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후 울산 문수축구경기장에서 열린 축구국가대표팀 평가전 대한민국과 세르비아의 경기에서 한국의 구자철이 자신이 얻어낸 패널티킥을 침착하게 성공하고 있다.

14일 오후 울산 문수축구경기장에서 열린 축구국가대표팀 평가전 대한민국과 세르비아의 경기에서 한국의 구자철이 자신이 얻어낸 패널티킥을 침착하게 성공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국 축구의 레전드' 박지성은 2011년 아시안컵을 끝으로 국가대표 은퇴를 전격 선언했다. 당시 30세의 젊은 나이였지만 고질적인 무릎 부상의 후유증, 반복되는 국가대표 차출로 인한 장거리 이동의 체력적 부담, 한국 축구의 에이스로서의 책임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박지성의 이른 은퇴를 더욱 앞당긴 원인으로 거론된다.

박지성의 은퇴로부터 7년이 흐른 지금, 또 다른 '국가대표 주장 출신'의 두 유럽파가 대표팀 은퇴를 고민하고 있다.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주장을 맡았던 구자철, 2018 러시아 월드컵 주장 기성용이 그 주인공이다. 두 선수는 2010년대 이후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핵심 선수들로 오랫동안 활약했으며 나란히 이번 월드컵을 끝으로 태극마크를 내려놓는 결정을 심사숙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지성과 비슷하게 두 선수 이제 갓 30세를 바라보는 나이로 예전같으면 대표팀 은퇴를 이야기하기에는 다소 이른 시점이다.

구자철-기성용의 은퇴 고민, 의존도 낮춰야 한다?

이들의 은퇴 고민을 바라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그동안 대표팀을 위해 기여했으니 이제는 명예롭게 놓아줘야 한다'는 반응이 있는가 하면 '아직은 대표팀에서 해줘야 할 역할이 남아있다'는 반론도 만만치않다. 기성용과 구자철은 지난 10년간 소속팀과 대표팀을 넘나들며 매년 큰 부담을 감수해야 했다. 어느덧 30대를 바라보는 지금, 이제는 홀가분하게 소속팀과 자신의 축구에 전념할 수 있도록 배려줘야 한다는 의견에도 일리가 있다.

한편 대표팀을 위해서라도 이들에 대한 의존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기성용은 부동의 플레이메이커, 구자철은 공격형 미들라이커로서 대표팀 전술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던 선수들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대표팀의 주전술이 4-4-2로 바뀌면서 공격형 미드필더였던 구자철의 입지가 급격히 줄었고, 지난 월드컵에서는 기성용이 빠진 독일전에서 점유율을 포기한 대신 오히려 대표팀의 압박과 활동량이 더 살아나며 한국 축구의 색깔을 되찾았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이 한꺼번에 빠지게 된다면 대표팀이 입게될 전력누수가 가볍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당장 내년 1월이면 2019 아시안컵이 열리는데 한국 축구는 아직 새로운 사령탑 선임도 확정짓지 못한 상황에서 기성용과 구자철 같은 주력 선수들이 이탈한다면 타격이 크다. 무엇보다 자연스러운 세대교체의 가교 역할을 해줘야 할 경험 많은 선수들이 사라지게 되면서 생기게 될 리더십의 공백도 우려된다.

잘해야 본전인 대표팀... 의욕 떨어지지 않게 관리해야

밝은 표정의 기성용 프리미어리그 뉴캐슬 유나이티드로 이적한 한국 축구 대표팀 주장 기성용이 1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18.7.1

▲ 밝은 표정의 기성용 프리미어리그 뉴캐슬 유나이티드로 이적한 한국 축구 대표팀 주장 기성용이 1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18.7.1 ⓒ 연합뉴스


또한 한국 축구 입장에서는 향후 국가대표 선수들의 조기 은퇴 사례가 반복되는 상황에 대해서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박지성에 이어 기성용과 구자철까지 잇달아 은퇴하게 된다면 '30세가 안 된 유럽파'들이 태극마크를 일찍 반납하는 게 일종의 전통처럼 굳어질 가능성도 있다. 당장 한국 축구의 에이스로 꼽히는 손흥민도 다음 카타르 월드컵까지 불과 4년 뒤면 서른이 된다.

무엇보다 이 선수들이 왜 아직 축구선수로서 한창 나이에 대표팀 은퇴를 고민할 수밖에 없었는지도 생각해봐야 한다. 이들은 이미 대표팀에서 이룰수 있는 것은 모두 이뤘다고 생각할 만하다. 월드컵이나 올림픽, 아시안컵 같은 각종 국제대회를 두루 나가봤고, 병역혜택도 얻었으며 유럽 진출을 통헤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았다.

유럽파 선수들이 A매치가 있을때마다 장거리 이동을 감수해야하는 것은 일상적인 풍경이 됐다. 박지성이나 기성용, 손흥민 같은 간판스타급 선수들의 경우, 비중이 낮은 평가전이나 병역 혜택이 걸린 연령대별 대회에도 참가하느라 쉴 틈이 없다. 선수의 몸에 무리가 가고 체력적 부담이 커지는 것은 당연지사이고 혹사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기대에 못 미치는 경기력을 보이면 가장 먼저 열정이 없거나 실력이 녹슬었다는 비판을 듣기 일쑤다.

특히 한국축구가 황금기를 지나 최근 몇 년간 국제대회에서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거두면서 국가대표 선수들이 받는 비난과 스트레스도 증가했다. 잘해야 본전이고 못하면 욕을 먹어야 하는 대표팀 생활에 대한 의욕이 떨어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이런 사례가 반복된다면 결국 태극마크에 대한 명예나 책임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물론 선수에게만 국가를 위한 희생을 무한정 강요할 수는 없다. 만일 선수가 대표팀에서 더 이상 이룰 게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들의 의사를 존중해서 명예롭게 보내줄 필요도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 국가대표 선수들이 태극마크에 대한 책임감과 열정을 오래 유지할 수 있도록 선수를 관리하는 방식에서도 새로운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K리그의 전설로 자리잡은 이동국은 "선수라면 대표팀에 대한 열정을 항상 가지고 있어야 한다. 선수를 은퇴하지 않는 한 내가 먼저 대표팀을 은퇴하겠다고 선언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물론 이동국의 생각이 꼭 정답은 아니다. 그러나 태극마크가 선수에게 부담스럽거나 일찍 그만두고 싶은 자리가 된다면 무언가 구조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것은 분명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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