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말이 길지 않아도 상징하는 바가 뚜렷이 드러나는 경우가 있다. '촛불시민'이라는 말이 그렇다. 이 말 한 마디면 민주주의적 감수성과 합리적 사고를 실천하는 시민 의식을 단번에 담아낼 수 있다.

그런데 '촛불'-'시민'이라는 표현은 다소 정치적이다. 때문에 이 표현을 그대로 둔 채 대중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들여다보기엔 어려움이 따른다. 이때, 기존의 라벨을 잠시 걷어두고 새롭게 라벨링 하는 것도 하나의 접근 방법이다.

이성규(2018)<사라진 독자를 찾아서> 저자 이성규는 변화한 미디어 환경에서 대중은 어떠한 위상을 갖는지, 어떻게 불려야 하는지, 또 어떻게 이들에게 접근해야 하는지 밝히고 있다
▲ 이성규(2018)<사라진 독자를 찾아서> 저자 이성규는 변화한 미디어 환경에서 대중은 어떠한 위상을 갖는지, 어떻게 불려야 하는지, 또 어떻게 이들에게 접근해야 하는지 밝히고 있다
ⓒ 북저널리즘

관련사진보기


최근 <사라진 독자를 찾아서>를 펴낸 이성규는 그러한 접근법을 취한다. 뉴미디어 비평가답게 오늘날 대중의 또 다른 호칭에 대해 고민한다. 그는 오늘날 우리가 체감하는 대로 디지털 시대의 대중은 이전 시대의 대중과 다른 위상과 권력을 갖고 있다고 평한다. 그리고 균질적이고 획일적인 집단으로서의 대중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1920년대 이후의 대중과 디지털 환경의 대중은 서로 다른 위상과 권력을 갖고 있다. 엘리트의 대척점에 서 있던 과거의 대중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균질적이고 획일적인 집단으로서의 대중도 없다."(pp.19-20)

그럼 저자가 '고전적인 대중은 더 이상 없다'고 선언하며 내세우는 대중에 대한 호칭은 무엇일까? 오늘날 대중은 분산된 개인들이 연결될 때 '반짝' 하고 나타났다가, 흩어지면 사라지고 만다. 항시적으로 덩어리진 대중이라기보다는 '점멸하는 개인'에 가깝다.

몇 가지 사례만 들춰 봐도 저자의 말에 수긍이 간다. 광장의 촛불 시민은 탄핵 이후 흩어졌다. 목표를 이룬 개인들이 저마다 점등 스위치를 끄고 돌아간 것이다. 이후 탄핵 국면과 같은 규모의 목소리는 없었다. 허나 그만큼 강렬하지는 않지만 여기저기서 집단을 이루었던 점멸하는 개인들을 보았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이다.

30일이라는 기한 그리고 20만 명의 동의자. 그만한 사안이라면 정부도 나서야 할 일로 간주하겠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실제 청원의 주체나 동의를 구하는 이들은 점멸하는 개인들을 서둘러 섭외하는 상황으로 비춰지기 일쑤였다.

심지어 하나의 이슈를 두고 서로 다른 청원이 올라올 때도 있었다. 최근 제주 예멘 난민 이슈가 그랬다. 특히 난민 수용 반대에 동의를 표한 다수의 육아카페 회원들은 메인 스피커로 주목받았다.

이때 난민 수용 환대를 외치는 반대편에선, 탄핵 정국 당시 낡은 안보관으로 무장한 태극기부대에 맞서 유모차까지 앞세웠던 젊은 엄마들이 안전을 명분으로 난민 규제에 목소리를 내는 걸 매우 난처하게 바라보았다.

그런데 어쩌면 이 모든 게 '촛불시민'이라는 명제에 대중을 가두고 바라본 탓에 입은 타격은 아닌가 싶다. 대중이 아닌 '점멸하는 개인'이라 칭한 저자의 말대로 각각의 개인은 전혀 균질하지 않다. 과거 아무리 한 마음 한 뜻으로 점등 스위치를 켰어도 그때의 개인들이 다른 이슈에도 마찬가지로 동참하리라는 보장이 없다.

육아카페 회원들이 점등 스위치를 켜는 전자 회로에는 '민주적 가치'만 있는 게 아니다. 때로 '안전'일 때도 있고, 때로 '경제적 이익'일 때도 있다. 때문에 그저 들불처럼 번지는 점등만 기대하며 상대방의 필라멘트를 자극하려 접근하면, 각 개인들이 얼마나 복잡다단한 가치를 안고 사는 존재인지 잊고 만다.

소셜 미디어가 여전히 강세다. 그 어떤 매체보다 강한 파급력을 자랑한다. 허나 파급력 못지않게 휘발성도 강하다. 때문에 매체 종사자들은 일시에 번지는 들불 같은 확산에 목을 맨다.

그러나 저자는 앞서 말한 대로 점등 미션에 혈안이 돼 푸시만 일삼을 경우 함정에 빠지게 된다고 일침을 놓는다. 저자는 무엇보다 오늘날 미디어 환경에 놓인 수용자들을 제대로 이해하는 게 첫 걸음이라 말한다.

뉴미디어로 형식만 바꾸었을 뿐, 구시대의 대중매체를 다루듯 오늘날 개인들에게 다가가는 건 미디어 전략의 패착일 수밖에 없다고 한다. 설령 점멸하는 개인이 쉽사리 네트워크화 되지 않는 현 상황이 난제라 할지라도 각 개인 수용자들을 면밀히 들여다 볼 것을 권한다.

"개개인으로 쪼개진 대중이 연결된 단절이라는 모순적 상태로 존재하는 현 상황에서 미디어 산업은 이들 개인의 속성에 적합한 형태로 진화할 것을 요구받고 있다."(p.44)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성숙한 커뮤니케이션이 구현되는 사회를 꿈꾸는 시민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