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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형서 <낭만주의>
 박형서 <낭만주의>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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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 머리가 복잡해지는데 재밌다. 생각거리 못지않게 신선한 감성들이 풍성하다. 세태에 스민 고정관념을 지금 여기의 이슈로 버무린 은유가 맛깔스럽다. "모든 사람은 죽는다"거나 "한번 난쟁이는 영원한 난쟁이다" 같은 질긴 단언들을 타성이나 가학성의 속살이 삐져나오는 이야기로 무두질한다. 도로를 질주하다 광염에 휩싸이는 BMW가 속출하는 요즘, 그렇게 인과관계에 골똘하는 이야기를 대하니 반갑다.

<낭만주의>는 박형서의 다섯 번째 단편집이다. 4년간(2014년~2017년) 수확한 6편이 담겨 있다. 객관적 시선으로 문제적 현실을 훑는 탓에 어둡지만, 유머 감각을 품은 문맥으로 지구 근미래의 출구를 탐사한다. 그 구조가 물음의 시선으로 답을 찾는 작가 박형서의 이야기 방식을 대변한다. 그것은 인간의 감정과 본성, 그리고 종 다양성에 대해 신중한 낭만주의적 삶의 태도다.

'개기일식'은 낭만주의 표제에 걸맞은 도입부다. 쿠데타 정국과 이야기란 무엇인가를 연계한 알레고리가 역력하다. 그 연결고리를 "대타한테서 풀카운트에 역전 만루 홈런이 터"진 심야 야구 중계방송으로 삼은 은유 세계는 여러 복선을 장착하여 두텁다. 주인공 화자 성범수는 "역전 우승 소식이 대문짝만하게 실"리도록 한 홍보 총괄 공직자 친구와 동문수학한 사이다.

성범수는 난데없는 "감동의 역전극"이 기획된 "쿠데타"임을 확인하면서 대학의 거물이었던 두 은사를 떠올린다. "칠성장어 최교수"는 "현실의 이야기를 웅변하고 또 이를 실천"해 "사물에게 친숙하고 공명정당한 자리를 배정"하여 개연성을 강조한 반면, "혼자만의 사색과 공상"에 강한 "다슬기 유교수"는"사물에게 낯설고 신비로운 자리를 안내"하여 재미를 역설한다.

이야기란 무엇인가를 탐문하는 성범수에게 두 은사는 이야기 바닥의 태양과 달 같은 존재다. 그러니 두 은사가 학교에서 도태됨은 개기일식 같은 어둠의 시대에 해당한다. 그 어둠과 직면해 성범수는 두 은사의 가르침을 살려 "신중히 지우고 조심스럽게 채운다", 는 이야기 방식을 채택한다. 세계에 대해 질문하고 답하는 장르가 이야기라는 것과, 이야기의 개연성과 재미를 양립시키자는 낭만주의 소설론이다.

그런 관점에서 성범수는 <낭만주의> 작가의 분신이다. 쿠데타에 합류한 친구는 "쓸데없는 거짓말"로 이야기의 진실을 호도하는, 지금 여기의 가짜 뉴스 생산자와 닮은꼴이다. 개기일식 시국에서는 장차 "실패작"으로 판명될 가짜 뉴스들을 논파하는 이야기가 절실하다는 게 성범수의 생각이다. '개기일식'은 그렇게 이야기 근간을 들먹이며 건강한 생태계를 위한 개개인 차원의 저항성을 옹호한다.

<낭만주의>의 특징 중 하나는 동명의 성범수 캐릭터를 여러 작품에서 만난다는 것이다. 능력은 있지만 여성의 눈에는 차지 않는 지질한 모양새를 유지하면서다. '개기일식'과 '시간의 입장에서'가 그렇고, '외톨이'는 똑 그렇지는 않아도 파국적이기는 마찬가지다. 또 하나의 특징은, 엄청 낯선 과학 전문 용어들의 차용이 과학기술의 오·남용에 대한 경각심을 심도 있게 일깨운다는 것이다.

'권태'는 "터무니없이 완고한 전형" 같은 평범한 삶을 문제 삼는다. 권태가 뚜벅뚜벅 내딛는 종희의 삶이 미국의 "아임"('Aim불장난의 악마') 활동과 오버랩 되며 병렬로 전개된다. "모든 사람은 죽는다" 할지라도, 불바다가 되어 사라지는 미국과 암이 번져 죽어가는 종희를 지피는 건 반복된 어리석음이다. 욕심과 권태에 먹힌 어리석은 삶이 고통의 윤회를 낳고, 인생과 지구의 레퀴엠 볼륨을 높인다.

밀림 동굴에서 고립된 채 고열에 시달리는 화자 성범수는 "언젠가 날이 다하면"의 끝판에 있다. 다짜고짜 귀싸대기를 때리고 떠난 아내, "닭고기맛이 나는 유전공학적 농산물"에 불과한 닭의 직계 조상인 "적색야계赤色野鷄"의 멸종, 주겠다던 마지막 적색야계를 죽이고 성범수를 버린 채 사라진 인물 등이 그것이다. 구제역 처리로 묻힌 가축들의 침출수가 환경 재앙으로 떠오르는 요즘, 유전자공학과 종다양성보호가 엇나간 '시간의 입장에서'가 먼 일 같지 않다.

'키 큰 난쟁이'는 애써 잘 키운 부모를 원망하는 장애인 이야기다. "겉보기에 약간 차이가 있을 뿐, 난쟁이도 생각과 감정과 욕망을 가진 똑같은 사람인 것이다"의 가르침이 세상의 음지를 가린 탓에 갑작스레 차별의 된서리를 맞게 해 "전부 망쳐놓았다"는 것이다. 장애인 복지사회도 시급한 과제지만, 오죽하면 그럴까 싶어도 부모의 은공에 대해 악쓰는 마음의 장애가 안쓰럽다.

'외톨이'의 성범수는 "심장이 없는 20대를 보"낸 "김치 냄새 취급을 받던 외톨이들" 중 하나다. 그에게 "마침내 세상에 한 자리 낀 기분"을 안겼던 아내가 바다에서 익사한 후 맞은 인생역전의 성공가도에서 그는 돌연 방향을 튼다. 아내를 앗아간 바닷물 날려버리기에 매달려 지구적 대재앙을 일으킨다. 기상천외한 이야기지만, 날로 증가하는 혼밥 인구 중 성범수 같은 외톨이도 있을 수 있다.

'거기 있나요'는 묵시록을 연상시킨다. '미시우주계 프로젝트'에서 광자 발사를 맡은 "광조교"는 "조작은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프로젝트를 통째로 침몰시킬 수 있는 중대한 연구 윤리 위반"을 내처 행한다. 그 과정에서 공격받은 우수 입자가 "감정의 탄생"을 내비치며 광조교의 행동 강화 조치를 무시하는 "불신자"로 진화한다.

물질에 불과한 상태에서 점차 형태 진화와 정신 진화가 이루어지는 생명계를 선보인 '거기 있나요'는 공포 소설의 고전 <지킬 박사와 하이드>를 떠올리게 한다. 결국 "광조교"는 처벌 받고 프로젝트는 원점으로 돌아가지만, 이미 나는 "불신자"에 압도된 상태다. 혼자 남겨졌을까 싶은 공포감을 이기려 불신자들이 타전한 기호체계 "이봐요. 거기 있어요?"가 장차 인간의 몫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낭만주의>에 실린 6편 중 외따로 존재하는 삶은 없다. 어디에 몸담고 어떻게 살든 개개인은 자기가 속한 세계와 영향을 주고받는다. 4차 산업혁명 버전 이상의 과학 문명 하에서도 인간의 순혈이 유지될 수 있을까. 순혈까지는 아니어도 언제든 양심을 들먹이기를 바란다. 암튼 읽는 중에 폭염을 잊게 한 <낭만주의>는 분명 납량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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