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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민노당을 이끌던 노회찬 의원이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인천지부의 자그마한 사무실을 찾아 1시간 정도 강연을 한 적이 있다. 당시 전교조 지부장 도성훈은 현 인천시 교육감이 되었으며, 민노당과 전교조를 잇는 대외교섭은 현 인천기계공고에 근무중인 교사 송기윤이었다. 강연 후에 6~7명이 호프집으로 옮겨 노회찬 의원과 마주 앉아 맥주잔을 기울였다. 그 때 처음 가까이에서 본 노회찬 의원의 얼굴빛이 유난히 검은색을 띄었다.

그 즈음 교사들이 민주노동당에 대해 월 1만원씩 후원금을 내고 있었다. 이어서 민노당 내부갈등으로 노회찬 의원이 새로이 진보신당을 만들었을 때 교사들은 민노당과 진보신당으로 나뉘어 후원을 이어 갔다. 이는 이명박 정권에서 정치탄압을 가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세월이 흘러 노회찬 의원이 생을 마감한 지금, 그의 생전의 행적이 드러나면서 이제야 그의 얼굴이 왜 그리 검게 탔는지를 알 것 같다. 용접공으로 일하며 열에 그을리고, 풍찬노숙(風餐露宿)하며 노동자들과 손잡고 이들의 생존을 향한 외침을 함께 하는 가운데 태양볕과 시름에 의해 또 다시 그을린 결과라는 것을!

첫째, 노동교육을 시작할 때

노회찬! 그의 의식을 점해온 평생의 일념은 자본주의 모순에 합리적으로 저항하는 것이었다. 그는 "모든 계급투쟁이 정치투쟁"(Karl Marx, Communist Manifesto, International Publischers : U.S.A, 1998, 18쪽(공산당 선언))과 다르지 않음을 알고, "자본가들의 과도한 사적 소유에 의해 야기되는 노동자들의 비참한 상태를 극복하는 것을 목표"(Karl Marx, 위 책, 24쪽)로 정당을 조직했다. "전 세계의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Karl Marx, 위 책, 44쪽)고 한 마르크스의 권고가 이 땅에서는 노회찬과 심상정 같은 깨어있는 지식인들에 의해 현실화된다.
사진 1. 마르크스의 대표작 '자본론' 표지 자본주의를 가장 과학적으로 심도있게 연구한 책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출처: 옥스포드 대학 출판, 자본론, 2008)
▲ 사진 1. 마르크스의 대표작 '자본론' 표지 자본주의를 가장 과학적으로 심도있게 연구한 책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출처: 옥스포드 대학 출판, 자본론, 2008)
ⓒ 신남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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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의 젊은이들이 지금도 빈부차와 불평등이 감지될 때면 찾는다는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다시금 눈여겨 보게 되는 것은 노회찬의 죽음과도 무관하지 않다.

"자본주의의 기본 모순은 '사회적 생산'과 '사적 소유' 사이의 모순이다. 생산은 광범위한 사회적 분업을 바탕으로 매우 높은 생산력에 도달하지만, 소유는 사적(私的) 소유의 형태를 유지한다. 사회적 차원에서 생산력은 높아지지만, 사회의 소비능력은 상대적으로 낮아진다. 적대적 분배관계로 말미암아 생산물의 잉여가치는 소수의 개인에게 편중된 형태로 분배되기 때문에 대다수 민중들의 소비능력은 가장 낮은 수준에 머무른다. 소비력이 감소하기 때문에 잉여가치가 화페로 바뀌기 어렵다."(칼 마르크스 자본론/손성철, 풀빛, 228~229쪽)

생산물의 잉여가치가 소수에게 편중된 양극화의 함정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한국에서, 노동자들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서울의 6411번 새벽 버스의 청소노동자들의 고단한 삶이 사실상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진 것도 노회찬에 의해서다. 노회찬이 여성의 날이면 빠짐없이 이들 청소부에게 장미꽃을 선물했던 모습을 상상하면 그의 지극한 공감능력과 동지애적 사랑에 감동이 저미어 온다.

노회찬은 의정활동 전 오랜 기간 아내에게 월 30만원의 생활비 약속을 지키지 못해 못내 아쉬운 마음으로 자책도 했을 것이다. 집안의 TV는 이웃이 버린 것을 재활용했다. 단벌의 신사복과 구두 차림으로 노동과 집회현장을 누볐던 그의 모습은 오래도록 우리에게 그에 대한 그리움의 긴 여운을 남길 것 같다. 그리고 이제 우리로 하여금 무엇인가 응답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젖게 한다.

여기서 1818년에 독일에서 태어난 마르크스가, 평생 가난 속에서 자본주의 모순을 밝히기 위해 대영박물관 도서관에서 연구하고, 노동당을 조직하기 위해 강령을 만들며 강연을 했던 모습이 떠오른다. 마르크스가 자본주의를 연구하여 노동자의 삶을 고양시키려 했다면, 노회찬은 노동자요 정치가로서 그 역할을 수행했다. 이들 둘 사이에 비록 120~30여년의 시차가 존재하지만, 둘은 모두 노동이 존중받지 않으면 부의 분배는 물론 정의로운 국가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공통적으로 터득했다.

학교에서 이제는 본격적으로 노동교육을 해야 할 필요성이 느껴지는 것은 노회찬의 역할이 계속되어야 한다는 이유에 더해서, 다음과 같은 영역에서 한국이 OECD 가입국 평균치에서 훨씬 미달된다는 것 때문이다. 즉 노동3권을 중심으로 노동시간, 노동착취, 연차기간과 수당, 육아휴직, 고용보험, 퇴직연금, 실업급여, 산재보험, 고용지원금, 공정거래법, 일감 몰아주기 등이다. 이러한 부문에서 나타나는 사회적 제반 모순이 교사의 손을 거쳐 교실에 도입될 수 있어야 한다.

노동관련 사안들에 대해 학생들이 거의 무지(無知)의 상태로 사회에 나가도록 하는 것은 나침반과 항해술을 전혀 가르치지 않고 바다로 내보내는 것과 같다. 일본에서는 이미 초등학교때 노동법을 가르치고 있을 정도다. 한편, 노동의 가치에 대해 박노자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한국에서) 노동자를 '저주받은 자'로 만든 것은 비참한 현실적 문제 외에도 학교 교육을 통해 재생산되는 담론이기도 하다. 우리는 툭하면 일본과 중국의 역사 왜곡에 분노하지만, 우리 자신의 역사교과서도 한번 노동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해보자. 신라사를 배울 때 김춘추, 김유신 같은 정치꾼의 이름은 술술 외워도 민족의 자랑인 에밀레종의 주조를 총괄했던 8세기 후반의 뛰어난 주종(鑄鐘) 기술자 대(大)박사 박종일의 이름 석자를 배운 사람이 있는가? 고대에 '박사'라는 말은 학자 뿐만 아니라 국가가 인정한 뛰어난 장인(匠人)도 지칭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은가?" (2005/9/12일자 한겨레 칼럼)

한국에서 노동차별, 직업차별은 수 십에서 수 백대 일의 치열한 공무원 경쟁률을 보이는 것에도 반영되어 있다. 한국의 인재들이 안정적인 생활과 노후가 보장되는 길을 선택하는 것과 달리, 독일에서는 청년이 창업하면 대개 3년간 월급을 보장해준다. 생계를 염려하지 말고 충분히 기술개발에 전념하라는 것이다. 독일이 세계적인 제조업 강국이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 역시 정부의 정치력과 기업의 경영철학의 산물일 것이다.

둘째, 철학교육을 시작할 때

이미 노회찬이 대학의 철학과를 지망했었다는 사실도 그렇거니와, 그는 노동자들의 의식을 정치적으로 끌어올림과 동시에, 정치권의 관심이 아래의 중하층으로 향하게 하면서 일생을 달려왔다. 하부구조와 상부구조의 통합을 기하고자 한 것이다. 마르크스가 '사유(思惟)의 존재(存在)에 의한 피구속성(被拘束性)'을 얘기함으로써 '경제적 조건이 인간의 의식을 결정한다'는 결정론적 견해를 피력한 바 있지 않은가? 노회찬은 이를 의식하여 노동과 정치의 존재적 한계를 동시에 극복하고자 한 것이다. 노동자의 자의식의 성장은 곧 노동과 철학의 결합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이진경의 철학 교양서 제목이 <철학과 굴뚝청소부>인 이유가 읽혀진다. 즉 노회찬은 노동현실에 가해지는 자본이 인간화의 길을 가도록 애쓰며 살았다. 그리고 그의 몸과 생각이 늘 노동자, 장애인 등 우리사회의 약자(弱者)와 함께 했다. 그가 즐겨 쓴 노동자의 언어와 코믹한 은유적 표현은 말 그대로 '철학과 (굴뚝)청소부'를 연결하는 훌륭한 매개체였다.
사진 2. 프랑스의 바칼로레아 철학 논술문제 고 노회찬 의원을 추모하는 마음으로 노동, 자유, 평등과 같은 가치를 중심으로 문제를 발췌한 것
▲ 사진 2. 프랑스의 바칼로레아 철학 논술문제 고 노회찬 의원을 추모하는 마음으로 노동, 자유, 평등과 같은 가치를 중심으로 문제를 발췌한 것
ⓒ 신남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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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바칼로레아 철학문제 중 도표와 같은 문제들은 노동, 정치, 정의,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탐색하도록 만든다. 이에 답을 해가는 과정이 곧 철학교육이다. 이러한 학교의 철학교육은 노회찬의 고단했던 삶의 궤적을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게 하는 근본적인 방법도 될 것이다.

왜냐하면 노동과 자본이 모두 철학적 소양으로 고양되면 노동착취와 직업차별이 그만큼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21세기 OECD 소속 한국에서는 지금도 노동착취가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다. 미투운동의 여성들에 대한 보복, 노조 탄압, 재벌기업의 갑질, 시간제 노동(알바) 학생들에 대한 착취 등 다양한 경로로 이뤄지고 있다.

그런데 학교에서 철학교육을 가능케 하려면 교육부장관의 부총리다운 정치적 신념과 결단이 필요하다. 현재 정부는 2022학년도 입시제도의 변경에 주력하고 있는데, 수능 및 정시모집의 비중을 확대하고 상대평가를 강화하면 철학교육의 가능성은 사라지고 만다. 교과서와 문제풀이 수업이 맹위를 떨치는 교실에 생각, 독서, 토론하는 철학수업이 들어설 여지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이른바 입시 선발의 '공정성 신화(神話)'에 가려 객관식 수능문제가 학생들의 잠재력을 측정, 예측하는데 있어서 실패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지 못하고 있다. 평가도구 곧 수능문제가 잠재력 측정의 정확성 곧 '타당성'이 결여되었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입시제도 논쟁의 한계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일본, 프랑스 등과 같이 주 5일 수업 중에서 다시 하루를 빼 교사들이 수업자료를 준비하도록 '도서관 가는 날'로 정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따라서 2022학년도부터라면 더욱 좋고, 아니면 그 이후 부터라도 수능 절대평가, 나아가 수능을 전면 논술로 변경함과 동시에 사회적으로는 직업차별을 극복하기 위해 실질적인 정책을 펴는 것이 매우 긴요하다. 즉 입시경쟁의 정도를 완화시켜야 교육개혁은 물론 철학교육이 끼어들 여지가 생길 것이며, 이를 가능케 하는 사회적 조건이 직업Ÿ학력차별의 극복이기 때문이다.

결국 노회찬의 의원의 죽음이 온전히 정당화될 수는 없다고 해도, 그가 노동과 정치(철학)의 양 세계를 넘나든 흔치 않은 신념의 정치인임이 좀더 분명해진다. 노동과 정치, 노동과 철학의 유토피아적 조화를 지향한 그의 꿈이 우리 모두의 꿈과 다르지 않다면, 이제 슬픔과 아쉬운 마음을 추스려가며 교육에서 그의 생과 죽음에 응답할 차례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윤만식, 김창식 전현직 교사와 논의를 거쳐 작성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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