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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으로 '워라밸' '저녁 있는 삶' 열풍이 불고 있지만 장거리 통근족에게는 먼 이야기입니다. 4명 중 1명은 길에서 2시간 이상을 보내는 게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 먹고 살기 위해 서울로 밀려들어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애환을 들어봤습니다. [편집자말]
"서울 살다 이혼하면 부천 가고, 더 어려워지면 인천 중구나 남구 쪽으로 간다."

지난 6월 7일 TV토론 프로그램에 나온 정태옥 당시 자유한국당 원내대변인의 이 발언은 엄청난 후폭풍을 일으켰다. 이른바 '이부망천' 발언이다. 이 말을 하기 전에 그는 "제대로 된 일자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서울로 온다"고 했다.

그의 발언을 최대한 좋게 꿰어보면, 대한민국은 '서울공화국'이란 얘기다. 새롭지는 않다. 일자리는 물론 교육, 환경, 문화 등 주요 인프라가 대부분 수도 서울에 몰려 있다는 것은 이미 오랜 현실이니까.

하지만 서울은 어떤 곳인가. 정도만 다를 뿐 끝없이 상승하는 집값은 비싼 주거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이들을 도시 밖으로 밀어내고 있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우리가 서울 밖으로 밀려난 이유

 끝없이 상승하는 서울 집값은 비싼 주거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이들을 도시 밖으로 밀어내고 있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끝없이 상승하는 서울 집값은 비싼 주거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이들을 도시 밖으로 밀어내고 있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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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우리는 경기도 평택 친정 근처로 이사했다. 2인에서 4인으로 가구원 수가 늘어나면서 단출했던 살림살이도 점점 불어났다. 더 큰 공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서울서 집 1평 늘리기'는 집안의 재력, 은행의 협력이 뒷받침해줘야 한다.

운 좋게 종잣돈과 은행 대출 여건을 갖춰도 쉽지 않다. 워낙 부동산 가격이 높은지라 서울에서 예산에 맞춰 집을 보러 다니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를 계속 자문하게 된다. 반면 수도권의 마지노선, 경기 최남단 도시는 절대적으로 집값이 쌌다.

육아 문제도 큰 이유였다. 맞벌이여도 서울에서 어떻게든 버틸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첫 아이를 아침 일찍 어린이집에 맡겼다가 저녁까지 먹여 찾아오는 생활은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어떻게 해낼 수 있겠지 생각했다.

하지만 계획보다 빨리 둘째가 태어나면서 우리는 현실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일과 가정의 양립'이란 말은 멋진 표어로만 느껴졌다. '친정 찬스'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는 경기도 남부에서 서울 서부를 왕복하는 장거리 출퇴근족이 됐다.

1분 어긋나면 1시간 늦는다

선택 가능한 교통수단은 크게 전철과 기차, 고속버스 세 가지였다. 회사 위치와 지하철 환승 여부, 노선, 비용 등을 고려한 나의 선택은 기차. 매일 아침 평택역에서 6시 53분 무궁화호에 몸을 싣는다. 약 한 시간 뒤 서울역에 도착해 부리나케 공항철도로 갈아타면 사무실에 8시 30~40분쯤 도착한다. 집에서 대략 6시 20분경 나오니 약 2시간 20분이 걸리는 셈이다.

퇴근은 더 어렵다. 여느 직장인들처럼 나 또한 일을 끝내는 때는 날마다 조금씩 다르다. 그런데 단 1~2분 차이가 장거리 통근족에게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이동거리와 열차 간격 등이 어긋나기 시작하면 집으로 가는 길은 그만큼 멀어진다.

첫 장거리 출퇴근날, 이 계산을 잘못한 나는 사무실에서 오후 6시 정각에 '칼퇴근'했으나 3시간 뒤 집에 도착했다. 저녁을 먹을 힘조차 없었다. 요즘에는 수시로 시간을 확인하며 동선을 계산한다. 모처럼 동료들과 시원한 맥주를 마시는 날에도 내 눈은 줄곧 휴대폰 시계를 바라보고 있다.

출퇴근 시간만 왕복 5시간이다. 삶의 질을 개선하러 서울 밖으로 나왔지만, 당연히 감수하기로 마음먹었지만, 가족들과 밥 한 끼 먹는 일조차 불가능한 일상이다. 연구에 따르면 통근시간 1시간이면 '행복상실의 가치'는 월 94만 원이란다(2013년 한국교통연구원, '수도권 통근시간과 행복상실 가치분석'). '행복 상실의 가치'를 단순히 돈으로 계산할 수 있을까 싶지만, 한 달치를 계산하면 자그마치 470만 원이다.

매달 '행복상실의 가치'를 헤아리는 동지들은 많았다. 대전에서 출발해 천안과 평택, 수원, 안양을 거쳐 서울로 입성하는 열차는 대부분 만석이다. 길을 거슬러 내려오는 때에도 비슷하다. 시간에 쫓겨 우당탕 뛰어다니다 고개를 돌려보면 나와 닮은 얼굴들이 곳곳에 있었다. 부스스한 머리, 붉게 충혈된 눈, 무겁게 처진 어깨의 장거리 통근족들.

내 책상이 거기 있다

 매일 서울과 경기도를 오가는 사람은 113만 명. 나도 그 중 하나다.
 매일 서울과 경기도를 오가는 사람은 113만 명. 나도 그 중 하나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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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비슷한 이유로 서울에서 밀려났지만, 비슷한 이유로 서울로 밀려들어 가고 있었다. 모든 것이 쏠린 대도시에서 벗어나 삶을 유지하는 다른 길을 찾기란 쉽지 않다. 쇠락한 지역들은 젊은이들을 품지 못한다.

팍팍함에 숨 막혀 서울 밖으로 나갔지만, 그 일상을 유지하려면 서울 안으로 기어들어 올 수밖에 없다. 대도시에는 빌딩 숲이 있다. 그 어딘가에 회사가 있다. 그 안에 내 책상이 있다.

이 상황이 풀릴 기미가 안 보이니 한국인의 통근시간은 점점 길어지고만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1995년 29.6분이었던 평균 통근시간은 2015년 35.4분으로 늘어났다. 같은 기간, 매일 1시간 넘게 출근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155만 명에서 423만 명으로 세 배 가까이 증가했다. 매일 서울과 경기도를 오가는 이들은 113만 명이다. 나는 거기에 하나를 더 보탰다. 서울 집값이 올라가는 만큼, 지방 소도시들이 쪼그라드는 만큼 이 숫자는 더 늘어날 듯하다.

며칠 전 홍대입구역 근처에서 휴대폰을 고친 뒤 버스를 탔다. 평일 낮인데도 꾸벅꾸벅 졸고 있는 사람, 바쁘게 통화하는 사람들 틈에 앉아 차창 밖을 봤다. 건물과 건물 사이의 빈틈조차 쉽게 허락하지 않는 도시. 한때 나도 여기에 살았지. 다시 나에게 작은 틈이 주어질까. 서울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아니 돌아가야 할까. 물끄러미 서울을 바라보던 나는 휴대폰 전원을 켜 집으로 돌아갈 열차 시각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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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여행·문화 담당 기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기 위해선 이야기의 힘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