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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든 남성을 주로 칭하던 말 '꼰대'. 하지만 꼰대는 성별과 나이를 가리지 않습니다. 최근에는 '젊은 꼰대'라는 말도 생겨나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고 있습니다. '나도 젊은 꼰대였다'는 고백부터, '젊은 꼰대 되지 않는 법'까지. 2030세대의 이야기를 싣습니다. [편집자말]
최근 학원에서 중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아직 20대인데다 여전히 컴퓨터 게임도 좋아해서, 학생들과 금방 가까워질 거라 생각했다. 오산이었다. 난 내가 학생 때 가졌던 생각이나 느낌을 잘 기억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나도 싫어하던 선생님, 좋아하던 선생님이 있으니까 그것만 기억해도 잘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할수록 자신이 없어진다.

나도 초등학교, 중학교 다닐 때 욕 엄청 많이 했는데, 학생들 욕하는 거 들으면 그렇게 거슬릴 수가 없다. 고등학교 3년 다니면서 한 시간 내내 수업에 집중한 건 몇 번 되지 않을 것 같은데, 내 수업에 들어오는 학생들은 당연히 그럴 수 있고, 그래야 한다고 나도 모르게 생각하고 있다.

그들과 어떻게 나쁘지 않은 관계를 맺어갈 수 있을지 하루에도 몇 번씩 고민한다. 무슨 말을 할 때마다 애들이 꼰대라고, '노잼'(재미가 없다는 뜻)이라고 생각할까 두렵다.

나이 권력을 그렇게 싫어하던 내가

 나도 얼마든지 꼰대일 수 있음을 처음 깨닫게 된 건 5년 전이었다
 나도 얼마든지 꼰대일 수 있음을 처음 깨닫게 된 건 5년 전이었다
ⓒ SBS 화면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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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얼마든지 꼰대일 수 있음을 처음 깨닫게 된 건 5년 전이었다. 스물넷이던 나는 청년연대은행이라는 단체에서 일했다. 어느 날은 당시 청소년이던 젊은 여성조합원이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나보다도 열 살 이상 많은 남성조합원에게 "야, OO(별칭)!"하고 스스럼없이 반말을 했다.

제대한 지 1년도 채 안 된 데다 아직 별칭문화에도 익숙하지 않았던 난 화들짝 놀랐다. 놀란 사람은 나뿐인 것 같아 겉으론 태연한 척했다. 당사자들은 그저 일상적인 만남이었으니 아마 기억도 못할 거다.

평등한 관계를 바란다고 머리로 생각하고 말도 했지만, 동갑인 친구들을 제외하곤 평등한 관계를 겪어본 적이 없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그 젊은 조합원과 두세 번 더 만난 뒤에는 내가 먼저 말 편하게 하자고 제안해서 서로 반말을 쓰게 됐다. 내심 뿌듯해하며 난 참 열린 사람이라고 은근히 생각했던 것 같다. 푸하하!

같은 해에 청년유니온이라는 우리나라 최초의 세대별 노동조합에도 조합원으로 가입해 활동하기 시작했다. 거기서 김민수 전 위원장(당시는 기획팀장)을 알게 됐는데, 그가 그 해 9월, 그동안 자신이 겪고 공부한 것과 청년유니온에서 노동상담했던 경험을 살려 <청춘이 사는 법>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반드시 알아야 하는 근로기준법과 기본적인 임차인 권리, 대출과 금융 관련 상식까지 사례와 함께 정리해 놓아서 처음에도 퍽 재밌게 읽었고, 그 뒤로도 집을 구한다든가 할 때마다 유용하게 참고한 책이다.

그런데 이 책이 나왔을 때, 책도 김민수 전 위원장도 좋아서 진심으로 기쁘면서도 묘한 열등감을 함께 느꼈다. 다른 것 때문이 아니라 나는 90년생인데, 그는 91년생이기 때문이었다. 그것 때문에 열등감을 느낀 게 아니라고 믿고 싶지만, 다시 돌이켜봐도 그가 나보다 한 살이라도 형이었다면 그런 감정이 생기지 않았을 것 같다.

속된 말로 찌질한 감정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김연아 선수가 나랑 동갑이라는 점만 떠올려 봐도 이게 얼마나 웃긴 일인지 알 수 있다. 나보다 먼저 태어났건 나중에 태어났건 다른 사람이 대단하다고 해서 내가 일일이 열등감을 느낄 필요는 없는 거였다.

 그런데 그해 말, 내가 꼰대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건이 벌어졌다
 그런데 그해 말, 내가 꼰대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건이 벌어졌다
ⓒ 김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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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만 해도 그럭저럭 괜찮았다. 뭐, 사람이 완벽할 수는 없잖은가. 그런데 그해 말, 내가 꼰대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건이 벌어졌다. 어느 날, 매일 지나던 홍대입구역의 광고판에서 "꿈이란 건 말이지, 삶을 살아가는 자세를 말하는 거야. 그래서 내 꿈은 힙합이야."(김수연, <브라더 케빈>)라는 문장을 만났다.

광고판의 문장이 너무 좋아서 출근할 때도, 퇴근할 때도 자꾸만 쳐다봤던 기억이 선명하다. 정작 책을 사지는 않고 매일 한 문장만 음미하던 어느 날, 드디어 인터넷에 김수연 작가를 검색하기에 이른다.

'김수연, 1991년생, 모 출판사 대학소설상 수상.'

고백컨대, 검색결과에서 그의 출생년도를 본 순간 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이랬다. '91년생? 나보다도 어린데 인생에 대해 알면 얼마나…….' 다음 순간, 그런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을 깨달았다.

내 머릿속에서만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니 당연히 아무도 모르는데 어딘가 숨고 싶어졌다. 그때 알았다. 내가 꼰대라는 것을. 나는 진짜 아닐 줄 알았다. 남들이 다 나이 먹으면서 꼰대가 되어가도 나는 안 그럴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열심히 나이를 더 먹을 것도 없이 스물넷에 이미 꼰대였던 거다.(오 마이 갓!)

나는 꼰대, 나이권력, 정말 싫어한다. 고등학교, 대학교, 군대에서 선배, 선임들 행동이 정말 이해가 안 됐다. 그때는 나는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이제와 냉정히 생각해보면 과연 후배들, 후임들 입장에서 얼마나 달랐을까.

싫어하니까 나는 당연히 그것과 거리가 먼 사람일 거라는 믿음은 또 얼마나 순진했던가. 여러 사람 덕에 스물넷을 지나던 그 해에 순진한 믿음은 산산조각 났다. 더 슬픈 건 이걸 깨달았다 해서 갑자기 꼰대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었다.

대체 나는 왜 꼰대가 된 걸까

 그럼 대체 나는 왜 꼰대가 된 걸까?
 그럼 대체 나는 왜 꼰대가 된 걸까?
ⓒ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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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대체 나는 왜 꼰대가 된 걸까? 흔히 나이 먹으면서 꼰대가 된다고들 한다. 과연 나이를 먹으면서 그렇지 않았던 사람의 성격이나 행동이 꼰대처럼 변하는 걸까? 아니면 원래 꼰대 태도를 지니고 있었는데 힘이 없어 꼰대 짓을 못하다가 나이권력을 획득함으로써 그게 드러나는 걸까?

꼭 어느 한쪽이라기보다는 둘 다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아무래도 오래 살고 많은 경험을 하면서 그것들을 기억하고 있다 보면 아직 경험하지 못한 사람에게 할 말이 이것저것 생기게 된다. 말하자면 꼰대질의 재료를 갖추는 것이다.

하지만 부뚜막의 소금도 집어넣어야 짜듯, 경험이 많다고 꼭 꼰대가 되는 건 아니다. 또한 꼰대질 사례를 살펴보면 본인이 직접 경험해보지도 못한 일을 심지어 그걸 직접 경험해본 사람에게 설교하는 일도 자주 벌어진다.

검색만 하면 겉핥기식 지식과 온갖 영상 등 간접경험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요즈음에는 이 '안다는 착각'과 그에 따른 꼰대질도 새로운 경지로 나아가고 있는 듯하다.

제대로 공부한다면, 공부를 하면 할수록 내가 아는 게 얼마나 적은지를 알게 될 확률이 높다. 세계사에 손꼽히는 천재, 우주에 대한 인류의 이해를 한 차원 끌어올린 아인슈타인조차 당대 다른 과학자의 일부 연구, 우주가 팽창한다는 사실 등에 대해 잘못된 예측도 했다. 블랙홀의 존재에 대한 수학적 증명을 보고, 계산은 맞지만 현실적으로 이런 이상한 건 존재하지 않을 거라 의심한 적도 있다. 그 유명한 천재가 자기 전문분야인 물리학 분야에서조차 틀리게 말한 것들이 있는 것이다.

언제든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감각, 그리고 실은 삶의 많은 문제에서 맞고 틀린 게 없고, 서로 다른 것뿐이며, 그걸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할 수 있는 예민함이 있다면 꼰대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

 그럼 왜 이렇게 꼰대가 되는 걸까? 내 생각엔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나 가지고 있는 자기표현욕구와 존재감 때문인 것 같다
 그럼 왜 이렇게 꼰대가 되는 걸까? 내 생각엔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나 가지고 있는 자기표현욕구와 존재감 때문인 것 같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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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걸 머리로는 모르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자기 입으로 다름을 존중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은 본 일이 없다. 그럼 왜 이렇게 꼰대가 되는 걸까? 내 생각엔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나 가지고 있는 자기표현욕구와 존재감 때문인 것 같다.

누구나 작게는 내 감정, 내 생각을 표현하고, 나아가 재밌는 이야기, 기발한 아이디어, 인류에 도움이 될 연구 성과, 누가 봐도 아름답고 환상적인 소리나 몸짓 등을 만들고 표현해내고 싶어 한다. 거기서 인간은 자신의 존재감을 느낀다.

이 자기표현욕구 실현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이 무엇일까? 바로 들어줄 사람이다. 어쩌면 우리에게 가장 부족한 것 가운데 하나도 바로 이것이 아닐까? 아무리 알찬 내용을 멋진 방법으로 표현한다 해도 들어줄 사람이 없다면 재미없다. 가장 만만한 게 바로 나이 또는 직급 때문에 내 말을 함부로 끊거나 무시할 수 없는 이들이다. 적당히, 건강하게 의사소통한다면 문제 없겠지만 일방적으로 자기표현만 하고, 자기 존재증명 욕구만 채우면 바로 꼰대가 된다.

인간은 오랜 기간 자신이 속한 사회의 문화와 교육을 통해 길들여지는 사회적 동물이다. 자신을 표현하고 의사소통하는 방법 역시 대체로 자신이 사는 사회와 학교에서 배운다. 그러나 우리 사회와 교육현장에서 존중하고 배려하는 건강한 의사소통을 겪고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있나?

내가 꼰대를 만나기 싫다면 나부터 꼰대가 되지 말아야 한다. 작가가 나보다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그토록 멋진 문장이 빛을 잃는 것처럼 느껴지던 그 순간을 잊지 않고 있다.

내가 되고 싶었던 어른의 모습과 지금 나 자신이 얼마나 다른지 잊지 않으려 한다. 꼰대가 아닌 멋진 어른이 될 수 없다면, 적어도 내 안의 꼰대를 조심조심 돌보며 평생 꼰대가 아닌 척이라도 열심히 하며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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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던 대학을 그만두고 서울에서 이런저런 활동을 하다, 지금은 홍천에서 자연농을 배우고 있는 한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