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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보강 : 8일 오후 3시 13분]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6일 경기도 평택 삼성전자캠퍼스에서 현장 소통 간담회를 마친 뒤, 이재용 삼성 부회장 등 참석자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6일 경기도 평택 삼성전자캠퍼스에서 현장 소통 간담회를 마친 뒤, 이재용 삼성 부회장 등 참석자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기획재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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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이 정부에 화답했다. 8일 오후 삼성이 '경제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 앞으로 3년간 180조원을 투자하고 4만명을 직접 채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역대 최대 규모의 투자,고용 계획이라고 언론이 앞다투어 보도하고 있다.

지난 6일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삼성전자 평택 공장을 방문해 이재용 부회장을 만나 "금년에 제가 18만 개로 일자리 숫자(전망치)를 줄였습니다. 20만 개, 25만 개 나오면 뭔들 못하겠습니까? 제가 광화문 한복판에서 춤이라도 추겠습니다"라고 말한 지 이틀 만이다.

사실 지금 국민들은 삼성 이재용 부회장에게 결코 호의적이지 않다. 비록 2심 재판에서 풀려났지만 그는 박근혜 국정농단 사건의 주요 피의자로서 재판 진행 중에 있으며, 그만큼 삼성은 우리 경제의 구조적인 부패에 있어서 자유롭지 못하다. 혹자들은 삼성이 심판받아야 우리 사회의 경제정의와 경제민주화가 비로소 가능하다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도 경제부총리가 삼성에 가서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 현실. 이는 결국 아직도 우리 사회가 '대기업=고용, 투자'라는 공식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이미 우리 사회가 저성장 시대에 들어섰음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나서 성장시대 때나 가능했던 낙수효과를 떠올리며 대기업들에게 고용과 투자를 요청한 것이다.

과연 대기업들이 돈을 풀면 우리 경제가 나아질까? 국내에 번듯한 일자리가 많이 생기고, 서민들의 팍팍한 삶은 나아질 수 있을까? 이런 답답한 현실을 보고 있자니 문득 예전에 읽었던 책 한 권이 떠올랐다.

작년 여름 이맘때 문재인 대통령이 읽고 SNS에 올려서 화제가 됐던 책, <명견만리 1 -인구, 경제, 북한, 의료 편>이 바로 그것이었다. <명견만리 1>은 이번과 같은 정부의 대기업에 대한 구애가 별반 소용이 없음을 밝히고 있었다.

심각한 인구문제
도서 <명견만리>
 도서 <명견만리>
ⓒ 인플루엔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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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견만리>는 만 리 밖의 일을 훤하게 알린다는 제목답게, 곧 닥쳐올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너무도 당연해서 우리가 일상에서 간과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우리의 삶을 크게 바꾸어 놓을 것들이 위 책의 주요 소재이다.
'소비, 정치,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생겨나는 각종 트렌드는 미래를 향한 여정에서 풍향계 역할을 한다. 따라서 트렌드를 포착하고 이에 숨어 있는 변화의 방향을 읽어냄으로써 사회 전체의 아젠다를 제시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 8p

그와 같은 맥락에서 <명견만리>의 첫 번째 장이 인구라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이는 결국 인구의 변화가 우리의 미래를 좌우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우리는 고령화 사회를 말로만 심각하다고 하고 있지만, 이제 곧 인구절벽은 우리의 현실이 될 것이고, 이는 재앙이 될 것이다.
'인구 정책은 타이밍이 중요하다. 인구변화는 늘든 줄든 추세가 전환되는 데 상당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비용도 엄청나서 단기간에 해결할 수 없는 백년대계다.' – 62p

<명견만리>가 예측하는 고령화 사회는 우울함 그 자체다. 베이비부머 세대는 은퇴 후 30년 넘게 살아갈 걱정을 해야 되고, 그렇게 천문학적으로 늘어나는 고령자에 대한 사회적 비용으로 인해 청년들은 취약계층으로 전락한다. 베이비부머 세대의 자산을 유지하기 위해 청년세대가 빚을 떠안는 것이다.

그 결과 사회는 불황에 빠진다. 구조적인 고통에 직면한 청년들이 결혼과 출산을 꺼리게 되면서 사회는 활력을 잃어버린다. 많은 전문가들은 노인이 늘어나는 만큼 실버산업이 활성화될 것이라고 내다봤지만 고령화 사회에서 실버산업은 생각만큼 크지 않다. 고령화 시대에 소비자를 지배하는 것은 불확실성이기 때문이다. '노후파산'을 고민하는 일본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명견만리>는 그 해답으로서 일자리를 제시한다. 베이비부머 세대가 미래를 위해 펀드나 부동산에 투자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일을 하면서 다른 세대들과 소통하고, 사회는 청년들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명견만리>가 인구 다음 장으로 경제를 거론하는 이유이다.

정글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

<명견만리>는 일자리를 이야기하며 그동안 우리가 믿고 있었던 낙수효과가 더 이상 효용 없음을 이야기한다. 정부는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대기업에게 고용과 투자를 매달리듯 요청하지만 주주자본주의의 첨단에 서 있는 글로벌 대기업에게 이는 소용없는 이야기이다.

현재 그들에게 노동은 한낱 비용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삼성처럼 총수의 구속 여부가 걸려있지 않은 이상 대기업이 정부의 요청에 긍정적으로 대답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게다가 대기업이 고용과 투자를 늘린다 한들 그것이 우리 사회의 전체 일자리를 늘리는 것에 얼마나 도움이 될는지도 의문이다.

실제로 대한민국이 100명이 사는 마을이라면 경제활동인구 62명 중 대기업 근무자는 3명에 불과하다고 하지 않나. 대기업은 자신들이 투자를 하면 새로운 산업이 뜨고 그에 따른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대기업이 동네에서 순대가게를 열고, 사내유보금을 천문학적으로 쌓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대한민국이 100명이 사는 마을이라면 - 132p
 대한민국이 100명이 사는 마을이라면 - 132p
ⓒ 인플루엔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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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IMF에서 눈길을 끄는 보고서가 하나 나왔다. '부의 낙수효과는 없다'는 내용이었다. IMF는 보고서에서 150여 개국의 사례를 분석한 결과, 상위 20퍼센트의 소득이 늘어났을 때는 오히려 경제성장률이 떨어졌고 하위 20퍼센트 소득이 늘어났을 때 경제성장률이 올라갔다고 밝혔다. 신자유주의의 본산이라 할 수 있는 IMF가 낙수효과를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 133p

더 이상 대기업에게 일자리를 기댈 수 없는 게 우리의 현실. 이와 관련하여 <명견만리>는 현재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소비자 운동에 주목한다. 최근 미국의 대표적인 유통기업 월마트는 무조건 싼 제품을 팔던 예전과 달리 미국에서 생산한 제품의 판매량을 늘리고 있다. 이는 일자리를 중요하게 여기기 시작한 미국 시민사회의 시선 때문이다.

미국 시민들이 일자리를 만드는 기업이 누구인지 꼼꼼히 체크하고, 소비를 통해 그들을 지지하는 '소비자 운동'이 광범위하게 일어나면서 미국의 기업들이 생존전략을 바꾸기 시작한 것이다. 자사 제품을 구매할 수 있는 소비자가 있어야 기업의 존재가 가능하다는 깨달음. 그리고 노동이 단순한 비용이 아니라 개인과 사회를 잇는 하나의 장치라는 자각.

<명견만리>는 한때 글로벌 기업 코닥의 도시였던 로체스터를 보여준다. 비록 코닥은 몰락했지만 여전히 로체스터는 활기차다. 코닥이 물러간 자리, 다양한 중소기업들이 들어와 서로 도와가며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대기업에 의존했던 취약한 일자리 대신 다양성이 살아 숨 쉬는 생태계가 훨씬 더 건강하고 안정적인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는 중소기업이 90%가 넘는 독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몇 달 전만 하더라도 70%가 넘는 지지율을 자랑하던 문재인 정부는 현재 경제 때문에 곤란을 겪고 있다. 각종 경제지표가 악화되면서 지지율이 60%대 초반까지 떨어지자 관련 부처가 애가 타는 듯하다. 부총리는 대기업들을 방문하고, 대통령은 규제개혁을 부르짖고 있다. 당장의 성과를 위해 무슨 일이라도 할 모양새다.

물론 단기간의 성과도 중요하다. 그러나 정부는 부디 길게 보고 정책을 세우길 바란다. 앞서 언급했듯이 우리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위기의 입구에 서 있으며, 이를 해결해 나가기 위해서는 거시적이고 구조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는 국민 대다수의 지지를 받아서 탄생한 현 정부만이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저성장 시대에 가장 필요한 변화는 성장에서 성숙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일이다. 1등 밀어주기가 아닌, 상생의 길을 찾아 사회 시스템과 구조를 바꿔나가야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모두가 조금씩 양보하고 타협하며 함께 노력해 나가야 한다.' - 174p

정부 당국자들에게 다시 한 번 <명견만리>의 일독을 권한다.


명견만리 : 인구, 경제, 북한, 의료 편 - 향후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것들을 말하다

KBS '명견만리' 제작진 지음, 인플루엔셜(주)(2016)


태그:#명견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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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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