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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영 작가의 <내게 무해한 사람>에는 남성권력으로 고통받는 여성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래서 생각났다. 자매가 있고 여중 여고를 나온 내가 겪은 신체적 남성 폭력.

8살 때 친구 따라 교회에 간 적이 있다. 신나게 찬송가도 부르고, 50원 100원짜리로 헌금도 내고, 초콜릿같은 달달한 간식도 나눠 먹었다. 동네 교회여서 모두 건너건너 아는 분들이었고 교회는 낯설었지만 싫지는 않았다.

예배가 끝나고 혼자 피아노에 앉아서 놀고 있었다. 또래들과 같이 피아노를 치고 놀다가 다들 가 버리고, 가장 어린 내게 건반을 칠 기회가 온 것이었다. 유치원 때 배운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을 치고 있었다. 도레미 솔솔솔파까지 치다가 9살 오빠가 왔다. 얼굴만 아는 사이였다.

"너 피아노 치면 안 돼."
"왜? 싫어. 칠 거야."
"치지 말라고!!"


윽박지르는 게 무서워서 일어났다. 순간 그 오빠는 내 배를 주먹으로 때렸다. 나는 울면서 배를 움켜잡고 그 오빠의 엄마에게 갔다.

"이 오빠가 저를 때렸어요."

더듬더듬 울면서 억울한 상황을 알렸다.

"오빠니까 그럴 수도 있지."

아줌마는 태연한 얼굴로 그렇게 대답했다. 어떻게 집에 갔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또래가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때리고, 어른들이 때려도 되는 권력을 주는 상황이 무서워서 그후로는 교회를 가지 않았다.

10살 때는 방과후에 같은 반 남자아이에게 배를 맞았다. 키도 작고 남자애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없는 아이였다. 옆에 있던 친구들이 나를 부축해서 담임선생님께 갔다. 선생님은 그 남자아이를 혼내셨다.

"여자애들한테 배가 얼마나 중요한데. 나중에 애를 낳아야 하는데 잘못되면 어쩌려고 배를 때려!"

만약 내가 미래에 아이를 낳지 않는다면, 내 배는 어떤 말로 보호될지 상상도 하지 못했다.

14살 때는 친구 오빠에게 맞았다. 친구네 집에서 같이 컴퓨터 게임을 하고 있었는데 오빠가 비키라고 해도 비키지 않았다는 게 이유였다. 장난식으로 우리에게 발길질을 했다. 나는 짐볼에서 넘어졌을 뿐이지만 친구는 몇 차례 더 발길질을 받았고 맞는 것에 익숙해 보였다.
친구는 "오빠들은 원래 이래."라고 했다.

난 그냥 웃었다. 장난으로도 폭력을 쓰는구나. 남성들의 세계는 원래 그렇구나. 그후로 오빠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 없다. 그 오빠는 지금 경찰관이 되었다.

대학생이 되고 사람들은 내게 이상형을 집요하게 묻는다.

한때는 나를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남성에 의한 보호는 어릴 때부터 겪은 남성권력을 상쇄시킬 수 있는 나름 최선의 이용 방법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성애자인 나는 장난으로 "비 오는 날 고속도로에서 멋지게 헬멧 벗고 두 손 놓고 오토바이 타는 남자," "리본 블라우스가 잘 어울리는 박보검, 서강준, 차은우 아니면 안 사귈 거야."라고 말한다.

나는 내가 눈이 점점 높아져서 결국 남성에게는 바랄 수 없는 조건들이기에 연애를 유보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어제 최은영 작가의 소설을 읽으며 깨달았다. 남성에게 바라는 게 많아서 이상형을 이야기 못하는게 아니라, 무언가를 바랄 여유가 없기 때문에 안 하는 것이었다. 남성에게 무언가를 잴 여유가 없다. 남성이 내게 행사한 폭력과 그걸 정당화하는 환경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나의 아주 깊은 내면은 연애는 언감생심이며 내게 호감을 보이는 사람이 제발 나를 때리지만 않길 바라고 있었다. 그 보호기제로 주변에 절대 없는 남성을 찾는 것이다. 그렇기에 "모든 남성이 그렇지 않다"는 얘기는 아무 소용이 없다.

내게 잘해주는 남성도 나를 때려도 되는 권력을 가지고 있다. 별로 친하지 않은 상태에서 예쁘다는 칭찬을 하는 남자들이 결국 항상 나를 이미지로 소비하거나 험담했다는 것도 예시가 된다. 남성이 내게 표하는 호의는 특혜라서, 정당한 권리가 아니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철회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너와 나 똑같이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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