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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초여름 온 나라가 월드컵 열기에 빠져 있을 때 나와 어머니는 대구 경산대학교 한방 병원 앞뜰에서 노을을 구경하고 있었다. 저녁을 마치고 힘겹게 어머니의 용변을 해결하고 나서 한숨을 길게 내신 터였다.

중풍으로 쓰러진 어머니는 오른쪽 팔과 다리를 쓰지 못해서 용변을 보려면 간병인으로서는 초보인 나의 도움에 의지해야 했다. 평생 남을 위해서 사신 어머니는 남은 생을 남의 손에 의지해야 하는 처지가 되어 버렸다.

병원 뜰은 조용했고 아늑했다. 가장 힘겨운 어머니 용변 처리를 해낸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고 저물어 가는 해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머니께서 갑자기 울음을 터트리셨다. 난생 처음 보는 어머니의 눈물이었다. 시골의 종부로 살아오시면서 힘겹고 슬픈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을 텐데 어머니의 눈물은 그때 처음 보았다.

"왜 그러시냐"라고 물을 새도 없이 어머니께서는 당신의 신세를 한탄하셨다. "앞으로 내 밥은 누가 해주나?"라고 하셨다. 어머니는 평생 남의 밥을 해주시고 살았다. 시부모님의 제삿밥은 물론이고 얼굴도 보지 못한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편의 먼 조상 제삿밥까지 불평 없이 평생을 해 오신 분이다. 무슨 말로 위로를 하겠는가? 그저 그런 걱정은 마시라고 거듭 같은 말을 되풀이할 뿐이었다.

표지 그때는 당신이 계셨고 지금은 내가 있습니다 표지 사진
▲ 표지 그때는 당신이 계셨고 지금은 내가 있습니다 표지 사진
ⓒ 어른의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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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석 선생이 쓴 시집 <그때는 당신이 계셨고 지금은 내가 있습니다>를 읽는다.
 <역모>
내일이면/ 엄마는 퇴원한다/ 형제들이 모였다/ 엄마를 누가 모실까/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다/ 큰형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요양원에 모시자/
밀랍처럼 마음들이 녹는다/ 그렇게 모의하고 있을 때/ 병원에 있던 작은 형수/
전화가 숨넘어간다/ 어머니 상태가 갑자기 나빠지고 있다며……./ 퇴원 후 를 걱정하던 바로 그 밤/
자식들 역모를 눈치챘을까/ 서둘러 당신은/ 하늘길 떠나셨다
 

결국 열댓 번 이상의 병원과 거처 그리고 우리 집을 거쳐서 내 어머니는 요양원에 가셨다. 요양원에 가자고 말씀드리던 날 어머니는 한참을 머뭇머뭇하셨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요양원에서 사지를 맘대로 못 움직이는 당신을 누가 돌 볼 것인지 걱정이셨던 게다. 요양원에 가는 날은 함박눈이 내렸다. 내 어머니는 손녀의 손을 꼭 잡고 '엄마 아빠 말 잘 듣고 훌륭한 사람이 되어라'고 하셨다. 당신 입장에서는 유언이나 다름없는 말씀이었으리라.
 <선명한 이유>
여자가 담배 담배 피는 것이/ 흔하지 않던 시절/ 왜 담배를 피냐고/ 당신에게 물으면/
중풍으로 누운 시어머니/ 한여름 방 안 가득 퍼질러진 대소변/ 씻으려 들면 더 번지는/
얼룩 같은 시어머니처럼/ 몸에 배는 역한 냄새 잊으려/ 시어머니 미워하지 않으려/
담배를 물었단다/ 이렇게 선명한 이유가/ 몇 개나 있을까/ 나의 삶에


세상의 맛난 것을 만나면 어머니를 먼저 떠올린다. 요양원에 갈 때마다 내 딴에는 맛난 것을 챙겨간다. 어머니께서 평생 맛보지 못한 과일, 과자를 안고 간다. 시간이 없을 때는 시장통에 가서 흔하디 흔한 떡을 사 간다. 나처럼 속마음을 숨기지 못하는 어머니는 귀한 먹거리를 마다하고 시장에서 산 떡을 유난히 맛있게 드신다. 연신 "네 덕분에 내가 이런 걸 먹는다"라며 칭찬을 거듭하신다. 답답해서 한 소리를 했다.

"그 떡 지겹지도 않소? 제사 모실 때마다 엄마 손으로 매일 하던 떡이 뭐가 그리 맛나오?"

그러고 보니 닭고기, 과자에 치여 나조차도 외면한 떡마저 우리 모친이 드시는 모습을 본 기억이 별로 없다. 내 입속에 넣기에 바빠서 어머니가 드시는 모습을 본 기억이 거의 없다. 떡은 얼마든지 많이 사드릴 테니 부디 오래오래 사시라. 내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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