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카운터스>의 한 장면.

영화 <카운터스>의 한 장면. ⓒ 인디스토리


시작부터 고압적인 위협이다. 욱일기를 내세우며 일본 내 소수자를 조롱하는 사람들 틈에 이들이 침투해 욕설을 거침없이 내뱉는다. 이는 이일하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카운터스>의 초반부다.

영화는 일본 소수자 차별, 혐오를 외치는 극우 조직에 대항하는 시민단체 '카운터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일본 사회에서 특정 시위에 반대하는 시위가 생긴 최초의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이들의 면모가 좀 낯설다. 상반신에 문신이 가득하고 인상 역시 험악한 남성들이다. 바로 카운터스 내 또 다른 조직인 오토코구미(남자조직) 소속 고 다카하시, 기모토, 노치 등이다. 이들은 재일조선인을 혐오하고 중국인을 배척하는 구호를 내뱉는 우익 단체 회원들에게 거침없이 욕하고 심지어 주먹과 발길질까지 날리는 사람들이다.

영화 속 물음, 진보주의자는 반드시 도덕적이어야 하는가 

뭔가 모양새가 이상하다. 관계 당국에 의해 허가를 받고 행진 시위를 하는 재특회 등의 극우 성향 인원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사내들. 한편으로 통쾌하면서도 의문이 들기 마련이다. 차별에 반대한다며 정의를 외치는 이들의 폭력은 과연 정당한가.

이에 관해 영화 속 다카하시는 거침없이 답한다. "본때를 보여줘야 다시는 이런 시위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흠씬 두들겨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분하다"고 말이다.

재밌는 건 다카하시의 전력이다. 야쿠자 출신으로 스스로 나쁜 짓을 많이 했다고 고백하는 그도 우익 단체에서 활동하던 이였다. 영화 내내 그는 자신을 우파로 규정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이일하 감독의 카메라는 오전엔 전범 군인들이 잠들어 있는 야스쿠니신사를 방문하고 오후엔 좌파(일본에선 리버럴이라고 표현) 단체인 카운터스의 행동대장 역할을 하는 다카하시의 일거수일투족을 여과 없이 전한다.

 영화 <카운터스>의 포스터.

영화 <카운터스>의 포스터. ⓒ 인디스토리


카운터스 내에서도 다카하시를 '별종'이나 심지어 '쓰레기'라 표현한다. 그런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꿋꿋하다. "누군가는 더러운 일을 해야 하니까"라며 오히려 자랑스럽게 본분을 다한다.

이 영화가 던지는 첫 번째 질문은 무엇일까? 흔히 정의를 외치며, 사회의 변화와 진보를 주장하는 리버럴의 관념에 대한 물음이다. 좌파 혹은 진보주의자는 반드시 도덕적이고 합리적이어야 하는가? 오토코구미의 폭력은 물론 정당화 될 수 없다. 하지만 조직 내 최다 체포 전력을 보유하게 된 다카하시의 일관된 행동은 다른 측면에서 어떤 긍정적 에너지를 갖는다.

혐오 금지에 대한 조항이 없어 절차적 정당성만 확보하면 소수자들을 향해 혐오 발언을 내뱉고 적대시하는 사람들은 폭력적이지 않은 걸까? 다카하시의 폭력은 바로 이런 폭력을 예방하는 차원에서의 선제공격으로 작용한다. 영화 역시 이 지점을 정확히 묘사하며 관객들을 향해 도덕적 모순에 빠지지 않도록 한다.

 영화 <카운터스>의 한 장면.

영화 <카운터스>의 한 장면. ⓒ 인디스토리


 영화 <카운터스>의 한 장면.

영화 <카운터스>의 한 장면. ⓒ 인디스토리


끈기의 중요성

과격한 행동이지만 이런 오토코구미의 목적은 카운터스의 그것과 같았다. 바로 일본 내 혐오표현금지법의 제정이었다. 민주주의적 방식이라며 일본 내 소수자들에 대해 혐오를 내뱉는 우익들의 행위를 수년 간 견제했던 카운터스의 노력은 3년이 지나 결실을 맺는다. 비록 처벌 조항은 없지만, '혐오 표현은 나쁘다'는 일종의 관념법으로서 해당 조항이 신설돼 2016년 6월 3일부터 시행된 것이다.

야쿠자 출신의 카운터스, 언론인 카운터스, 오타쿠 카운터스, 정치인 카운터스 등 영화는 각 분야에서 혐오 반대를 외치며 뭉친 사람들의 아름다운 연대를 주목한다. 법 제정 이후 오토코구미 역시 아름답게 해산했다. 영화적 구성이 다소 산만하지만, <카운터스>가 비추는 이런 과정은 충분히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일본에서 18년간 살며 학교를 다니고 방송국 일을 하던 이일하 감독은 코리아타운이 있는 신 오쿠보 지역에서 직접 혐한 시위를 접한 후 영화화를 결심했다고 한다. TV나 신문에서 보도되던 것과 사뭇 다른 현장의 분위기를 전하고 싶었고, 끈질긴 접촉 끝에 재특회 내부까지 취재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카운터스들의 활약과 함께 그 반대 지점에서 '혐오 표현은 합당하다'고 주장하는 사쿠리아(재특회 창설자)의 모습은 우리 개인들 마음 속에 또 다른 혐오는 없는지 질문하게 만든다.

영화 <카운터스>는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스크린을 지켜봐야 한다. 지난 4월 돌연사한 다카하시의 마지막 모습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제는 고인이 됐지만 그가 일본 사회에 뿌린 씨앗은 혐오표현금지법 등으로 이제 열매를 맺고 있다. 영화 <카운터스>가 한국에 개봉하는 시기에 우리도 스스로 되물어야 하지 않을까. 일베, 어버이연합 등 자칭 보수라고 주장하는 이들과 우리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고 변화시켜야 하는지 말이다.

한 줄 평 : 우리가 몰랐던 일본 시민 사회의 참모습이 여기에 있다
평점 : ★★★☆(3.5/5)


영화 <카운터스> 관련 정보

연출 : 이일하
출연 : 다카하시, 기모토, 아리타, 노마, 이토, 와타나베 등
제작 : exposed Film
배급 : 인디스토리
러닝타임 : 99분
관람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개봉 : 2018년 8월 15일


카운터스 일본 우익 재특회 일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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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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