다.

자폐증 아이 주변의 상황을 디테일하게 묘사하는 영화

 영화 <스텐바이 웬디> 중에서.

영화 <스텐바이 웬디> 중에서. ⓒ 판시네마(주)


영화 속 웬디는 자폐증을 앓고 있는 소녀다. 소녀라기 보단 이미 성인 나이지만 자폐증 덕에 아직 어리게 느껴진다. 요일에 맞춰서 옷을 맞춰 입고 빵 가게에서 일하는 그는 <스타트렉> 시리즈의 광팬이다. 그에겐 언니가 있지만 여러 사정 상 기관에 맡겨져 교육과 치료를 받고 일상생활도 하고 있다. 거기서 웬디가 하는 생활과 교육 과정의 디테일들, 가족인 언니의 반응을 보다보면 자폐증을 앓고 있는 가족이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지 느껴진다. 그만큼 영화 속의 디테일이 뛰어난 편이다.

자폐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개개인마다 가지고 있는 재능이나 특징이 있을 것이다. 그 점에서는 일반인과 다를 것이 없다. 웬디는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고 시나리오 같은 이야기를 풀어내는 능력이 있다. 스타트렉을 좋아하는 웬디는 스타트렉 팬 시나리오 응모전에 직접 시나리오를 써서 응모하려고 한다. 웬디가 혼자 시설에서 몰래 나와 로스엔젤레스로 향하기 위해 현관문을 나섰을 때 한 걸음, 한 걸음이 두렵기만 하다. 버스 표를 구입하지 못해서 운전기사에게 한 마디 들을 때, 강아지가 버스에서 쉬를 해서 쫒겨났을 때, 나아가는 상황이 막힐 때 마다 감정을 스스로 조절하며 혼잣말로 외친다. 'Please, stand by'.

실종된 웬디를 통해 동생의 존재를 다시 생각하는 언니

웬디가 로스엔젤레스로 가기 위해 분투하는 동안 기관의 원장 스코티(토니 콜렛) 과 오드리(앨리스 이브)는 웬디를 찾게 되는데 그들의 반응도 공감가게 그려진다. 언니인 오드리는 웬디에 대한 미안함과 걱정되는 마음, 한켠으로는 동생에게 완전한 시간을 투자하지 않아도 된다는 후련함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웬디의 실종으로 그가 밤새도록 차로 웬디를 찾으면서 동생의 존재에 대해 다시 생각했을 것이다. 어떤 것이 더 옳은 것일까. 어떤 것이 웬디를 위한 길일까.

어쩌면 영화는 웬디가 자신의 목표를 위해 혼자 로스엔젤레스로 가는 모습을 통해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나 가족들에게 말하고 싶은 지도 모른다. 지금 한 발 밖으로 나가보라고. 지금 그가 하려는 행동을 가만히 지켜보고 격려해 달라고. 자폐증이나 장애아들도 그들이 하고자 하는 일이 있고 목표가 있다. 그 정해진 목표에 따라 자신의 행동을 조금 바꾸기도 한다. 웬디가 로스엔젤레스를 꼭 가야하기 때문에 두려움을 넘어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어떤 요구를 함으로써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된다. 이런 모습이 꼭 장애아들을 위한 것만은 아니다. 우리 모두 두려워 하는 어떤 목표를 향해 한 걸음 나아가는 것을 두려워하고 힘들어한다. 하지만 한 걸음 나아가면 다음 한 걸음이 보인다. 그렇게 나아가다보면 어느 새 목표에 다가간 자신을 볼 수 있다. 그 점에 있어서 우리 개개인은 장애아나 자폐아들과 다른 것은 없다. 다같이 각자의 목표를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간다.

스타트렉의 등장인물이 곧 웬디의 주변인물

 영화 <스텐바이 웬디> 중에서

영화 <스텐바이 웬디> 중에서 ⓒ 판시네마(주)


웬디가 좋아하는 스타트렉 시리즈의 주인공은 커크와 스팍이다. 스팍은 감정이 없는 종족인 벌컨과 지구인의 혼혈인데 감정이 없는 벌컨인과 다르게 감정조절에 어려움을 느낀다. 영화 속 웬디도 감정 조절에 어려움을 느낀다. 참기 힘든 상황이 생기면 머리를 두드리며 화를 낸다. 반면 커크는 스팍과 대립하지만 결국 그를 이해하며 서로 문제를 해결하는 리더다. 스탠바이 웬디에서 커크는 아마도 언니일 것이다. 이성적으로 판단하지만 웬디를 이해하려 하고 결국 문제를 같이 해결하려고 한다. 원장인 스코티는 최근 리부트된 스타트렉 시리즈의 등장인물인 스코티와 이름이 같다. 유머러스 하고 주변에서 도움을 주는 인물인데 역시 웬디를 도와 올바른 쪽으로 이끌어주는 역할이다. 심지어 후반부 만나는 인물은 스타트렉 속 외계어인 클링온 언어를 쓴다. 이런 주변인물들과 스타트렉의 인물들이 연결 되면서 웬디가 시설의 밖을 나가는 것은 지구 혹은 함선의 외부로 나가는 것이 되고 수많은 외부 사람들, 즉 외계 종족들과 접촉한다.

이런 접촉이 늘어나고 해결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지면서 웬디는 이전에는 사람들과 눈도 못 맞췄지만 이야기 할 때 잠깐씩 눈을 쳐다보고 자신의 주장도 자신있게 하려고 애쓴다. 문제가 생겼을 때는 자기 자신을 안정시키며 해결 방법을 모색한다. 웬디가 그런 해결 방법을 생각해 내면서 만나는 사람들 중에는 불친절한 사람도 있고 친절한 사람도 있다. 그중에서도 친절한 사람들은 웬디의 입장에서 이해하려 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웬디의 입장을 잘 알고, 문제가 어떤 것인지 알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웬디에게 접근한다. 마치 스타트렉에서 처음 외계 종족을 만나는 것처럼 그들이 웬디를 다루는 방식은 어린아이에게 하는 모습이라기 보다는 처음 보는 외계인을 접하는 것과 같다. 그렇게 커뮤니케이션을 다른 사람과 하게 되면서 웬디는 외부의 사람들과 교류하는 방법을 배워 나간다.

글쓰는 웬디도, 우리도 계속 한 걸음 또 한 걸음

 영화 <스탠바이 웬디> 중에서

영화 <스탠바이 웬디> 중에서 ⓒ 판시네마(주)


또한 웬디가 시나리오를 쓰고 응모하려고 영화사로 가는 이야기인데, 그런 시각으로 보면 이 영화는 글쓰는 사람에게 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글을 쓰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글에 만족하지 못하고 쓰고 또 고치고 또 쓴다. 그렇게 글을 써서 책을 내거나, 투고/응모를 하고 여러 실패를 만나게 된다. '귀하는 당선되지 못했습니다', '잘 읽었지만, 다음 기회에 뵙겠습니다' 등의 메세지로 수많은 거절을 만나게 된다. 그런 상황 마다 글쓰는 많은 사람들은 좌절하지만 결국 그것을 이겨내고 계속 써가야한다. 글을 써가며 자신의 마음을 정리하고 다잡고 또 그 글로 새로운 목표를 찾아 나아간다. 그런 많은 글쟁이들에게 이 영화는 이야기 한다. 계속 앞으로 나아가라고.

전반적으로 따뜻한 정서의 영화다. 현실적으로 밝은 내용은 아니지만, 영화를 끝까지 다 보게 되면 뭔가 뿌듯함과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 성인이 된 다코다 패닝의 연기 중 가장 좋았던 영화 였고, 그가 연기한 웬디도 무척 사랑스럽다. 영화의 초반에 보는 사람 모두 웬디에 대해 답답하거나 걱정하는 시선으로 보게 되지만 결국에는 마음 놓고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그의 모습을 가만히 보게 된다. 웬디와 같이 동행하는 강아지 피트 역시 너무나 사랑스럽다. 우리 주변의 모든 웬디들이 한 발 한 발 차근차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영화는 다시 한 번 이야기한다. STEP FORW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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