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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크레인
 포크레인
ⓒ 이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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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 일을 도모하는 일이라면
    때로 뿌리째 뽑히는 아픔도
        -디카시 <정원수를 이식하며>


오랜만에 창고서재에서 글을 쓴다. 글을 쓰는 것은 글을 읽는 것이다. 쓰기 위해서 끊임없이 읽어야 한다. 읽기만 하고 쓰지 않거나 쓰기만 하고 읽지 않는 것은 양륜 수레의 바퀴 하나가 빠진 것과 같아서 제대로 사유의 길이 열릴 수가 없다. 나는 주로 쓰기 위해서 읽는 타입이다. 물론 쓰기를 전제로 하지 않는 독서도 필요하다. 그런 경우도 물이 차이면 흘러넘치듯이 결국에는 글쓰기로 드러나게 된다. 그렇더라도 모든 독서가 글쓰기를 위한 것이라고 말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어느 듯 나도 노년기 초입이다. 김열규 교수의 <노년의 즐거움>이라는 책을 다시 펼쳐본다. 이 책 서문에는 "누구나 겪을 노년은 서산마루의 노을 같기를 바라고 싶다. 저무는 것의 지극한 아름다움, 그게 바로 노을이고 황혼이듯이 우리 삶의 노년 또한 그러고 싶다"라고 씌어 있다. 김열규 교수는 1991년 정년 6년을 남기고 서강대에서 고향 고성으로 돌아와 인제대 출강하며 해마다 한 권 이상의 저서를 출간했다. 그는 노년기를 고향 고성에서 미국의 자연주의 철학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와 같이 자연과 더불어 황홀한 노년기를 보냈던 것이다. 김 교수님은 2009년 <노년의 즐거움> 이라는 이 책을 출간하고 4년 후 2013년 8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김열규 교수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고향 고성에서 남은 생을 독서하고 집필하며 황홀하게 생을 마무리하고 싶다. 2016년 창신대를 떠나 중국 정주경공업대학에서 교편을 잡으며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고성의 디카시연구소 일을 보아왔는데, 올해 디카시가 검정 중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수록되고 중국, 미국 등 해외에도 소개되면서 디카시 프로젝트가 급격히 증가되었다. 디카시연구소 책임자로서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일을 보기가 벅찰 정도가 된 것이다. 올 9월부터는 디카시연구소를 한국디카시연구소로 확대 개편해서 연구소 일에만 전념하기로 했다.

지금 고향집에 서재를 하나 짓고 있다. 고향집에서 본격 거주하며 디카시연구소에 나가 일을 보려고 하면 아무래도 집에 제대로 된 서재가 하나 있어야 할 것 같아서다. 지금 창고를 서재로 쓰고 있지만 너무 비좁아 책도 다 넣어 둘 수가 없다. 그래서 창고서재 옆에 제대로 된 서재가 8월 20일경에는 들어설 것이다.  

신축 서재를 건축하기 위해 정원수를 옮기고 기초 작업을 하려고 포크레인이 진입로를 확보를 하고 있다
 신축 서재를 건축하기 위해 정원수를 옮기고 기초 작업을 하려고 포크레인이 진입로를 확보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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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크레인이 서재 건축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정원수 옮기는 작업을 한다.
 포크레인이 서재 건축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정원수 옮기는 작업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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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수를 옮기고 난 뒤 창고 서재서 보는 마당 풍경. 신축 서재가 창고 서재 옆에 들어서면 또 다른 풍경이 만들어질 것이다.
 정원수를 옮기고 난 뒤 창고 서재서 보는 마당 풍경. 신축 서재가 창고 서재 옆에 들어서면 또 다른 풍경이 만들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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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년에 첫 교편을 잡은 지 33년 만이다. 올 9월부터는 교직을 떠나 디카시연구소 대표로서만 전념하며 고성에서 지역 문예운동으로 시작되어 한국을 넘어 해외에 소개되고 있는 디카시를 세계적인 장르가 되도록 만드는 것이 남은 나의 꿈이다.

해외 자유 여행도 하며 국제 교류의 폭도 넓히고

디카시연구소 일을 보는 것 외에는 고향집의 서재에서 묻혀 지내며 틈틈이 텃밭을 가꾸는 일도 할 것이다. 또 해외 자유 여행도 자주 하며 국제 교류의 폭도 넓히고 싶다. 지난 3월부터 본격적으로 홍콩, 세부, 우루무치 등을 혼자만의 자유 여행을 시도해 보았다. 약간의 영어와 중국어를 구사하고 그것으로 해결이 안 되면 스마트폰 번역기를 이용하는 것으로 혼자 여행하는데 별 불편이 없었다. 2년여 중국 생활을 통해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이 세계를 보는 시야를 넓힌 것도 있지만 혼자서 해외로 어느 곳이든 갈 수 있는 능력을 키웠다는 점이다.

오마이뉴스 연재도 디카시로 여는 세상 시즌 3으로 새롭게 출발한다. 해외를 여행하며, 혹은 서재에서 사유하며 느껴지는 생의 담론을 더욱 열정적으로 펼쳐가고 싶다.   

덧붙이는 글 | 디카시는 필자가 2004년 처음 사용한 신조어로, 디지털카메라로 자연이나 사물에서 시적 형상을 포착하여 찍은 영상과 함께 문자를 한 덩어리의 시로 표현한 것이다.



태그:#디카시, #귀향,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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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디카시연구소 대표로서 계간 '디카시' 발행인 겸 편집인을 맡고 있으며, 베트남 빈롱 소재 구룡대학교 외국인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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