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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미니즘과 섹시즘>
 <페미니즘과 섹시즘>
ⓒ 르몽드디플로마티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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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국무 회의에서 '몰카 범죄 처벌 강화'가 거론되었다. 수많은 여성이 몰카에 대한 공포를 호소해왔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시작되어, 한국에서 서지현 검사가 폭발시킨 '미투' 운동은 젠더 폭력에 대한 문제 의식을 환기했다.

젠더 폭력에 분노하고, 연대의 손을 건네는 사람도 많지만, 피해자에게 '몸 처신'을 운운하는 사람들은 여전하다. 한 인기 걸그룹의 멤버는 <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고 말한 사실만으로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평범한 20대 한국 남성으로서, 무엇을 해야 현실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지 고민하던 찰나였다. <페미니즘과 섹시즘>이라는 책이 눈에 들어왔다.

이 책은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하여 '르몽드 디플로 마티크'에 기고된 글들로 엮어진 책이다. 지젤 알리미, 부르디외, 릴리앙 마티외 등 24명의 글을 모았다. 복잡한 글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읽기에 부담이 없는 문장들이 이어진다.

이 책은 초반부에서 '여성은 여성으로 만들어진다'고 말했던 시몬 드 보부아르, '여권의 옹호'를 외친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여성 운동의 선구자들을 소개하는 데에 힘을 쏟는다. 이와 더불어 페미니즘이라는 주제 의식을 기반으로 의미있는 질문들을 던진다. 지젤 알리미는 '여성의 공직 참여율은 왜 남성에 비해 낮은가'에 대하여 묻는다. (프랑스는 1848년에 '보통' 선거를 도입하였으나, 1944년이 되어서야 여성에게 참정권을 부여했다.)

24명의 필자, 24개의 질문

슬프지만, 그녀의 질문은 우리나라에 적용했을 때에도 유효했다. 1995년 제 1회 지방 동시 선거 이후 여성 광역자치단체장의 비율은 지금까지 '0%'다. 이 퍼센트를 가지고 '여성이 남성보다 능력이 없어서'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 통계 자료는 여성이 온전히 능력만큼 대표되고 있지 못 하다는 사실, 그리고 정당이 남성 정치인만큼 여성 정치인을 육성하지 못한 역사를 입증하는 지표로서 충분하다. 르몽드의 기자인 소피 부불은 프랑스에서 강간 범죄가 가볍게 다뤄지는 현실을 지적하는데, 이 역시 묘한 기시감을 느끼게 한다.

<페미니즘과 섹시즘>은 우리의 생각이 미처 닿지 않았던 부분들을 조명하기도 한다. 플로랑스 보제는 'Black Lives Matter'(흑인의 삶도 중요하다) 운동과 '교차성 페미니즘'을 연관시키면서, 여성의 인권은 인종, 사회적 계급 문제 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강조한다. 마리옹 라비에는 '여성할당제가 특권층 여성에게만 혜택을 주는 미봉책'이라고 말한다. 이외에도 이 책은 성매매 합법화, 에코 페미니즘, 노인 등 다양한 사회 문제로 줄기를 뻗는다.

'남성 지배는 우리의 무의식 속에 깊이 뿌리 내려 더 이상 의식조차 하지 못하게 됐고, 우리의 예상과 묘하게 어우러져 새삼 문제 삼기도 어려운 존재가 됐다" - 피에르 부르디외
여러 단락 가운데에서도, 피에르 부르디외의 글이 인상적이었다. 부르디외는 남녀 차별적인 가치관이 일상적 언어에 깃들어 있으며, 이러한 상징 폭력이 남성중심적 사회의 재생산에 기여한다고 보았다. 그는 차별적 가치관을 형성하는 규범을 'nomos'(과거 소피스트들이 사회, 제도, 도덕, 종교 따위를 자연과 대립시켜 이르던 말 - 역주)라고 표현했다.

이 nomos는 여성과 남성을 가릴 것 없이 많은 이들에게 내면화되어 있을 것이다. '~해야 남자다', '여자는 ~해야 한다'는 식으로 시작되는 모든 문장이 그 단적인 예다. 우리는 당연하게 여겨지던 가치를 해체하고, 물음표를 던져야 할 것이다.

이것이 별 대단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될 수 있다. 그러나 역사의 진보가 시작되는 지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다양한 시대와 세대, 계층에 초점을 맞추던 < 페미니즘과 섹시즘 >의 타임라인은 2018년 대한민국 미투 운동에서 마무리된다. 이 책의 진정한 가치는 다양한 아젠다를 통해 성평등 이슈와 독자 간의 거리를 좁히고, 시야를 넓히는 데에 있다. 그렇게 어제와 오늘, 또 내일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여성들이 '만들어진' 여성성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했다. 가부장제가 가둔 '보여지는 객체'에서 탈피하려는 시도가 지속되고 있다. 여성들은 더 이상 '소비재'이길 거부한다. - 최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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