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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은 유난히 더운 해 같다. 연일 더위 소식을 톱뉴스로 전하고 있다. 그런 탓인지 이즈음 여러 제자들을 비롯하며 지인들의 안부 전화, 문자, 메일이 무척 잦다.

나는 2002년 7월 8일 "일본군 장교는 기념관 세우고, 항일군 총참모장 허형식 생가는 헐려"라는 기사를 쓴 이래 만 15년 동안 1469개의 기사를 썼다(2006.4.이전 기사 587포함). 해마다 100개 가까운 기사를 썼으니 3~4일에 한 개씩 기사를 송고했다. 그랬던 내가 이즈음 기사가 뜸하자 건강에 이상이 있는 줄 알고 안부를 궁금해 하는 것이다.

그 기사에는 내 살아온 인생 역정이 다 드러났다. 그래서 내 기사의 골수 팬 가운데는 한때 내가 길렀던 고양이 카사의 이름도 아시고 지금도 그의 안부를 묻곤 한다. 나는 지난 7월 5일, 그동안 연재했던 '박도 기자의 사진 근현대사 통산 110회'의 대장정을 끝냈다.

애초에는 이 연재 후 '인물 근현대사'라는 연재를 이어가고자 준비까지 했다. 그런데 천만 뜻밖에도 이 무더운 복중에 출판사 측으로부터 집필 요청뿐 아니라, 아예 계약서까지 작성해서 먼 원주 내 집까지 찾아오는데 감동하여 이 여름 그 일에 계속 매달리고 있다.

이즈음 나에게 의뢰해 오는 책 원고들은 '어린이용 독립운동사'이다. 이 얼마나 보람된 일인가. 어린 영혼들에게 우리의 민족혼을 일깨워주고,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겠다고 목숨을 지푸라기처럼 버린 독립전사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일은 그야말로 신명나는 일이다. 대학 시절 강의를 들은 바 있는 강만길 교수님은 내 책 <항일유적답사기> 머리글에 주신 말씀이시다.

"평생 우리 근현대사를 연구하고 가르치다가 이제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우리 역사 교육, 특히 근현대사 교육에 대한 불만은 지금도 여전하다. 남의 강제 지배에서 벗어난 민족사회는 당연히 전체교육과정에서 '민족해방운동사'를 따로 가르쳐야 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못했다."

솔직히 나도 학교에서 근현대사를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내 고향 구미에는 상모동 박정희만 있는 줄 알았지 철길 건너 임은동에 왕산 허위 선생이 있는 줄도 몰랐다. 그리고 33세의 꽃다운 나이로 만주벌판에서 위만군의 총탄을 벌집처럼 맞고 산화한 동북항일연군 제3로군 군장 겸 총참모장 허형식 장군이 구미 금오산 출신이라는 걸 까마득히 모른 채 살았다.

 중국 길림성 부흥향에있었던 청산리전적 나무비
 중국 길림성 부흥향에있었던 청산리전적 나무비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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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까막눈으로 살다가 예순을 앞둔 1999년에 흑룡강성 하얼빈 동북열사기념관에서 그런 사실을 알고서 그 부끄러움으로 그때부터 국내외 근현대사 유적지를 부지런히 찾아 헤맸다. 먼저 호남유적지를 샅샅이 뒤졌고, 중국대륙 항일유적지는 네 차례, 일본 미국 등도 4~5차례, 안중근의 마지막 행장을 뒤쫓고자 러시아 연해주 벌판도 헤맸다.

그렇게 부지런히 쏘다니고 답사기를 썼지만 정작 책을 내고자 하였으나 누가 그런 책을 읽느냐고 출판사들의 문전박대에 얼마나 속눈물을 흘렸던가. 그런 세태 결과, 전과자가, 무수리 같은 여인이 국정을 농단하더니, 전직대통령 두 사람이 교도소생활을 하는 세계사상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부끄러운 나라가 되었다.

사실 그에 대한 책임은 우리 모두에게 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지난 역사를 바로 아이들에게 가르쳐 정의와 양심, 도덕이 강물처럼 흐르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중국 요녕성 왕청문 소학교에 세워진 양세봉 조선혁명군총사령관 석상
 중국 요녕성 왕청문 소학교에 세워진 양세봉 조선혁명군총사령관 석상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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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명장 조선혁명군 사령관 양세봉 장군은 소년 시절 안중근 의사가 침략의 원흉 이토히로부미(伊藤博文)을 하얼빈 역 플랫폼에서 장쾌하게 처단했다는 소식을 듣고, 당신도 그와 같은 인물이 되고자 결심했다고 한다.

나의 은사는 '글쓴이의 가장 바람직한 일은 마지막에 어린이들을 위한 책을 쓰는 일'이라고 말씀하신 바 있다. 내가 이런 일을 할 수 있게 된 그 원천은 마지막 은사이신 이오덕 선생님의 덕분이다. 그 어른은 나에게 우리글을 쉽고 바르게 쓰는 방법을 매우 꼼꼼하고 자상하게 가르쳐 주셨다.

나는 이 여름 비지땀을 흘리는 글 농사꾼으로 어린 영혼을 위한, 역사의 그늘에 가려진 자랑스러운 선조를 드러내고자 한다. 이 일은 하늘이 나에게 마지막으로 맡기신 소명으로 알고 최선을 다하련다.

 아동문학가 이오덕 선생
 아동문학가 이오덕 선생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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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 교단생활 후 원주에서 지내고 있다. 장편소설 <허형식 장군> <약속>, 역사다큐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사진집<지울수 없는 이미지> <한국전쟁 Ⅱ> <일제강점기> <개화기와 대한제국> <미군정 3년사>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