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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늘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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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수도 워싱턴 D.C. 중심지 내셔널 몰에는 세계적인 규모의 스미소니언 박물관들이 무료로 운영되고 있다. 그동안 노숙을 많이 했으니 워싱턴에서는 빨래도 하고 쉬엄쉬엄 박물관들을 구경하자는 생각으로 다인실 도미토리 숙소에서 나흘을 지냈다.

흑인 세 명과 함께 쓰던 방에 국적이 모호해 보이는 여행자가 들어왔다. 수염과 헤어스타일을 보고 멕시코 사람인가 했는데 웬걸, 엄청난 일본인 모터바이크 라이더였다. '미친 여행자! 괴물 여행자!'라는 감탄이 절로 났다.

 미즈키 씨의 미국 횡단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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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네 살 미즈키 도키타 씨. 스물두 살에 두 달 동안 바이크로 일본을 일주했고, 이후 이 년 동안 모은 여행비로 미국 50개 주를 모두 횡단하는 29800km에 달하는 여행을 하는 중이었다. 나는 버스를 타고 4500km 대륙을 서쪽에서 동쪽으로 겨우 한 번 횡단했을 뿐이다. 미즈키 씨의 계획은 두 달 동안 미국을 다섯 번 횡단하며 또 여러 번 남북을 가로지르는 것이었다. 3주 동안 아직 한 번의 횡단을 했을 뿐인데 그의 팔은 이미 심각하게 타버린 상태였다.

 아리조나를 여행 중인 미즈키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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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뉴욕의 도미토리에서 신용카드를 도둑맞아서 여행을 중단해야 할지도 몰라. 월요일에 일본 은행에 전화를 해봐야 해. 걱정되지만 나는 긍정적인 사람이야. 내 생각에 긍정은 행복이고 인생은 즐기는 거야. 만약에 해결이 안 되면 일단 일본에 돌아갔다가 돈을 벌어서 다시 올 거야. 이건 내 꿈이니까"

'지금은 비트 세대들이 유랑하던 1950년대도 히피들이 자유를 노래하던 70년대가 아니다, 위험하고 시대가 변했다', 라고들 말하지만, 육로 횡단 여행의 꿈과 낭만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아마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지도 모르고, 그러길 바란다.

미즈키 씨가 샌프란시스코에서 3500달러에 중고로 구입한 야마하 V-star 1100 오토바이는 추위와 더위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튼튼한 오토바이라고 한다.

 미즈키 씨의 오토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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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바이는 아무 문제가 없어. 단지 내 몸이 가끔 문제가 생기지. 고등학교 때 영화 <이지라이더>(1969, 데니스 호퍼)를 보고 이 꿈을 꾸게 됐어. 마지막 횡단은 라이더들에게 '어머니의 길'로 불리는 '루트 Route 66'번 길로 할 거야. 시카고에서 로스앤젤레스까지 이어지는 세계 모든 라이더의 로망이지. 바이크에서 맞는 바람은 자유 그 자체야. 다음에는 남미랑 유라시아도 횡단하고 싶고, 언젠가 이스터섬에 가서 모아이 석상을 보는 게 소원이야. 모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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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어. 많이 힘들었지만, 인생을 다르게 사는 계기가 됐어. 슬픈 일이지만 한편으로 좋은 영향을 줬지. 평범하게 일만 하면서 살고 싶지는 않아. 내 형은 나를 답답해하지. 쉽지는 않지만 자유롭게 살 방법을 찾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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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이 넘치는 여행자 미즈키 씨가 앞으로 나의 여행길에서 자주 생각날 것 같다. 나도 2012년 아시아, 인도로 첫 배낭여행을 떠나기 전에 먼저 내 나라를 돌아보고 싶어 고국 남한을 한 바퀴 여행했는데, 서로의 생각이 비슷했다는 것이 반갑고도 신기했다.

 호스텔 뒤 주차장에서 미즈키 씨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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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새벽에 일본의 은행에 전화해서 비상용으로 챙겨온 카드 한도를 변경하는 데 성공한 미즈키 씨는 남은 5주 동안 생각했던 여행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고 고함을 지르며 행복해했다. 다음 날 아침 그는 다시 오토바이를 타고 수도 워싱턴 D.C.를 떠나 웨스트 버지니아주를 향해 떠났다.

'컨츄리 로드 Country Road' 노래를 부르며. 안녕 이지라이더. 무사히 각자의 여행을 마치고 언젠가 다시 만나자.




태그:#모이, #미국횡단, #세계여행, #세계일주, #EASYRI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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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 바다 미륵섬에서 유년기를, 지리산 골짜기 대안학교에서 청소년기를, 서울의 지옥고에서 청년기를 살았다. 2011년부터 2019년까지, 827일 동안 지구 한 바퀴를 여행했다.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 생활놀이장터 늘장, 여행학교 로드스꼴라, 서울시 청년활동지원센터, 섬마을영화제에서 일했다. 영화 <늘샘천축국뎐>, <지구별 방랑자> 등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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