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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나다에서 스페인 남부 론다로 가는 길은 절경 그 자체입니다. 줄 맞춰 심어진 올리브나무숲이 끝없이 이어집니다. 론다 시가지에 가까워질수록 웅장하고 거친 산악지대가 작은 도시 론다를 둘러쌉니다. 하얀 색의 옷을 입은 집들은 옹기종기 모여 정다운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습니다.

언덕 위의 도시, 론다의 매력

절벽 위에 펼쳐진 하얀 집들이 있는 론다. 아름다운 풍경을 간직한 마을입니다.
 절벽 위에 펼쳐진 하얀 집들이 있는 론다. 아름다운 풍경을 간직한 마을입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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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달루시아 지역 론다는 자연의 신비로움과 인간의 역사가 함께 어우러진 곳이에요. 세계적 시인 마리아 릴케는 조각가 로댕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런 표현을 했어요. '거대한 절벽이 등에 작은 마을을 지니고 있고, 뜨거운 열기에 마을은 더 하얘진다'라고! 지금 우리는 그 아름다운 론다로 가고 있어요."

가이드는 어쩜 이렇게도 멋지게 론다를 표현했냐면서 여기에 올 때마다 새로운 느낌이 든다고 합니다. 론다에 도착하자 과달레빈 강의 오랜 세월 침식작용에 의해 생긴 깊은 협곡 사이에 그림 같은 하얀 마을이 펼쳐집니다. 보기에도 아찔한 120여m의 타호 협곡은 인간이 흉내 낼 수 없는 자연의 신비입니다. 경이로움에 감탄을 금할 수 없습니다.

깊은 협곡의 절벽이 그림 같은 하얀 건물과 어울려 론다를 더욱 아름답게 합니다.
 깊은 협곡의 절벽이 그림 같은 하얀 건물과 어울려 론다를 더욱 아름답게 합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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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안달루시아 지역은 이슬람세력의 지배를 받았던 곳이고, 론다 역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론다는 무어인들이 마지막 요새로 버틴 험준한 산악지대였던 것입니다.

론다 시가지 모습. 거리에는 야외 카페와 음식점이 손님들을 부릅니다.
 론다 시가지 모습. 거리에는 야외 카페와 음식점이 손님들을 부릅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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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3만5천명의 작은 도시 론다는 평균 고도 700m가 넘는 절벽 위에 위치합니다. 이곳 론다에 미국의 대문호 '헤밍웨이 산책로'가 있습니다. 론다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와도 깊은 관련이 있는 곳입니다.

헤밍웨이는 론다에 기거하면서 집필활동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는 스페인내전 당시 타호 협곡에서 많은 사람들이 처형된 가슴 아픈 현장을 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를 통해 전쟁의 참혹상을 고발하였던 것입니다.

헤밍웨이는 말년에 론다에서 당대 최고 예술가 피카소와 함께 투우경기를 즐겼다고 합니다. 헤밍웨이와 피카소 작품 중에 유난히 소가 등장하는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헤밍웨이 작품 중 투우장 소설인 <불파이팅>이나 피카소의 <소의 머리>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스페인에서 가장 오래된 론다 투우장. 60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경기장입니다.
 스페인에서 가장 오래된 론다 투우장. 60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경기장입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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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다 투우장에 있는 투우 청동상. 투우의 역동성이 느껴집니다.
 론다 투우장에 있는 투우 청동상. 투우의 역동성이 느껴집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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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1787년 만들어진 론다 투우장으로 향합니다. 투우장 입구, 거대한 투우 청동상이 우리를 맞이합니다. 투우상에서 거대한 힘의 역동성이 느껴집니다. 론다 투우장은 스페인에서 가장 오래된 투우장이라고 합니다. 지름 66m, 사람들이 꽉 들어차면 6000명까지 수용할 수 있는 규모입니다.

투우의 기원은 농업의 풍요를 기원하기 위해 신에게 숫소를 재물로 바치는 종교의식에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투우는 굶주린 소를 투우사가 흔드는 붉은 색 천을 흔들어 극도로 흥분시키고, 결국 죽이는 잔인한 경기입니다.

투우장에서는 죽음을 앞둔 소의 처절한 비명 소리와 이를 즐기는 관중들의 열광적인 환호가 들리는 듯싶습니다. 투우를 지금 우리의 눈으로 보면 동물학대도 그런 동물학대가 없을 것입니다. 나는 동물보호에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투우경기는 돈을 주면서 보라고 해도 보지 않을 것 같습니다.

비극과 슬픔을 간직하고 있는 아름다움, 누에보 다리

누에도 다리 위. 다라 위만 바라보고 걸으면 여느 다리가 다르지 않습니다.
 누에도 다리 위. 다라 위만 바라보고 걸으면 여느 다리가 다르지 않습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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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일행은 론다를 대표하는 상징물인 누에보 다리에 도착합니다. 누에보 다리는 '새로운 다리'라는 뜻으로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를 이어주는 다리입니다.

높이 98m의 누에보 다리. 비극이 빚어낸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높이 98m의 누에보 다리. 비극이 빚어낸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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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는 웅장하고 견고한 인공적인 건축물이지만, 절벽과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협곡사이에 돌을 쌓아 98m의 높은 다리를 놓았는데, 200여 년 전 건축기술로 어떻게 이런 튼튼한 다리를 놓았을까 하는 놀라움을 자아나게 합니다.

'새로운 다리'라는 이름이 붙은 누에보 다리에는 슬픈 이야기, 두 가지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처음 다리 건축은 1735년 펠리페5세에 의해 처음 제안되었다고 합니다. 8개월 만에 35m 높이의 아치형 다리로 건설되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무너지는 참사가 발생하여, 50여 명의 사상자를 낸 가슴 아픈 사연이 있는 다리입니다.

그 후, 누에보 다리는 스페인 건축가 마르틴 데 알데우엘라가 설계해 1751년 공사를 시작하여 1793년 완공되었습니다. 무려 43년에 걸쳐 튼튼하게 완공한 것입니다. 이런 연유로 '새로운 다리'라는 의미의 누에보 다리라 이름 지은 듯싶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슬픈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완공 단시 건축가가 다리의 측면 아치에 자신의 이름과 완공날짜를 새기려다 그만 협곡 아래로 떨어져 죽은 사고입니다. 40여 년에 걸쳐 완공한 다리가 그에게는 너무도 감격스런 일이었을 텐데, 애잔한 전설 같은 이야기입니다.

아찔한 절벽이 있는 타호 협곡. 바라보는데도 현기증이 느껴질 정도입니다.
 아찔한 절벽이 있는 타호 협곡. 바라보는데도 현기증이 느껴질 정도입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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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일까? 그가 떨어졌다는 다리 아래를 내려다보는 데, 머리칼이 쭈뼛 서는 공포감이 듭니다. 아찔한 협곡 아래를 내려다보는데, 가이드가 우리를 불러 모읍니다.

"다리 한 가운데 저길 주목하세요?"
"어디에요!"
"가운데 작은 창이 보이잖아요!"
"그게 뭔데요?"
"저게 죄수를 가둔 감옥이었다는 거예요."
"감옥이요?"


다리 중앙 아치모양의 창이 있는 공간에 감옥이었습니다.
 다리 중앙 아치모양의 창이 있는 공간에 감옥이었습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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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중앙 아치모양의 창문이 보이는 공간이 감옥이었다고 합니다. 깎아지른 협곡을 잇는 다리에 감옥을 만들어 죄수를 가뒀다는 게 의외입니다. 죄를 짓고 저기에 갔다 오게 되면 다시는 죄를 짓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래를 쳐다 볼 때마다 오금이 저리는 고통이 뒤따랐을 것이니까요. 예전의 감옥으로 사용되는 방은 현재 다리의 역사와 건축에 대한 전시장으로 꾸며놓았다고 합니다. 누에보 다리 위에는 중간 중간 난간이 만들어졌습니다. 협곡 아래를 내려다보도록 한 것 같습니다. 난간이 아주 튼튼합니다.

누에도 다리 철제 난간에 매달린 자물쇠입니다. 어떤 연인의 사랑의 맹세였을까?
 누에도 다리 철제 난간에 매달린 자물쇠입니다. 어떤 연인의 사랑의 맹세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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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제 난간에 누군가가 걸어놓은 굳게 잠긴 자물쇠가 보입니다. 아내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 자물쇠를 달면서 연인들은 어떤 사랑의 맹세를 했을까?"
"글쎄요. 세상에서 하나뿐인 자기 사람을 사랑으로 묶어두려고 했겠죠!"


사랑의 맹세를 자물쇠에 묶어두려는 연인의 마음이 영원히 변치 않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새로운 다리' 난간에 매달아 사랑을 약속했을 자물쇠를 보면서 헤밍웨이 <누구를 위해 종을 울리나>의 영화 속 한 장면에 나오는 대사가 떠오릅니다.

'이 세상에서 너 하나뿐이라서 널 사랑한 게 아니라, 널 사랑하다보니 이 세상에 너 하나뿐이다.'


태그:#론다, #안달루시아, #스페인, #론다 투우장, #누에보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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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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