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랑> 메인포스터 영화 <인랑> 메인포스터

▲ 영화 <인랑> 메인포스터 영화 <인랑> 메인포스터 ⓒ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01.

영화 <인랑>의 원작인 동명 애니메이션은 1999년 오키우라 히로유키 감독의 작품으로, 오시이 마모루 각본에 기반을 두고 있다. 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1960년대의 일본을 배경으로 고성장을 주도하는 정부와 이로 인한 부작용으로 수많은 실업자들의 격렬한 반정부 투쟁이 벌어지고, 이에 대응해 결성된 대 게릴라 진압 기관인 특수기동대(아래 특기대)에 대한 이야기다. 외면적으로는 액션에 치중되어 있어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서로의 이권을 위해 물고 물리는 관계를 형성하는 정치적 요소들이 잘 그려졌다는 평을 받고 있다.

김지운 감독에 따르면, 그는 이 작품을 통해 대단한 에너지를 얻게 되었고 영화화에 대한 매혹을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이와 동시에 비슷한 시기에 SF라는 장르에 대한 끌림 역시 컸다고. 다만 원작의 내용을 그대로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시기와 배경·이야기의 중심축을 다소 옮겨가는 방향으로 각색했다. 이를 통해 국내 관객들의 정서에 더 가까워질 수 있게 연출하고자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배경은 통일을 준비 중인 시기이자 가까운 미래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가정하여 설정되었다.

영화 <인랑>은 원작의 내용과는 조금 다른 셈이다. <인랑>에서는 통일된 한국에서 신흥 강국으로 떠오를 것을 두려워한 강대국들의 경제 제재로 민생이 악화되자 등장한 반정부 테러리스트 단체 '섹트'와 이에 맞선 경찰조직 '특기대'의 대립을 그려낸다.

영화 <인랑> 스틸컷 영화 <인랑> 스틸컷

▲ 영화 <인랑> 스틸컷 영화 <인랑> 스틸컷 ⓒ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02.

이 작품의 가장 두드러지는 강점은 원작 애니메이션의 실사화를 성공적으로 해내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초반부에 한번, 후반부에 한번 등장하는 하수도에서의 액션 시퀀스는 원작의 분위기를 잘 묘사해낸다. 현재 일본에서 실사화되고 있는 다른 애니메이션 원작 기반의 영화 작품들과 비교해서도 <인랑>이 오히려 압도적인 작품성을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완성도가 높다. 특히 원작에서 인랑을 상징하는 붉은 눈동자와 기갑형 갑옷은 이 작품을 상징하는 요소로서 부족함이 없다. 마치 김지운 감독에게는 이것을 어떻게 구현하는가가 최대의 과제로 여겨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물론 김지운 감독은 전작들에서 이미 시각적인 부분을 통해 분위기를 전달하는 능력을 끊임없이 보여준 바 있다. 새 작품을 내놓을 때마다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다양한 장르를 소화하고 있다. 어떤 장르를 연출하더라도 구현 능력에 있어서 만큼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또한 <달콤한 인생>(2005)을 시작으로, <라스트 스탠드>(2013), <밀정>(2016)을 통해 함께 호흡을 맞춰오고 있는 김지용 촬영감독이 함께했다는 사실에도 의미가 있다. 남산 타워에서 이루어지는 액션 시퀀스는 물론, 두 주인공이 함께 도망치며 비밀 가옥을 찾아 다니는 장면들에도 감독 특유의 분위기가 묻어난다.

03.

문제는 스토리의 빈약함에 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내러티브들 간의 연결고리가 너무 약하다. 어느 한 작품의 스토리가 빈약하다고 이야기할 때 일반적으로 두 가지 지점을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각각의 내러티브 자체가 엉성한 구조를 갖고 있는지 혹은 내러티브나 플롯 자체에는 큰 문제가 없지만 이를 연결하는 연결고리에 문제가 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이 작품 <인랑>의 경우에는 후자에 속한다. 각각의 내러티브 자체도 완벽하게 구성되어 있고 충분한 설명을 보장한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특기대·섹트·공안부 나름의 목적과 이유를 드러내고자 하는 모습이 보인다. 두 주인공 임중경(강동원 분)과 이윤희(한효주 분)가 서로에게 감정을 느끼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이유 역시 표현된다. 다만, 표현되는 것에서 그칠 뿐 그 감정의 깊이를 강하게 전달하거나 다른 내러티브와 긴밀하게 연결시켜 밀도를 높이는 데는 실패하고 만다.

극의 초반부에서 격렬한 대립 끝에 특기대에 의해 섹트가 제압당하고, 약화된 섹트의 입지를 이용해 서로를 이용하려는 특기대 쪽 인물 임중경과 공안부 쪽 인물 이윤희가 조우하면서 그 밀도는 더욱 옅어진다. 여기에는 이 작품이 표방하는 장르가 액션과 누아르에 기반을 둔다는 것도 큰 요인이 된다. 서로의 목적에 따라 배신과 암투가 뒤섞이는 내용의 작품에서 내러티브들의 연결이 긴밀해야 관객들이 긴장감을 느끼고 집중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특히 이 작품의 경우에는 '인랑'의 정체를 감추고 적을 교란하거나 서로의 목적을 숨긴 채 상대를 속여야 하는 스파이 장르의 요소까지 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중경과 윤희의 관계에 할애한다. 그것조차 완벽히 구사하지 못하면서.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멜로와 액션, 누아르, 그 어느 것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채 양 쪽 모두에 발만 담그고 있는 느낌이다.

영화 <인랑> 스틸컷 영화 <인랑> 스틸컷

▲ 영화 <인랑> 스틸컷 영화 <인랑> 스틸컷 ⓒ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04.

더 큰 문제는 원작의 엔딩을 감독의 의지대로 변형한 것에 대한 근거를 제대로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각색의 과정에서 원작의 내용을 반드시 그대로 따라가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원작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야말로, 하나의 작품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는 형태에 있어 예술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자유로운 모습일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때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새로운 해석을 뒷받침할 만한 나름대로의 구조와 근거를 제시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원작에서 타이틀인 '인랑'의 의미가 가장 두드러지는 장면은 후세 카즈키(영화 <인랑> 속 임중경에 해당하는 캐릭터, 강동원 분)라는 인물이 사랑했던 아마미야 케이(영화 속 이윤희, 한효주 분)를 명령에 따라 제 손으로 죽이는 장면이다. 섹트를 제압하러 내려간 하수구에서 망설이던 끝에 폭탄으로 자폭하려는 소녀도 쏘지 않았던 카즈키가 조직을 위해 자신의 마지막 인간성까지 버리던 장면. 작품 속 여러 사건들을 통해 스즈키 자신이 조직의 목표 이외의 것에 흔들렸을 때 야기될 수 있는 결과들을 확인하고, 역시 자신이 있어야 하는 곳은 '무리'라는 것을 스스로 결정함으로써 타이틀의 '인랑' 중 '인'(사람 인)이 아닌 '랑'(이리 랑)에 방점을 찍는다.

결국 그는 늑대의 임무를 수행한 인간이 아니라, 인간의 임무를 수행한 늑대였음(아마미야 케이를 속였던 것처럼)이 다시 한 번 강조되는 것. 이 모든 개연성을 무시한 채, 모든 장면을 동일하게 가져가다가 엔딩만 바꾼다고 해서 그 의미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을까? 그리고 그것이 진짜 각색의 묘미를 살릴 수 있을까? 이 부분이 가장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05.

최근의 소식에 따르면, 넷플릭스가 영화 <인랑>의 해외 판권을 사들이면서 릴리즈에 앞서 재편집을 계획 중이라고 한다. 촬영 기간 중 계획한 부분이 어디까지인지는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지만, 그동안 김지운 감독이 DVD 버전에 삽입해 온 다양한 엔딩 장면을 떠올려보면 넷플릭스 버전의 <인랑>에서는 국내 극장판과는 다른 엔딩(원작의 엔딩을 그대로 따르는 버전)을 보여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새로운 편집본에서는 빈약한 서사가 주는 이 아쉬움을 조금 씻어낼 수 있을까.

영화 무비 인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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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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