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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배경으로 나열된 검정 '우산'들
 하늘을 배경으로 나열된 검정 '우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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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두 기사(성소수자에 대한 오해와 진실 ③ '양성애' 편 (상), 성소수자에 대한 오해와 진실 ④ '양성애' 편 (하) )를 통해 우리는 양성애, 그리고 그와 함께 바이엄브렐라 아래에 속하는 정체성들인 다성애와 범성애 등의 정의와 그에 대해 사람들이 흔히 가지고 있는 편견, 그리고 그 편견으로 인해 일어나는 각종 영향들에 대해 알아보았다.

바이엄브렐라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들이 그들의 정체성을 독립적인 하나의 정체성으로 보지 않는 것으로 인해 발생한다면, 이번 기사에서 다룰 이들이 겪는 어려움은 그 정체성 자체가 알려지지 않고 무시되고 있기 때문에 생겨난다. 이들은 바로 '무성애', 또는 그것이 포함된 '에이엄브렐라' 아래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1. 무성애와 에이엄브렐라

무성애는 영어로 표현하자면 에이섹슈얼(Asexual)인데, 접두사 에이(A-)는 명사나 형용사, 부사 앞에 올 때 '부정'의 의미를 덧붙이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무성애(=에이섹슈얼)는 섹슈얼한 끌림을 느끼지 않는다는 의미를 가짐을 알 수 있다.

'에이엄브렐라(A-umbrella)'란 무성애와 비슷하다고 여겨지는 정체성들을 모아 칭하는 단어다. 말 그대로 무언가를 '느끼지 않는', 또는 그것과 비슷한 성향을 가지는 정체성들이 해당되는데, 예를 들자면 로맨틱한 끌림을 느끼지 않는 에이로맨틱(Aromantic)이나, 다음과 같은 접두사들이 붙는 정체성 등이 있다.

● 그레이(Gray-) : 드물게 (로맨틱/섹슈얼) 끌림을 느낀다.
● 데미(Demi-) : 강한 유대감을 느끼는 상대에게만 끌림을 느낀다.
● 프레이(Fray-) : 낯선 상대에게만 끌림을 느낀다. 친밀해질 경우 끌림도 사라진다.

이 외에도 에이스플럭스(Aceflux ; 에이엄브렐라 아래의 정체성으로 정체화하나 그 안에서 변화를 겪음) 등의 정체성들이 에이엄브렐라에 포함된다.

이 기사 내에서 무성애라는 단어는 오직 에이섹슈얼만을 일컫는다.

2. 무성애자는 사랑을 하지 않는다?

무성애자가 '사랑'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성애자에 대한 가장 흔한 오해 중 하나이다. 사실 이것은 사랑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정의하냐에 달려 있기도 하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사랑이라는 단어에 다음과 같은 뜻이 있다고 말한다.

「1」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
「2」어떤 사물이나 대상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거나 즐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
「3」남을 이해하고 돕는 마음. 또는 그런 일.
「4」남녀 간에 그리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 또는 그런 일.
「5」성적인 매력에 이끌리는 마음. 또는 그런 일.
「6」열렬히 좋아하는 대상.

이 중, 무성애자가 하지 않는 사랑은 「5」 하나뿐이다. 위에서 이야기했듯 무성애는 에이섹슈얼로, 성적인 끌림을 느끼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의 다른 정의대로 어떤 존재를 아낀다거나, 남을 이해한다거나 하는 일에는 다른 것이 관여할 것이다. 예를 들어 로맨틱한 끌림을 느끼는지에 대한 것은 무성애자의 로맨틱 끌림 관련 정체성이 관여한다 (에이로맨틱인지 아닌지 등).  따라서 무성애자라고 사랑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3. 무성애자에게는 성욕이 없다? 또는 성행위를 하지 않는다?

무성애자라면 무조건 하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일은 한 가지 더 있다. 바로 '성행위'다. 많은 사람들은 성적 끌림과 성욕을 동일시하여 둘 중 하나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나머지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성욕을 성행위와 동일시하여 성욕이 있으면 성행위를 반드시 할 것이라는, 또는 성행위를 하는 것은 성욕이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것은 모두 잘못된 생각이다. 성욕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성적 끌림을 느끼지 않을 수 있으며, 성적 끌림 없이도 성행위는 가능하고, 성욕과 성행위는 별개의 것이기 때문이다.

성욕과 성적 끌림의 관계에 대해서는 식욕을 예시로 들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우리가 식욕을 가지고 무엇을 먹고 싶다고 해서, 꼭 그것을 남과 함께 먹을 필요성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다. 성욕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에게 무언가가 있다고 해서, 그것을 꼭 외부로 표출하거나 (식욕의 경우에는 음식을 먹는 것, 성욕의 경우에는 성행위) 남과 함께 공유할 (여럿이서 같이 먹는 밥, 타인과 함께하는 성행위) 필요는 없는 것이다.

또한 성적 끌림이나 성욕이 꼭 성행위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혹은 성행위가 그 둘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는 생각은 성소수자 담론 밖에서도 꼭 필요한 것이다. 성적 끌림이 없이도 성행위는 할 수 있으며, 이것이 강제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바로 성폭행이다. 그런데 성적 끌림이나 성욕이 성행위의 전제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성폭행 피해자에게 '네가 원했던 것 아니냐'며 2차 가해를 저지르고는 한다. 그 때문이라도, 이러한 사고방식은 바로잡아져야 할 것이다.

4. 사랑을 경험한 적이 없기 때문에 무성애자가 된 것이다?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로 사랑을 경험한 적이 없기 때문에 무성애자로 정체화했을 것이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상대를 무시하는 오만한 말이다. 자신에게 있는 경험이 타인에게 없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그 사람을 미성숙하다고 여기는 것이며, 그 미성숙함을 전제로 그 사람이 '정체성을 잘못 골랐다'라고 생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저 생각이 옳다고 여길 수도 있다. 특히 어릴 시절의 정체화라면 어리기 때문에 그 선택에 충분한 근거가 없다고 생각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 점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어떤 사람이 자신을 어릴 적부터 이성애자라고 여겼다면, 우리는 그 사람의 정체화에 아무런 의문을 품지 않는다. 그런데 그 사람이 자신을 무성애자, 또는 동성애자나 그러한 다른 정체성으로 정체화한다면 왜 그 사람의 정체화를 섣부르고 불완전한 것으로 여기는 것일까? 단지 이 사회 구성원의 '일반적'인 모습에서 벗어난 정체화라고 해서 그것을 무시할 권리가 우리에게는 존재할까?



태그:#성소수자_오해와_진실, #성소수자, #퀴어, #무성애, #에이엄브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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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길냥이 집사이자 사회적 소수자. 제 시점의, 제 이야기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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