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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일부 애호가가 지지해온 마이너 장르에 불과했던 좀비물은 어느덧 메이저의 범주에 올라왔다. <워킹데드>, <바이오해저드> 등 좀비를 소재로 한 드라마와 게임이 성공을 거뒀고, 한국에서도 한국 최초의 좀비 블록버스터 <부산행>이 11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모으며 흥행에 성공했다.

<국제정치이론과 좀비>를 쓴 대니얼 드레즈너에 따르면 모든 좀비 영화 중 1/3 이상이 과거 10년간 나왔고, 좀비는 지난 10년간 종말 이후 세계를 그린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소재가 됐다.

 <좀비 사회학> 표지.
 <좀비 사회학> 표지.
ⓒ 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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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문예평론가 후지타 나와야는 <좀비 사회학>에서 이 같은 좀비 현상이 현대사회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좀비를 이해하는 것은 곧 좀비를 만들어내는 우리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의 현실을 이해하는 것"(10쪽)이라며 정치·사회, 과학·기술, 신체·생사라는 세 영역에 초점을 맞춰 좀비 현상, 나아가 현대 사회를 분석한다.

좀비 포맷은 신자유주의의 산물

후지타 나오야는 세계적으로 좀비 붐이 일어난 이유를 좀비 포맷을 통해 설명한다. 좀비 포맷은 '세계는 지금 좀비투성이가 되었고 정부는 이미 붕괴했으며 사람들은 후퇴전을 해야만 하고 줄어드는 자원을 서로 빼앗으면서 살아남기 위해 방벽을 만들어 그 안쪽에서 농성을 한다'는 부류의 이야기다. <월드워Z>, <퍼시픽 림>, <혹성 탈출: 반격의 서막> 등이 좀비 포맷을 활용한 작품이다.

이 좀비 포맷에서 좀비를 다른 단어로 바꾸면 이야기는 현실과 비슷해진다. 좀비를 재일 조선인으로 바꾸면 '우리' 일본인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이 '우리'의 생존 기반을 위협하고 있다는 '재일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들의 모임'(아래 재특회)의 논리와 비슷하다. 좀비를 불법 이민자로 대체하면 실제로 멕시코 접경지대에 장벽을 설치하려 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과 유사하다.
'그 녀석들' 때문에 '우리의 생존권이 위협받는다는 근거 없는 불안과 공포... 배타주의자에게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이러한 '이야기' 패턴이야말로 좀비 포맷 그 자체 아닌가요. - <좀비 사회학> 32쪽

저자는 여기서 좀비 포맷의 유행을 신자유주의와 연관 짓는다. 그는 신자유주의의 귀결로 "부유층과 그 밖의 계층 사이에 사회적·제도적인 벽이 만들어지고, 부유층인 '우리'만 안심할 수 있다면 상관없다는 식의 체제가 구축되었습니다"(39쪽)라고 주장한다. 재일 조선인의 특권에 대한 헛소문이 유행하고, 이들을 향한 혐오발언을 벌이는 심리도 바로 이러한 신자유주의 사고 양식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좀비 포맷을 활용한 작품들은 또한 좀비로 인해 붕괴한 세상, 정부의 기능이 정지한 세상에서 살아가야 하는 주체의 고뇌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신자유주의를 정당화한다. 저자에 따르면 정부라는 권위가 사라진 상황, 장벽 밖에는 좀비가 우리를 위협하고 있고, 동료조차 언제 좀비로 변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배제와 선별이 당연하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좀비 포맷'의 역할이다.

인간이 곧 좀비다

하지만 저자는 좀비 포맷처럼 인간과 좀비를 구별하고, 좀비를 배제하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좀비이기 때문이다. 2011년 미국에서 간행된 논집의 제목-<우리가 좀비다: 걸어다니는 시체의 인간성에 관한 시론>-은 이런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현대사회의 급속한 변화 속에서 인간 자체가 하나의 데이터로 관리됨에 따라 인간이라는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고, 인간과 좀비를 구분할 수 없어졌다. 예를 들어 쇼핑몰에서 소비자들의 구매를 유도하는 방법 중 하나인 '그루엔 전이'에 빠진 사람들에 대한 묘사는 좀비를 연상케 한다.
어떤 설명에 따르면 "그루엔 전이의 영향을 받고 있는 사람들의 영향을 받고 있는 사람의 전형적인 징후는 멍하니 벌린 입, 약간 흐리멍덩한 눈, 안개 낀 것 같이 어렴풋한 감각이다. 이 독특한 정신 상태에 빠지게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의 걸음걸이는 느려진다"고 한다. - <중독증 비즈니스: '폐인' 제조 사회의 진실> 107쪽

쇼핑몰뿐만 아니다. 패스트푸드 레스토랑은 회전율을 높이려고 일부러 불편한 의자를 설치해 손님이 불쾌감을 느끼도록 한다. 인터넷 사이트는 빅데이터를 활용해 사용자에 대한 맞춤 정보를 제공해 설계자의 유도대로 움직이도록 한다. 설계자 입장에서도 유도대로 사람들을 움직이려고 조작하다 보면 모니터 건너편에 있는 사람이 마치 좀비처럼 느껴진다.

인간과 좀비의 구분이 갈수록 흐릿해지는 현실에서 좀비를 아무리 두려워하고, 두터운 방벽을 쌓아도 좀비를 배제하려는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어쩌면 인간이 곧 좀비이기 때문에 인간과 좀비를 구별할 수 없다는 사실, 그래서 그들을 배제할 수 없다는 사실이야말로 인간이 좀비를 두려워하는 가장 큰 이유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악마화된 타자의 모습에서 우리를 가장 공포에 떨게 만드는 것은 우리 자신의 거울 이미지이다. 타자화된 우리의 모습. (중략) 에이리언들이 너무나도 두렵다면, 그 까닭은 그들이 우리와 다르기 때문이 아니라 사실은 우리들 자신보다 더 우리와 닮았기
때문이다. - <이방인·신·괴물> 135쪽


저자는 결론부에서 <마법소녀 마도카☆마기카> 등 주로 일본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데포르메 좀비'(데포르메는 자세한 세부를 생략하고 특징만 잡아 그리는 것을 가리킨다. 여기서는 귀엽고, 친숙한 좀비를 뜻한다 - 기자 말)와 '미소녀 좀비'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인간은 친숙하고 귀여운 것과 쉽게 공존할 수 있기 때문에 '데포르메 좀비'와 '미소녀 좀비'는 공존과 공감의 메시지를 던진다는 것이다.

흥미롭지만, 아쉬운

이 책을 읽고 난 뒤 가장 크게 느낀 감정은 아쉬움이었다. 논의는 흥미로운데 분석의 정교함이 그에 미치지 못한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2016년 개봉한 한국 최초의 좀비 블록버스터 <부산행>은 1,100만이 넘는 관객을 모으며 흥행에 성공했다.
 2016년 개봉한 한국 최초의 좀비 블록버스터 <부산행>은 1,100만이 넘는 관객을 모으며 흥행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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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저자가 재특회나 도널드 트럼프 등의 배타주의와 신자유주의를 연결 짓는 부분은 부자연스럽다. 나는 신자유주의가 굳이 재일 조선인이나 멕시코 이민자에 배타적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신자유주의는 오히려 자본와 노동의 세계화를 촉진하는 입장에 가깝지 않을까? 신자유주의자라면 자본의 이익을 위해 노동이 자유롭게 국경을 넘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책의 결론 부분에서 일본 서브컬쳐에 등장하는 '데포르메 좀비'와 '미소녀 좀비'를 "가능성의 중심"으로 규정하는 대목도 의문이 든다. 좀비 포맷처럼 좀비를 공포의 대상으로 만드는 것도 문제지만, 손쉽게 친근한 존재로 만드는 쪽도 개운치 않다.

분명 인간은 아름답고 귀여운 것에 호감을 느끼고, 쉽게 공존할 수 있지만, 그런 종류의 공존이 진정한 공존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좀비는 미소녀일 때만 인간과 공존할 수 있는가? 추하고, 흉측한 모습을 한 좀비는 인간과 공존할 수 없는 걸까? 본문에서 주장했듯 우리가 곧 좀비라면 좀비를 미소녀로 설정하는 손쉬운 길을 택하는 대신 어렵더라도 좀 더 인간과 가까운 모습으로 설정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좀비물을 통해 현대사회의 단면을 날카롭게 분석하고 있다. 좀비 포맷에서 재특회, 도널드 트럼프 등의 배타주의를 읽어내는 대목이나 이 서평에서는 다루지 못했지만 좀비와 아이돌의 유사성을 분석한 부분은 특히 돋보인다. 저자의 말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의 현실을 이해하기 위해' 한번 읽어볼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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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15기 인턴기자. 2015.4~2018.9 금속노조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