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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도 그를 만난다. 젊은 나이에 뇌졸중으로 쓰러져 병원에서 재활치료를 받고 있는 사람. 한때 왕성하게 사회활동을 하며 생업에 종사했지만, 현재 그의 모습은 감각도 운동기능도 일부분만 남아있는 편마비 지체 장애인. 나는 그를 치료하는 작업치료사이다. 그는 내게 항상 같은 말을 반복한다.

"언제쯤 좋아질 수 있을까요? 사람 노릇은 할 수 있을까요?"

한순간에 찾아온 장애를 받아들이는 일, 쉽지 않다. 특히 활발하게 활동할 젊은 나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주변에서 바라보는 시각은 제각각이다. "젊은 사람이 안 됐다"부터 "젊었으니까 금방 털고 일어나겠지"까지.

듣는 사람의 속은 문드러져 가는데, 그것도 모르고 툭툭 던진다. 계속 지체장애인으로 살아갈 수도 있고, 많이 회복된다 하더라도 얼마만큼의 후유장애가 남을지 알 수 없는 현실. 애타는 건 본인뿐이 아니다. 그를 낳아준 부모님, 그리고 배우자, 자녀들까지 그의 몸 상태에 촉각을 세운다.

나을 수 있다면 뭐든지 다 해주겠다는 게 부모의 마음이다. 주위에서 어느 병원, 어느 한의원이 좋다고 속닥거리면 귀가 얇아지는 게 당연하다. 중국에 용하다는 의사가 있다는 얘기에 비행기를 타고 건너가는 경우도 봤다.

대체 '장애'가 우리네 삶에 어떤 것이기에 빨리 다시 예전의 삶으로 돌아가려는 것일까. 사회에서 함께 더불어 있는 그대로 살아가면 안 되는 것일까?

장애는 극복하는 것?

얼마 전 어느 방송사에서 내가 일하는 병원에 취재요청서를 보내왔다. 외래로 내원하고 있는 어떤 장애인 분을 취재하기 위함인데, 취재요청서의 한 문구가 계속 눈에 거슬렸다. "장애를 극복하고 열심히 사회활동에 임하고 있는"이라는 한 줄.

장애는 여전히 대중들에게 극복되어야 하는 존재인 것이다.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서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온 가족이 촉각을 세우고, 용하다는 의사를 만나기 위해 중국까지 찾아가는 것이다.

'장애인'은 '비장애인'들의 삶에서 유리된 채로 살아간다. '장애인'이 '비장애인'들의 사회로 진입하기엔 여전히 장벽이 높다. 고속버스는커녕 시내를 다니는 저상버스를 타는 것도 어렵다.

회사에 취업하고 싶어도 쉽지 않다. 출퇴근 이동권도 문제지만, 장애인이 회사에서 일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지지 않은 경우가 대다수다. 가장 중요한 건 장애인은 '노동'하기 힘들다는 회사 경영진들의 그릇된 인식이다.

장애인권, 장애인식 교육을 많이 이뤄지고 있지만, 대중들의 인식을 바꾸기엔 여전히 갈 길이 멀다. 그렇기에 누구든 장애인이 되는 걸 두려워하고, 가족 중에 누가 장애인이 생길까 무섭고, 가족 중에 장애인이 있으면 숨기기에 급급하다. 그렇다면 장애인은 사회에서 분리된 실격당한 존재일까?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장애인권을 다룬 책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이 출간되었다
▲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장애인권을 다룬 책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이 출간되었다
ⓒ 사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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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초기 중도 장애인을 치료하는 작업치료사로서 나도 할 말이 많다. 그들과 함께 숨을 쉬고 얘기 나누며 느낀 건 그들도 똑같이 존중받아야 할 사람이라는 것. 단지 '장애'를 이유로 차별을 당하는 건 '인권'에 반하는 일이다. 그런 고민 중에 접하게 된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이라는 책을 이제부터 소개할까 한다.

이 책은 '장애인'을 '실격당한 자'로 명명한 듯 보인다. 이 책의 저자는 골형성부전증으로 지체장애 1급을 받은 '장애인'이며, 서울대학교 로스쿨을 졸업하고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그리고 현재 서울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김원영씨다.

저자는 이 책에서 본인이 직접 보고 듣고 겪은 내용들을  장애인의 사회적 맥락 안에서 구현했다. 또한 국가인권위원회 활동을 하며 접한 장애인들의 현재를 조명했다. 일상에서 쉽게 놓칠 수 있는 장애 인권에 대한 세심한 부분들을 철학적이면서도 실증적으로 풀어내 독자로 하여금 고민할 수 있게 한다.

대표적으로 책 머리말에 나오는 '잘못된 삶' 소송 사례가 그렇다. 장애아이는 차라리 세상에 태어나지 않는 편이 나았다는 생각으로 부모가 산부인과 의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사례는 많은 고민거리를 던져준다.

주위 사람들의 시선, 의료비 부담, 자녀를 향한 끝없는 돌봄 노동 등은 부모는 물론, 형제자매까지 지치게 한다. 특히 저자가 태어난 80년 대 초반은 장애인이 살아갈 수 있는 여건이 형편없었기에 '잘못된 삶'으로 생각한다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고 저자는 언급한다. 하지만 부모와 저자 본인이 같이 성숙해가며 마주하는 2016년 현재의 관계는 잘못되지 않았다고 강조한다.

걷는 것, 휠체어를 타는 것

'잘못된 삶' 소송과 달리 갑작스레 장애를 맞이하는 중도 장애인의 입장은 조금 다른 것 같다. 그들은 누구에게 소송을 제기해야 하는가. 

갑작스레 중도 장애인이 된 분들은 초기 재활치료에 집중하는데, 일정 기간이 지나면 기능 회복의 한계에 다다른다. 이 시기를 임상적으로 보통 6개월로 본다. 중도 장애인은 어느 순간 회복이 멈춘 자신을 보며 이내 낙담한다.

영원히 장애인으로 살아야 한다는 두려움, 세상을 향한 원망, 가족에 대한 미안함. 특히 장애인으로 보여지는 것에 대해 극심한 알러지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 기준은 바로 휠체어다. 휠체어를 타고 다니느냐, 비록 바른 자세는 아니지만 직립보행을 하느냐의 차이. 하지만 휠체어를 꼭 타고 다녀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면 어쩔 수 없이 장애를 수용하는 단계로 접어든다. 개인에 따라 수용하는 시기는 다를지라도.

이 책에서도 장애 수용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된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장애가 있는 몸, 미적 기준에서 벗어난다고 여겨지는 신체를 수용했다고 말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의미이다. 그는 자기 자신을 혐오나 피해의식에 기초하여 받아들이지 않고, 이 세상이 구축해놓은 외모의 위계질서에 종속되지 않으며, 앞으로의 삶을 외모에 대한 사회적 차별이나 억압, 혹은 피억압자로서의 의식과 트라우마에 짓눌리지 않은 채 살아가겠다는, 삶에 대한 '근본적인 태도(입장)을 수용한 것이다." p.144

장애수용보다 더 중요한 것 

 나는 중도장애인이 된 환자에게 장애를 수용하는 데 도움될 수 있도록 많은 대화를 나눈다
 나는 중도장애인이 된 환자에게 장애를 수용하는 데 도움될 수 있도록 많은 대화를 나눈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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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중도장애인이 된 환자에게 장애를 수용하는 데 도움될 수 있도록 많은 대화를 나눈다. 장애를 수용하는 일이 앞에 언급했던 것처럼 쉽지 않지만, 그들의 고민에 따르면 현재의 사회 분위기도 장애수용을 어렵게 만드는 것 같다.

특히 타인에 공감하지 않고 자신의 편의만 생각하는 '각자도생'의 사회 분위기는 장애인을 더 외롭게 한다. 많은 공간을 차지한다는 이유로 전동휠체어를 탄 장애인을 향해 막말을 하고, 장애인이 식당이나 상점에 들어가면 눈치를 주거나 어떤 경우엔 출입을 거부하는 일도 있다.

지하철을 이용하는 장애인들은 환승에 어려움을 겪는다. 비장애인은 날쌘 걸음으로 화살표를 따라 환승구역으로 용이하게 이동하지만, 장애인은 엘리베이터의 위치 파악이 어려워 한참을 헤맨다.

더군다나 대부분의 표지판들은 비장애인의 눈높이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 속에서 특히 출퇴근 시간에 방향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최근엔 뜻있는 몇몇 장애인 분들이 유튜브나 페이스북과 같은 1인 미디어를 이용해 환승 방법을 알려주는 동영상을 만들거나 환승 지도를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런 작업들이 장애인 당사자의 자발적인 활동에 의해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지자체나 정부차원에서 고려되고 시행되어야 하는 건 아닐까. 이 책에서는 장애수용 이전에 장애인들이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져야 한다는 걸 강조했다.
"'장애 극복', '불굴의 의지' 같은 말은 작은 사회적 성취를 이룬 장애인을 언론이 보도할 때 사용하는 대표적인 수식어이다. '긍정적으로 살아라', '희망적으로 살아라'며 현실을 넘어설 것을 강요하고, 나아가 장애인에게 희망의 아이콘이 되어줄 것을 주문하기도 한다. 팔다리가 없이 태어나 세계를 돌아다니며 '동기 부여' 전문가로 활동하는 호주의 장애인 닉 부이치치 같은 인물이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아무리 낙관적이고 강인한 정신을 가진 이라도 횡단보도를 건널 수 없고, 화장실을 가지 못한다면 삶에 '동기 부여'를 하기란 불가능 하다. 하루 종일 오줌을 참으면서 희망을 가질 수는 없다. 오줌을 참을 때 필요한 건 희망이 아니라 화장실이다." p.211

있어줘서 고마워요 

직업상 중도장애인을 많이 마주했다. 그들을 만나고 얘기 나누며 감동적인 순간들도 많았다. 그 중에 엄마의 중도장애 2주년을 맞아 특별한 이벤트를 준비한 자녀들의 이야기가 가장 인상깊었다. 눈시울이 붉어졌다.

자녀들은 비록 엄마가 장애인이 되었지만 밝은 모습을 잃지 않고 옆에 있어줘서 고맙다는 뜻으로 파티를 열었다고 한다. 좀처럼 생각할 수 없던 이야기. 그 스토리를 전해들은 주위 사람들마저 한동안 마음이 훈훈했다고 한다.

장애는 극복하는 게 아니라, 장애가 있기 전과 똑같이 어울려 살아가야 한다는 걸 개인적으로 깨닫게 됐다고 할까. 존재만으로 너무도 고마운 우리 가족, 우리 이웃이다.
"당신의 자녀나 형제에게 장애가 있고 당신이 그를 수용하기 어려워하더라도, 그들은 어머니, 아버지, 누나, 동생인 당신을 사랑할 것이다. 당신이 장애를 수용하고 역경을 돌파하는 당당한 사람을 보여주지 못하더라도 당신의 부모, 형제, 이웃은 여전히 당신을 사랑하는 좋은 이유를 가질 것이다." p310
"우리는 존엄하고, 아름다우며, 사랑하고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존재인 것이다. 누구도 우리를 실격시키지 못한다." p.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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