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알고싶다> 방송 중 일부.

<그것이 알고싶다> 방송 중 일부. ⓒ SBS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이하 한사성) 사이버공간에서의 성폭력 문제를 공론화하고, 피해자를 지원하는 업무를 하는 비영리 시민단체다. '국산 포르노'라는 이름으로 올라오는 불법 동영상에 대해 현재 가장 적극적으로 문제제기하고 있는 활동가들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5월 한사성이 페이스북에 불법촬영물이 유포되는 방식에 대해 비판하는 게시글을 올린 적이 있다. 그런데 일부 유저들이 이 촬영물은 한국 영상이 아니라 중국 영상이라면서 한사성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물론 해당 영상은 중국에서 촬영된 불법 영상이었던 것은 맞지만, 한국에서도 얼마든지 접근 가능하며 한국 웹하드에서도 검색이 되는 영상이었다. 국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불법으로 촬영된 영상을 우리나라에서도 내려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한 것.

과연 중국 여성이 피해자라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안심해도 되는 걸까. 돈 몇 푼이면 얼마든지 다운받을 수 있고 누군가는 삶이 망가진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닐까? 이런 사이버 성범죄에 대해 별 문제의식이 없는 풍토 때문에 계속해서 피해자가 나오는 것일 테다.

돈을 매개로 한 공생관계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 중 일부.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 중 일부. ⓒ SBS


지난 28일 방영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죽어도 사라지지 않는.. 웹하드 불법동영상의 진실' 편은 지속적으로 문제 제기되어 왔던 디지털 성폭력이 왜 쉽게 근절되지 않는가에 대해 그 이유를 끈질기게 추적했다.

피해자가 보이지 않는 자판기. 리벤지 포르노를 소비한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돈을 내고 제품(불법 영상)을 받지만 정작 자판기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는. 실제로 많은 피해 여성들은 자살하기도 한다. 방송은 피해자의 지인을 찾아가 인터뷰한다. 아무리 삭제를 요청해도 업로더나 웹하드 업체는 묵묵부답이었다고 한다.

지인의 말을 빌리면 '한 개를 없애면 열 개, 백 개가 나타나는 구조'다. 실제로 국내에는 수많은 웹하드가 있으며 성인인증을 거치면 성인 동영상에 접근할 수 있다. 해당 영상의 제목을 검색하면 여전히 여러 웹하드에 뜬다. 그 영상의 업로더들은 모두 적으면 몇천 개부터 많게까지는 1만 여개의 영상을 업로드한 '헤비 업로더'다.

불법 동영상을 올리면 수익 배분이 헤비 업로더일수록 업로더가 많이 가져갈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7: 3부터 5: 5까지 배분 방식은 다양하지만 결국 불법 영상을 통해 더 많은 수익을 가져갈 수 있는 쪽은 웹하드인 것이다. 굳이 웹하드가 불법 영상을 적극적으로 규제해야 할 필요성을 못 느낄만한 대목임을 알 수 있다.

"제휴업체가 저작권 침해를 받았다하면 벌금을 물어주는 게 무서워서 이쪽(제휴 컨텐츠)은 되게 꼼꼼하게 보는 거거든요. 근데 불법 성인 동영상 같은 경우는 사실 개인의 힘이 그렇게 세지도 않고 피해자 분들이 어떻게 한다고 해도 삭제를 안 해주면 그만이거든요. (전 웹하드 업체 직원)"

오히려 웹하드 입장에서 헤비 업로더는 단순 회원 이상의 존재들이다. 직접적으로 연락을 하고 관리해주는 사이가 된다. 헤비 업로더가 많이 올려줘야 웹하드도 많은 수익을 낼 수 있으니까 말이다. 일종의 '파트너'다. 경찰이 그 사람에 대한 신상정보를 요구해도 업체 쪽에서는 신변보호를 해준다는 헤비 업로더의 증언은 충격적이다.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말을 빌리면 웹하드 업체가 '공범자'이자' '교사자'의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막을 수 있는데 막지 않는다?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 중 일부.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 중 일부. ⓒ SBS


업로더와 웹하드 간의 이런 경제적 공생관계는 어찌 보면 직접적으로 연관이 되어 있는 이해당사자니까 그럴 듯 해 보인다. 하지만 이런 돈을 매개로 한 카르텔은 또 있었다. 동영상 필터링 업체의 대표를 맡았던 제보자 김 씨의 말을 빌리면 막을 수 있는 기술도 방법론도 이미 구축이 되어 있는데 수익 때문에 안 하는 게 문제라는 것.

김 대표에게 10년 전 업계의 독보적인 존재인 A 웹하드 업체를 운영하던 왕 씨가 스카우트 제안을 했고 김 대표는 거절했다. 그러자 왕 씨는 필터링 업체를 인수하기에 이른다. 그러니까 웹하드 업체의 불법 영상을 필터링하는 업체를 웹하드 업체가 소유하게 된 아이러니한 상황인 것이다. 독립적인 경영을 약속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2011년 불법영상을 대거 업로드하는 과정에서 왕 씨의 필터링 업체도 개입되었기 때문이다.

이 사건 이후 왕 씨는 업계를 떠나 로봇 업체를 차렸다. 하지만 작년 여성가족부 국정감사에 따르면 웹하드 업체가 필터링 회사의 인사권과 운영권을 가지고 있고 이 회사가 디지털 장의사 회사를 차려 피해자들에게 돈을 받고 영상을 삭제해주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사실상 긴밀한 유착관계인 것이다.

다른 업체들과 달리 직접 제작진에 연락을 한 디지털콘텐츠네트워크협회의 협회장은 직접 제작진에게 연락을 했다. 해당 협회는 웹하드 업체들이 모여있는 단체다. 필터링이 잘 되지 않는 현실적인 이유에 대해 묻자 서버비 등의 부가적인 비용이 발생한다는 얘기를 한다. 돈이 들기 때문에 못한다는 것이냐는 제작진의 말에 협회장은 그것만이 이유가 아니라고 하지만 결국 돈의 문제로 귀결된다.

결국 아무도 비용을 감수하려 하지 않아서

디지털 성범죄 영상은 아무도 비용을 감수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필터링 업체에서는 필터링을 해야 할 이유를 못 찾으며. 수익이 되지 않는 일을 협회에 소속되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강제할 순 없다는 것이다. 긴 시간동안 인터뷰를 했지만 그래서 업체 자체 필터링을 강화하겠다는 것인지 아닌지 메시지가 명확하지가 않다. 서승희 한사성 대표는 이에 대해 결국에는 돈이 문제인 것임을 지적한다.

"저는 그게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을 하는 게 왜냐면 본인들에게 수익이 되는 구조로 만들고 싶은 거죠. 사업비를 받는다든지 아니면 국가적인 사업에 책임자로 책정된다든지 (하는 것을 원하는 거죠). 관련업계에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이 필터링을 한다는 것은 당연히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겨놓는 식이라고밖에 볼 수 없습니다."

'한 개인의 힘으로 되는 건 없다'라는 피해자의 절망적인 말이 이 문제의 핵심일지도 모른다. 제작진이 웹하드 업체를 찾아가도 이 핑계 저 핑계 대가면서 말끝을 흐리는 게 보통이다. '이런 영상들이 문제다'라고 하면 '그럼 (해당영상만) 지우고 영구정지 시키겠다'고 하는 게 전부다. 방송에서 보여지는 업계 관계자들의 태도는 결국 직접적인 책임은 자신들에게 없다는 식 아닌가. 과연 피해자 개개인이 이 거대한 카르텔 앞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 것일까?  웹하드 업체의 양심과 노력에만 맡겨둘 수도 없는 노릇이라는 MC 김상중의 말로 방송은 끝을 맺는다.

실제로 디지털 성폭력의 가해자에게 삭제 비용을 대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 여태껏 많이 있었다. 오는 9월 14일부터 시행되는 '성폭력 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 따라 디지털 성폭력 행위자에게 삭제 비용에 대한 구상권을 청구할 수 있게 되었다.

늦게나마 문제해결을 위해 국가가 움직이고 있으니 다행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봤고 누군가는 방송에서 나온 것처럼 삶을 포기했다. <그알> 방송 이후 청와대 청원에는 '불법촬영물과 웹하드 이 거대한 조직을 강력 처벌해야만 합니다'라는 이름의 청원이 올라왔으며, 하루만에 6,854명이 서명한 상태다. 이제는 정말 변화해야 할 시점이다. 누군가의 삶이 단돈 몇 백원에 파괴되는 현실을 막기 위해서.

#디지털성범죄 #그것이알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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