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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3권. 두 달 전쯤 책장에 있는 책이 총 몇 권인지를 세는 북튜버 '겨울서점'의 영상을 보다가 충동적으로 내가 가진 책을 헤아려본 결과다. 그나마도 사무실에 옮겨둔 책과 책상에 쌓아둔 책을 제외한 권수다.

유명 북튜버보다도 많은 책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 나 자신도 새삼스레 놀랐다. 20만 권에 달하는 책을 소유하고 있다는 다치바나 다카시 같은 장서가와 비교할 정도는 아니지만, 이 정도면 계속 이 책들을 계속 끌어안고 살아야 하는 건지 고민하게 된다.

특히 이사할 때면 고민이 커진다. 평소에는 정리가 안 되는 대로 책을 바닥에 쌓아놓고서라도 살면 되는데 이사할 때면 짐 싸는 것도 문제고, 비용도 많이 든다.

책만큼 부피에 비해 무게가 많이 나가는 짐이 별로 없으니 내가 가진 책을 보면 이사업체에서 오신 아저씨들 표정이 벌써 안 좋다. 힘들게 기껏 옮겼는데 이사한 집이 전에 살던 집과 천장 높이가 달라 눈물을 머금고 책장을 잘라낸 적도 있다.

그렇게 고생해서 모은 책이 모두 필요한 책이고, 당장은 아니라도 언젠가는 다 읽을 책인가 하면 솔직히 그렇다고 말할 자신은 없다. 내 책 중에는 소위 벽돌책이라고 부르는 두껍고 어려운 책이 제법 있는 데다가 과연 앞으로도 이 책이 필요할 일이 있을까 싶은 책도 더러 있다.

이쯤 되면 내가 가진 책만큼 골칫덩어리를 끌어안고 있는 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그렇다면 나는 왜 이 골칫덩어리를 좀처럼 정리하지 못하고 있는가.

 책을 끌어안고 사는 일은 괴롭기도 하지만, 즐거운 일이기도 하다. 책 때문에 골치 아프다가도 이런 책장을 보면 나도 갖고 싶어진다.
 책을 끌어안고 사는 일은 괴롭기도 하지만, 즐거운 일이기도 하다. 책 때문에 골치 아프다가도 이런 책장을 보면 나도 갖고 싶어진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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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안 사면 절판된다... 열악한 한국 출판시장

우선 책을 갖고 있어야 필요할 때 마음껏 활용할 수 있어서다. 일단 책을 사면 마음대로 밑줄을 긋고, 귀퉁이를 접어서 중요한 대목을 표시할 수 있는 데다가 대여 기간이 지나면 도서관에서 다시 빌릴 필요도 없다. 필요하면 집에 가서 언제든지 찾아볼 수 있다.

돈이 없던 대학생 시절에는 거의 모든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보고, 중요한 부분은 손으로 필사했는데 당연히 사서 밑줄 그으면서 읽는 쪽이 훨씬 편하다.

일단 사놓지 않으면 책이 언제 절판될지 모른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한국 출판시장, 특히 내가 주로 읽는 사회과학이나 인문분야 시장이 워낙 작고, 수요가 적어서 책이 쉽사리 절판되는 경우가 많다.

잠깐 유행을 타고 반짝하는 책이라면 절판돼도 크게 아쉽지 않겠지만, 문제는 해당 분야의 필독서로 인정받는 권위 있는 책까지 절판되곤 한다는 데 있다. 일례로 이미 현대의 고전 반열에 올라와 있는 <상상된 공동체>(베네딕트 앤더슨 지음, 길 펴냄)는 2002년 정식 한국어판 출간(당시 출간명은 <상상의 공동체>) 이후 십수년간 절판된 상태였다가 최근에야 새롭게 번역되어 다시 나왔다.

<상상된 공동체>는 다시 나오기라도 했으니까 다행이다. "나치 홀로코스트 학자들의 학장 격"이라고 불리는 학자가 쓴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홀로코스트 연구서이자 종합서"라는 <홀로코스트 유럽유대인의 파괴>(라울 힐베르크 지음, 개마고원 펴냄)는 절판된 상태다. 나는 그나마 1권은 샀지만, 지금도 2권 없이 1권만 덩그러니 있는 이 책을 보면 속이 쓰리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당장 필요한 책이 아니라도 언젠가 이 책이 필요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 일단은 사는 쪽을 선택한다. 필요할 때 책이 없는 것보다는 그편이 나으니까.

내가 모아온 책은 그 자체로 나의 일부

물론 그렇다고 해서 현실적인 이유만으로 책을 쌓아두고 있지는 않다. 책을 끝내 버리지 못하고 끌어안고 사는 이유는 책 때문에 골치 아플 때도 많지만, 수년 동안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모아온 책은 그 자체로 나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내가 이제껏 모아온 책은 일종의 지도다. 책장에 꽂힌 책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내가 무엇을 좋아했고, 무엇에 관심을 가졌는지, 과거의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기억할 수 있다.

장준하의 <돌베개>를 보면 "또다시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하여…"라는 말에 매혹됐던 고등학생 시절의 내가 떠오르고, 하워드 진의 <미국민중사>,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를 보면 대학생 시절 품었던 '더 나은 사회는 가능하다'는 희망이 다시 한번 마음속에 피어오르는 것을 느낀다.

책장에 꽂힌 책은 단지 과거의 관심사를 떠올리게 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책은 그 자체로 내가 앞으로 무엇을 읽고, 어떤 글을 써야 할지를 제시하는 길잡이기도 하다.

복거일과 밀턴 프리드먼의 책을 보면 보수주의 이데올로그의 논리를 비판하는 글을 쓰려고 마음먹었던 기억이 난다. <한국어는 있다> 등 일련의 국어 관련 서적을 볼 때면 이오덕을 위시한 '한글 순결주의자'를 비판하는 글을 써야겠다는 다짐을 다시 한번 다진다. 최근 관심사인 일본 관련 서적을 볼 때는 일본의 전후와 포스트 전후, 사소설 등에 대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책장 속의 책을 볼 때마다 내가 써야 하는 글을 떠올린다. 내 게으름에도 불구하고 이 글들을 쓰는 날이 온다면 그건 분명 내가 책을 사서 간직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책은 휴식이기도 하다. 가끔 머리가 아플 때면 <김선자의 이야기 중국신화>를 읽는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하지만, 흥미롭기 짝이 없는 중국신화를 읽다 보면 어느새 다른 생각은 잊고 신화의 세계로 빠져든다.

최근에는 양자역학에 대한 책을 읽다가 잘 이해할 수 없는 책도 휴식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굉장히 흥미롭고 놀라운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안 것만으로도 기분전환이 되고, 좀 더 알고 싶다는 호기심이 들었다. 이해 못 하면 못 하는 대로 즐거운 독서도 있는 법이다.

그래서 책은 내게 과거의 나를 떠올리게 하는 매개체이자 앞으로 내가 가야 할 곳을 가리키는 안내자이고, 때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쉼터다. 내가 책 때문에 고민하면서도 끝내 버리지 못하고, 책을 끌어안고 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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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15기 인턴기자. 지금은 금속노조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