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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부에서 나온 관리가 원장 수녀를 만나 "노동조합과 좀 협상을 해보시지요."라고 권유했을 때, 그 원장 수녀는 뭐라고 대답했을까요? "예수님도 마귀와 협상하지는 않았습니다."라고 답했다는 것입니다. 한국사회에서는 공부를 많이 했거나 자신이 상당한 교양을 갖추고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 중에도 노동조합을 바라보는 시각이 이런 경우가 많습니다. - 93쪽  

기독교인이라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하종강의 노동 인권 교과서'라는 부제를 단 <우리가 몰랐던 노동 이야기>를 읽으며 가장 마음 아프게 다가온 구절입니다. 노동조합을 마귀와 비교하는 일, 본인은 그럴싸하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말도 안 되는 생각이 아닙니까. 이러한 생각으로 어떻게 노동력을 제공하는 이들과 한 하늘에서 살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위의 이야기는 가톨릭 계통의 한 병원 식당에서 조리 노동자 30명을 한꺼번에 해고한 사건이 있은 후 벌어진 일입니다. 책에 따르면 해고된 노동자들은 해고가 부당하다고 시위를 계속했고요. 100일이 넘어서 부당해고가 인정되어 복직했지만, 사용자 대표인 원장의 말은 우리나라의 노동현장이 어떤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례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반론 말고 저는 기독교인으로 그 원장 수녀란 사람이 종교인이라는 데 주목하고 싶습니다. 교조주의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사람을 사람으로 볼 줄 모르는 전형적인 근본적 종교인의 모습이 아닙니까. 나와 다르면 마귀로 몰아붙이는 현상은 종교적 근본주의자들의 전형적 모습입니다. 사용자 대표인 원장 수녀의 모습이 어찌 그리 기독교 근본주의의 판박이인지 모르겠습니다.

본 회퍼... 미친 운전사는 끌어내려야

전 자꾸 기독교적 관점에서 책이 읽히는군요. 책은 위와 같은 내용뿐 아니라 기독교계 인권운동의 대부라고 할 수 있는 본 회퍼 목사 이야기도 합니다. 본 회퍼는 나치 독일 시대에 인권운동을 하다가 히틀러의 온갖 시달림을 받고 사형 당했던 행동하는 신앙인이었습니다.
제 정신을 잃은 운전기사가 난폭하게 운전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해치고 있다. 그 모습을 보면서 기도하다가 다치는 사람을 돌보는 것만이 목사로서 나의 과제는 아니다. 미친 운전기사의 폭주를 멈추기 위해서는 부득이 폭력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버스에 올라타 미친 운전기사를 끌어내려 운전을 중단시키는 것도 목사로서 나의 과제다. - 27쪽
 
 <우리가 몰랐던 노동 이야기> (하종강 지음 | 나무야 펴냄 | 2018. 5 | 171쪽 | 1만3000 원)
 <우리가 몰랐던 노동 이야기> (하종강 지음 | 나무야 펴냄 | 2018. 5 | 171쪽 | 1만3000 원)
ⓒ 나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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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도 말하고 있듯이 종교가 개인구원이라는 고유의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이런 협의의 사명에도 불구하고 사회구원은 소홀히 해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종교가 개인구원이라는 자기 도그마에 빠지면 보편적 인간 사랑이라는 본질적 사명을 못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의 아집과 독선이 이미 역사적으로 얼마나 많은 마녀사냥에 자신의 종교적 도그마를 무기로 사용했는지는 역사가 익히 잘 알려주고 있습니다. 개인구원이나 기도생활 못지않게 불합리한 사회 문제에 뛰어들어야 할 사명이 종교에 있고 더군다나 기독교에 있습니다.

그런 의미로 보아 앞에 등장한 원장 수녀와 본 회퍼는 본질적으로 대비됩니다. 하나는 종교적 도그마에 갇혀 사람을 보지 못한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도구마를 탈출하여 인간을 본 경우입니다. 기독교나 다른 종교가 강조하는 신본주의의 문제를 빗겨가는 논리는 아닙니다. 신본주의냐 인본주의냐로 대비하는 논조 자체가 종교적 담론의 모순일 수 있으니까요.

노동력은 인간이 제공하는 것입니다. 노동현장은 고용인이 되었든 피고용인이 되었든 인간이 제공하는 노동력이라는 기본 재화가 있을 때 가능합니다. 노동 이야기는 바로 이런 현장의 이야기입니다. 책은 노동문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조적 문제라고 잘라 말합니다.

노동 문제는 사회구조적인 문제

동감합니다. 그러기에 앞의 두 예에서 본다면, 원장 수녀와 30명의 해고 노동자 간의 문제라기보다 그 현장인 병원, 다 나아가 다른 병원이나 우리 사회 전반에 대한 사회구조적 문제라는 겁니다. 본 회퍼와 히틀러 개인 간의 문제가 아닌 것은 삼척동자도 알 겁니다. 종교적 도그마는 바로 이런 관점을 희석시키는 일등공신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노동문제 뿐 아니라 사회문제 전체를 구조적 관점에서 다뤄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의도로 읽힙니다. 저자는 '근로자'와 '노동자'라는 말도 해석합니다. 근로자란 '근면하게 일하는 사람'으로 알고 있고, 노동자는 '자기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으로 쓰인다고 말합니다. 이런 해석은 우리나라 노동자들이 얼마나 부정적으로 국민들에게 알려지고 있는지, 언론이나 교육의 잘못이라고 지적합니다.

노동쟁의를 알리며 매스컴은 '귀족노조'라는 말을 쓰는 걸 자주 접하는데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은 실제로 중고등학교 교과서를 분석한 자료를 제공합니다. 교과서 62권(1만7060쪽) 중 노동을 다룬 내용은 1%도 안 되는 159쪽이라고 말합니다. 그것도 '시민의식'이나 '인권', '경제주체' 등을 배우면서 언급되는 수준이라고 합니다.

독립적으로 노동이나 노동조합 등에 대하여는 가르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심지어는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주는 교육 내용이 많다고 합니다. 책은 노동문제와 교육문제는 심각할 정도로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주장합니다. 교육문제를 해결하려면 노동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도 말합니다.

중고등학생들을 만나 조사해 보면, 학교에서 선생님들로부터 "우리나라는 노동기본권이 과도하게 보장돼 있어서 경제 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거나, "기업이 살아야 노동자도 산다."고 배웠다고 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 67쪽  

그래서 저자는 노동운동이나 노동조합 등 노동현장의 문제는 사회구조적으로 다루지 않으면 해결점이 없다고 말합니다. 사회 전반적 구조전환이 노동문제를 해결하는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는 저자의 주장은 미봉책으로는 노동현장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비정규직 문제, 최저임금 문제 등 산적한 노동현장의 문제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구조적 결함과 연결되었다는 것입니다.
개인의 노력으로 바뀌지 않는 일들은 사회 구조를 개선함으로써 해결할 수밖에 없습니다. 2017년 촛불 집회에 수많은 사람들이 나온 이유도 그와 같습니다. '아니 먹고살기도 바쁜 세상에 왜 한가하게 이런 데 나와서 난리야?'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도 많지만, 법과 제도를 바꿔서 사회를 구조적으로 변화시켜야만 해결되는 문제들이 있는 것입니다. - 36쪽  

문재인 정부를 '친노동자 정부'라고 비아냥대는 이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사회구조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저자의 논리가 허망하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독일, 스웨덴, 덴마크 등 선진국들은 군인노조가 결성되어 있을 정도로 노조활동이 활성화되어 있습니다. 노조 탓에 회사가 안 되는 게 아니고 노조 탓을 하기에 회사가 안 된다는 인식이 필요합니다.

노동, 노동자, 노동조합에 대한 인식이 필요한 모든 이들에게 권합니다. 사용자나 정부, 국민은 노동자가 '마귀'가 아니라 대화의 대상이며 같이 이 땅에서 살아가야 할 우리 이웃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우리가 몰랐던 노동 이야기> (하종강 지음 | 나무야 펴냄 | 2018. 5 | 171쪽 | 1만3000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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