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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를 벗어나 속력을 내 보지만
카잔성당
 카잔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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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가 다음날 호텔에 도착한 건 9시 30분이다. 이 버스는 시내를 돌면서 알혼섬으로 가는 다른 관광객을 태운다. 자리가 남자 시내 중앙에 있는 시장으로 가 남은 좌석을 다 채운다. 차 안에 있던 짐은 버스 위로 올려지고, 포장으로 덮은 다음 끈으로 묶어 고정시킨다.

버스가 이르쿠츠크를 출발한 것은 10시다. 버스터미널을 지나고 카잔성당을 지난 버스는 잠시 앙가라강변을 끼고 달린다. 그리고는 방향을 동북쪽으로 틀어 바이얀다이(Baiandai)까지 내닫는다.

바이얀다이에서 길은 동남쪽으로 이어진다. 중간에 소변을 보고 싶은 사람이 있어 길가에 잠시 차를 세운다. 넓은 들판에 여름철 들꽃이 지천이다. 12시가 조금 넘어 버스는 카페 레스토랑에 정차한다. 30분 시간을 주고 점심을 해결하란다.

샌드위치와 컵라면, 요구르트로 점심을 때운다. 샌드위치와 요구르트는 현지에서 구입했고, 컵라면은 국내에서 가지고 왔다. 점심을 먹고 버스는 바로 출발한다.

알혼섬 가는 길의 목장
 알혼섬 가는 길의 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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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트로바(Petrova)에 이르러 차는 다시 동북방향으로 달린다. 중간 중간 마을, 목장, 들판이 보인다. 선착장인 사휴르타에 이르기 전 버스에 기름을 넣는다. 그것은 알혼섬에 주유소가 거의 없고 기름값도 비싸기 때문이다. 기름값은 ℓ당 40.70∼44.90루블로, 우리 돈으로 계산하면 800원 정도다. 버스는 모스크바에서 온 러시아 가족 관광객을 호숫가 쿠르쿠트(Kurkut) 펜션관광촌에 내려준다. 이처럼 버스는 승객의 목적지까지 운행을 해준다.

쿠르쿠트와 사휴르타(Sahurta)에서 바이칼을 바라보다
바이칼호수 관광펜션촌
 바이칼호수 관광펜션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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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관광객은 우리처럼 알혼섬으로 들어가지 않고 바이칼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무후르(Muhur), 쿠르쿠트, 바자르나야(Bazarnaya)만에서 여름휴가를 즐기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알혼섬의 교통관광 인프라가 열악하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나는 무후르만과 바자르나야만의 경치를 살펴볼 수 있었다. 이곳의 펜션촌과 캠핑촌은 알혼섬의 게스트하우스보다 시설이 훨씬 더 좋아보였다. 10℃에서 20℃ 사이의 서늘한 날씨에서 한여름을 보낼 수 있으니 여름피서지로는 최적지라는 생각이 든다.

사휴르타 선착장에 도착하니 오후 3시가 넘었다. 이제 사휴르타와 건너편 알혼섬의 도마(Doma) 선착장을 연결하는 배를 타면 알혼섬에 들어갈 수 있다. 두 척의 배가 차량과 사람을 태우고 이들 두 선착장을 수시로 왔다 갔다 한다. 배는 차량과 사람을 분리해 태운다. 그러므로 우리는 차에서 나와 선착장 주변을 살펴본다. 이미 차량과 사람을 태운 배가 출발준비를 마쳤기 때문이다. 우리는 건너편에서 오는 다음 배를 탈 수 있다.

바이캉호수를 건너온 연희패
 바이캉호수를 건너온 연희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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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패의 여성춤
 연희패의 여성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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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휴르타 선착장 주변에는 카페와 레스토랑, 기념품점이 있다. 물가 들판에서는 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이곳의 소들은 방목되어선지 아주 편안하고 느긋한 삶을 살고 있다.

시간이 되어 건너편에서 온 배가 도착한다. 그런데 내리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음악과 춤이 어우러진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하는 팀이 앞서고, 춤추고 노래하는 팀이 뒤를 따른다. 앞에서 연주하고 노래하는 사람은 남자들이고, 뒤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사람은 여자들이다.

이들이 입고 있는 옷과 얼굴 모습으로 보아 연희단으로도 보이고 종교집단으로도 보인다. 그런데 그 음악과 춤이 그렇게 신이 날 수가 없다. 배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 선착장에서 잠시 공연도 해준다. 그들이 보여주는 춤과 노래의 몰입도가 대단하고 공연의 수준도 상당히 높은 편이다. 나는 잠시 이들의 공연모습을 비디오로 담는다. 지루하고 힘든 여행 끝에 맛보는 기분 좋은 예술체험이고 감상이다.

바이칼 호수를 건너 알혼섬으로

바이칼 건너 알혼섬
 바이칼 건너 알혼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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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건너편에서 오는 배가 바로 있어 오래 기다리지 않고 배를 탈 수 있었다. 그런데 이건 제대로 된 배라기보다는 일종의 바지선이었다. 관광객을 위한 객실이 따로 없어 차량 밖 빈 공간에 적당히 서서 가는 형태다. 20분도 안 걸리는 짧은 거리라 그런 모양이다. 호수를 건너는 동안 점점 더 짙푸르게 변하는 물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은 수심이 점점 더 깊어지기 때문이다.

바이칼 호수의 수심이 최대 1,642m나 된다고 한다. 또 호수 주위를 해발 2,000m가 넘는 높은 산들이 감싸고 있어 더 깊어 보인다. 그리고 이들 산에는 나무가 없어 비교적 황량한 편이다. 바이칼 호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역사가 깊고 가장 수량이 많은 민물호수로 유명하다. 담수량이 전 세계 민물의 23%나 된다고 한다. 그러나 호수 표면의 면적은 31,500㎢로 세계 7위다. 세계에서 가장 넓은 호수는 카스피해로 바이칼호의 10배도 넘는다.
바이칼 호수
 바이칼 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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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칼 호수는 러시아어로 오제로 바이칼이다. 브리야트어로는 바이갈 누르(Байгал нуур)다. 바이갈은 어머니 자연(Nature)을 말하고, 누르는 호수다. 이 바이칼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으로, 기원전 110년에 발간된 중국의 역사서에 북해(北海)라는 이름이 나온다.

13세기에 나온 몽골의 사서에는 징기스칸의 조상인 천손(天孫) 보르테 치노(Borte-Chino)와 그의 아내 고아 마랄(Goa Maral)이 텡기스(Tengis) 호수를 헤엄쳐 건넌 것으로 나와 있다.

17세기 전반에 나온 <몽골사>에 보면, 징기스칸이 마흔일곱 살에 바이갈 근방에 사는 암바가이 카간(Ambagai-Khagan) 군대를 물리치고, 그 지역을 복속시킨 내용이 나온다. 1740년경 바이칼 지역에 진출한 러시아인들은 브리야트족이 사용하는 바이갈이라는 이름을 이 호수의 이름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바이갈의 의미에 대한 해석은 학자에 따라 다르다.

후쥐르 가는 길
 후쥐르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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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Fire)과 연결시켜 해석하는 학자들도 있다. 바이칼을 연구한 유명한 학자 드리젠코(D. K. Drizhenko)는 바이갈을 불을 다루는 수장(the standing of fire)으로 보고 있다. 일부 학자들에 의해서는 풍요로운 불(rich fire)로도 해석된다. 야쿠트(Yakut)어로 바이가 풍요로움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언어에 집착한 지나친 주장이다.

배가 도마 선착장에 도착하면 배를 내려 다시 버스에 승차한다. 여기서부터 알혼섬의 중심마을 후쥐르까지는 비포장도로를 달려야 한다. 섬은 남고북저형으로 남쪽에 높은 산이 있고, 북쪽에 구릉과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알혼섬의 최고봉은 쥐마(Zhima)산으로 해발 1,274m에 이른다. 길은 비교적 고도가 낮은 지역을 지나 40분 후 후쥐르 마을에 도착한다. 후쥐르는 1,250명 정도의 주민이 사는 알혼섬의 중심마을이다. 주민들은 대부분 관광에 종사하며 산다.

적송과 신목(神木) 세르게(Serge)에서 동질성을 느끼다

후쥐르의 적송
 후쥐르의 적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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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쥐르 마을에서 첫 번째 눈에 띄는 것이 적송(赤松)이다. 껍데기가 붉은 소나무로 줄기가 곧고 가지가 위로 솟아 멋진 자태를 보여준다. 속리산 정이품송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이 소나무들을 통해서 바이칼과 한반도의 식물학적 친연성을 생각할 수 있다. 시베리아 소나무가 한반도까지 전해진 흔적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게스트하우스에 여장을 풀고 바로 후쥐르 마을의 대표 관광지 샤먼바위를 찾아간다.

호수 쪽으로 툭 튀어나온 부르한곶에 두 개의 웅장한 바위가 어깨를 맞대고 서 있는데, 이것이 바이칼 호수의 상징 샤먼바위다. 샤먼은 부족국가시대 지도자 또는 정신적 리더로 하늘의 뜻을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일종의 영적 매개자다. 샤먼바위는 해안 끝에 있어, 언덕을 넘어가야 한다. 샤먼바위 양쪽에는 해변이 형성되어 있다. 왼쪽은 모래사장 해변이고, 오른쪽은 자갈 해변이다. 모래사장 해변에는 여름을 즐기는 수영객들이 있다.
부르한곶의 샤먼바위
 부르한곶의 샤먼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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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을 벗고 물에 들어가 보니 30초도 못 견디겠다. 바이칼의 수온이 10℃도 안 되기 때문이다. 바이칼호는 1월에서 5월까지 얼어붙는다. 얼음이 풀리는 5월부터 수온이 올라가기 시작해 8월에는 14-16℃ 정도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변에는 유람선이 떠 있다. 저녁이 되어 운항을 하지 않지만, 오전과 오후에 한 번씩 하보이(Khoboy)곶까지 운항한다고 한다. 유감스럽게도 이번 여행에서는 유람선을 타보지 못했다.

모래해변에서 언덕을 넘어야 샤먼바위에 닿을 수 있다. 샤먼바위에 오르려면 언덕을 내려간 다음 오른쪽으로 자갈해변을 끼고 호수 쪽으로 나가야 한다. 그러나 바위 꼭대기로 올라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바위 앞 세르게에서 신성한 바위를 올려다보는데 만족한다. 바위로부터 무언가 신비한 기운이 내려오는 것 같다. 누군가 조약돌로 BAIKAL 2018이라는 글자를 만들어 놓았다. 자신이 이곳에 왔다는 흔적을 남기기보다는 바이칼을 알리려는 의도에서 만든 것 같다.
BAIKAL 2018
 BAIKAL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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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갈해변을 지나 다시 언덕을 올라가면 샤먼바위를 내려다 볼 수 있다. 전망이 참 좋다. 언덕 위에는 샤먼이 앉아 백성들에게 하늘의 뜻을 전할 것 같은 공간이 있다. 그리고 그 앞 언덕에는 13개의 신목 세르게가 오색천을 두른 채 서 있다. 이 세르게를 13번째 선신 부르한으로 해석하는 사람이 있다. 부르한은 우리말 밝은 지도자로 단군을 의미하고, 그 때문에 우리 민족의 시원이 이곳이라고 말한다. 문헌과 자료를 통해 더 연구해보아야겠다.


태그:#바이칼, #알혼섬, #사휴르타, #후쥐르, #샤먼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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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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