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5년부터 2008년까지 4년 동안 두산 베어스에서 활약하며 49승32패 평균자책점 3.41을 기록했던 외국인 투수 맷 랜들에게는 한 가지 독특한 이력이 있다. 바로 미국 마이너리그 경력이 없다는 점이다. 외국인 선수 수급이 대부분 미국에서 이뤄지는 KBO리그에서 대학 중퇴 후 일본에 진출했다가 두산과 계약해 3년 연속 10승을 따낸 랜들은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보기 힘든 유형의 외국인 선수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프로 리그가 활발하게 운영되는 축구의 경우엔 K리그에서 외국인 선수를 영입하는 경로도 매우 다양하다. K리그 역대 최고의 공격수로 꼽히는 데얀 다미아노비치는 세르비아와 사우디 아라비아 등에서 임대생활을 하다가 2007년 K리그에 입성한 후 기량을 꽃피웠다. 유럽 무대에 진출하지 못하고 자국리그에서 뛰는 (어중간한 재능의) 브라질 선수들도 K리그 구단들의 주요 타깃이다.

2007년 데얀을 보유한 인천이 그랬고 2016년 단일 시즌 최다 득점(35골)을 기록한 아드리아노(전북 현대)가 뛰었던 FC서울이 그랬던 것처럼 뛰어난 외국인 선수는 팀의 운명을 바꿔 놓기도 한다. 올해는 작년 시즌 K리그 챌린지 득점왕과 MVP를 휩쓸며 경남FC를 K리그 클래식으로 승격시켰고 올해는 경남을 아시아 챔피언스리그로 이끌려 하는 '브라질산 폭격기' 말컹이 팀 운명을 바꿔 놓은 대표적인 외국인 선수다.

 작년 시즌 K리그 챌린지를 폭격했던 말컹은 올 시즌 K리그 클래식 정복에 나섰다.

작년 시즌 K리그 챌린지를 폭격했던 말컹은 올 시즌 K리그 클래식 정복에 나섰다. ⓒ 경남FC 홈페이지 화면 캡처


임대 이적하자마자 K리그 챌린지를 폭격한 브라질산 장신 스트라이커

지난 2006년 지금은 '베트남의 히딩크'가 된 박항서 감독을 초대 사령탑으로 선임하면서 창단된 경남은 2007년 돌풍을 일으키며 6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했고 조광래 감독이 부임한 2008년에는 FA컵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중상위권을 달리며 착실하게 성장하던 2010년,경남은 조광래 감독이 A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하며 중도사퇴했고 신인왕 윤빛가람(상주상무)의 대활약에도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

경남은 2012년 메인 스폰서인 STX의 지원 중단과 구단주였던 김두관 전 도지사의 사퇴로 인해 표류하면서 승점 50점으로 8위에 머물렀다. 홍준표 구단주가 부임한 2013년 강등권 경쟁을 벌이다가 11위로 간신히 잔류에 성공한 경남은 2014년 광주FC와 승강 플레이오프를 벌인 끝에 1무1패로 K리그 챌린지로 강등이 확정됐다. 2015년 9월에는 안종복 전 사장의 심판 매수 스캔들이 터지면서 해체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2016년 김종부 감독이 새로 부임한 경남은 심판 매수에 대한 징계로 승점 10점이 삭감된 채 시즌을 시작했지만 18승6무16패 승점 50점으로 K리그 챌린지에서 8위를 기록했다. 그리고 공격력 보강을 원했던 경남은 2016년부터 눈 여겨 보고 있던 브라질 선수를 임대로 영입했다. 196cm의 큰 신장을 자랑하는 1994년생의 젊은 스트라이커 말컹이었다.

말컹 타임 25일 경남 창원시 성산구 창원축구센터에서 열린 2018 KEB하나은행 대한축구협회(FA)컵 32강전 경남 FC와 FC 서울 경기. 경남 말컹이 드리블을 하고 있다.

▲ 말컹 타임 25일 경남 창원시 성산구 창원축구센터에서 열린 2018 KEB하나은행 대한축구협회(FA)컵 32강전 경남 FC와 FC 서울 경기. 경남 말컹이 드리블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말컹은 2002년 한일월드컵 우승 멤버이자 말컹의 전 소속팀 이투아누FC 구단주 주니뉴 파울리스타가 특별히 아끼는 선수였지만 냉정하게 보면 아직 프로무대에서 실적이 거의 없는 신예 선수에 불과했다. 하지만 말컹은 시즌 개막 후 12경기에서 7골2도움을 기록하며 경남을 k리그 챌린지 단독 선두로 이끌었고 그해 5월 임대 딱지를 떼고 3년 계약을 체결하며 경남으로 완전 이적했다.

말컹은 작년 시즌 K리그 챌린지에서 22득점 3도움에 경기 MVP에 11번이나 선정되는 격이 다른 활약을 펼치며 경남을 K리그 챌린지 우승으로 이끌었다. 말컹은 그 해 연말 시상식에서 득점왕은 물론이고 K리그 챌린지 MVP, 공격수 부문 베스트11까지 모두 휩쓸었다. 말컹은 이적 1년 만에 경남을 K리그 클래식으로 승격시키며 경남팬들에게 복덩이로 떠올랐다.

개막전 해트트릭 포함 경기당 1개 이상의 공격 포인트 기록 중인 말컹

K리그 챌린지를 폭격하며 기세 좋게 K리그 클래식 무대에 도전했지만 올 시즌 말컹에 대한 축구팬들의 평가는 반반이었다. 물론 압도적인 피지컬에 뛰어난 골 결정력까지 갖춘 말컹이 K리그 클래식에서도 충분히 통할 거라고 예상하는 사람도 상당히 많았다. 하지만 K리그 클래식과 K리그 챌린지는 엄연히 수준 차이가 나는 무대이기 때문에 말컹이 K리그 클래식에서는 작년처럼 마음껏 활개를 치고 다니지 못할 거란 의견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말컹은 시즌이 시작되자마자 상주상무와의 개막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상위리그에서도 충분히 통할 수 있는 선수라는 사실을 증명했다. 개막전 해트트릭은 1983년 슈퍼리그라는 이름으로 K리그가 창단된 후 단 2번밖에 나오지 않았던 대기록이다(나머지 한 명은 2005년 전남 드래곤즈 유니폼을 입고 개막전 해트트릭을 기록했던 루마니아 출신의 아드리안 네아가였다).

경남FC 말컹 '골, 골' 4일 경남 창원시 성산구 창원축구센터에서 열린 'KEB하나은행 K리그 1' 경남 FC와 상주 상무의 경기. 경남 FC 말컹이 2번째 골을 넣은 후 기뻐하고 있다.

▲ 경남FC 말컹 '골, 골' 지난 3월 4일 경남 창원시 성산구 창원축구센터에서 열린 'KEB하나은행 K리그 1' 경남 FC와 상주 상무의 경기. 경남 FC 말컹이 2번째 골을 넣은 후 기뻐하고 있다. ⓒ 연합뉴스


말컹은 올 시즌 강원FC의 '소양강 폭격기' 우로시 제리치(16골)와 치열한 득점왕 경쟁을 벌이며 경남의 돌풍을 이끌고 있다. 뛰어난 피지컬을 이용한 타점 높은 헤더와 강한 몸싸움이 강점이지만 신장에 비해 의외로 빠른 스피드와 유연함까지 겸비했다. 올 시즌 18경기에 출전해 15골4도움으로 경기당 1개 이상의 공격포인트를 기록하고 있는 말컹은 득점2위, 도움 공동5위, . 경기당 득점 1위(0.833개)를 기록하고 있다.

특히 지난 28일 서울과의 원정경기에서 말컹은 원맨쇼에 가까운 활약을 펼쳤다. 말컹은 전반 9분 이광진의 크로스를 그림 같은 오버헤드킥으로 연결시키며 선제골을 기록했다. 경남은 서율의 안델손과 고요한에게 연속골을 내주며 역전을 허용했지만 말컹은 후반8분 정확한 헤더 패스로 최영준의 동점골을 어시스트했다. 그리고 후반 40분에는 네게바의 크로스를 왼쪽 골대 구석으로 향하는 강력하고 정확한 헤더골로 연결하며 경남의 재역전승을 이끌었다.

경남의 올 시즌 목표는 내년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진출이다. K리그는 리그 1,2위팀과 FA컵 우승팀에게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직행 티켓이 주어지고 리그 3위 팀은 다른 나라 팀과 플레이오프를 치러야 한다. 현재 승점 36점으로 K리그 클래식 2위를 달리고 있는 경남은 충분히 챔피언스리그 직행 티켓을 노릴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물론 말컹이라는 '괴물'의 활약이 없었다면 작년까지 K리그 챌린지에서 뛰었던 경남이 아시아 챔피언스리그를 노리는 일 따위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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