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먼 도미닉의 'Me No Jay Park' 앨범 재킷

사이먼 도미닉의 'Me No Jay Park' 앨범 재킷 ⓒ AOMG


지난 몇 년 동안, 힙합 팬들 사이에서 가장 흔하게 들을 수 있는 말이 '일해라 정기석'이었다. 래퍼 사이먼 도미닉(정기석)이 언급될 때마다 팬들은 '일해라 정기석'이라는 댓글을 달곤 했다. 사이먼 도미닉은 랍티미스트와 함께 만든 정규 1집 앨범 < SNL LEAGUE BEGINS > 이후 7년 동안 앨범 단위의 작품을 내놓지 못했다. 그가 행사에서 부르는 노래들이 '사이먼 도미닉', '돈은 거짓말 안 해', '땡땡땡' 정도를 빼면 몇 되지 않는다며 비아냥거리는 팬들도 적지 않았다(사실 사이먼 도미닉에 대한 팬들의 압박은, 그가 훌륭한 래퍼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29일, 사이먼 도미닉이 새 앨범 <다크룸(DARKROOM)>의 최종 버전을 발표했다. 그는 이미 지난 6월 15일 8곡의 수록곡을 음원으로 발표한 바 있다. 여기에 'Me No Jay Park'과 'In My Hood'를 포함해 10곡 분량의 앨범을 완성해 실물 앨범으로 발매했다. '암실'이라는 제목과 걸맞게, 그의 내면에 자리잡았던 어두움과 우울이 기록된 작품이다. 이 중 독특한 제목으로 관심을 끄는 곡이 있는데, 그레이가 프로듀싱한 'Me No Jay Park'이다. '나는 박재범이 아니야'라는 제목을 통해, 그가 지금까지 받아온 압박감들이 어떤 것인지 엿볼 수 있다.

사이먼 도미닉의 공백이 길어지면서, 힙합 커뮤니티에서는 사이먼 도미닉과 박재범을 비교하는 목소리들이 있었다. 절친한 동료이자, AOMG의 공동 대표인 박재범은 현재 한국 힙합계에서 가장 눈부신 성과들을 내고 있다. 그는 매년, 매달 의미 있는 결과물을 내놓았고, 이는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음악인상' 수상으로까지 이어졌다. 제이지(JAY-Z)의 락네이션(Roc Nation)에 입성하는 쾌거까지 이뤄냈으니, '허슬'의 본보기라고 할 수 있었다.

한편, 사이먼 도미닉은 자신에 대한 대중들의 여론이 어떤 것인지 몹시 잘 알고 있었다. 이미 에픽하이의 '노땡큐'에서 사이먼 도미닉은 자신을 '출근 안하는 CEO', '출근 안하는 래퍼'로 표현했고, '앨범은 내 때가 내면 내. 비난은 발매가 되면 해'라며 짜증섞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신곡 'Me No Jay Park'에서 그가 하고 싶은 말은 더욱 뚜렷해진다. 곡의 후렴구 자체가 '일해라 정기석'으로 도배되어 있으니, 다른 설명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늦어지는 컴백에 가장 문제인 건 내 자신한테 받아내기 힘든 오케이 컷"
"히트 몇 개로 재탕하는 양심 없는 나의 무대 그딴 걸 보러 와준 팬들에겐 고맙고 미안"
"사장님 대표님 소리도 징그럽게 들려 난 Park(박재범)의 속도를 따라가는 게 힘들었네 그저"

- 'Me No Jay Park' 중

'나는 래퍼일 때 가장 나 답다'

 사이먼 도미닉의 새 앨범 < DARKROOM > 커버 이미지.

사이먼 도미닉의 새 앨범 < DARKROOM > 커버 이미지. ⓒ AOMG


이 곡에서 사이먼 도미닉은 솔직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쇼미더머니에 나가지 않는다'는 말을 바꾼 것은 실적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늦어진 앨범에 대한 솔직한 해명 역시 담겨 있다. 자신에게 만족하지 못했기 때문에 앨범을 마무리하지 못 했다는 것이다.

박재범에 대한 언급도 많이 발견된다. 박재범을 '아이돌로 시작해서 얻어낸 R-E-S-P-E-C-T'라고 칭하며 존경심을 표하는 한편, 동료의 화려한 행보가 자신에게 얼마나 큰 압박감으로 다가왔는지를 고백하기도 한다.

사이먼 도미닉은 이 곡에서 AOMG 대표직을 내던질 것임을 선언한다. 'Me No Jay Park'의 앨범 재킷에도 '상기 본인은 다음과 같은 사유로 대표직을 사임합니다'라는 사임서가 새겨져 있다. 이 선언은 결코 허언이 아니었다. AOMG 측에서도 사이먼 도미닉이 대표직에서 사퇴한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오직 래퍼일 때 나는 나답지"라는 가사는 사이먼 도미닉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이 어떤 것인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자신에게 존재하던 모든 짐을 벗어 던지고, 음악에만 집중하겠다는 의지의 발현이다. 'Me No Jay Park'은 지금까지 그를 괴롭혀왔을 '일해라 정기석'에 대한 최고의 대답이며, 가장 쿨한 사임서라고 할 수 있다. 더불어, 힙합이 왜 매력적인 장르인지를 잘 보여주는 싱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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