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한나> 포스터

영화 <한나> 포스터 ⓒ 영화사 마농(주)


한나(샬롯 램플링 분)는 남편(안드레 윌름스 분)이 감방에 갇힌 후 홀로 남겨진다. 그녀는 부잣집의 집안일을 하는 것 외 시간은 연기 학교에 가서 수업을 듣거나 수영장에서 수영하고 개를 보살피면서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러나 남편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사과를 요구하는 피해자의 어머니가 찾아오고 손자의 생일 파티에 갔다가 차갑게 돌아서는 아들을 보며 그녀의 괴로움과 고독은 점점 깊어진다.

안드레아 팔라오로 감독이 연출한 영화 <한나>는 한나가 남편의 죄 때문에 주변으로부터 외면당하는 상황에서도 힘겹게 버티는 며칠간의 일상을 다룬다. 감독은 <한나>를 "한 여성의 헌신적인 희생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현실에서 겪어야만 하는 내면 안의 고통에 관한 영화"라고 소개한다. 그리고 "관객들이 영화를 통해 자기 자신의 내면세계를 이해할 기회를 갖기를 열망한다"고 연출 의도를 설명한다.

미니멀리즘, 각자 판단할 수 있게 하는 영화

 영화 <한나>의 한 장면

영화 <한나>의 한 장면 ⓒ 영화사 마농(주)


<한나>의 특징은 서사가 자리할 공간을 비우는 점이다. 인물 간의 대화는 거의 없다. 음악도 들리지 않는다. 여타 극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서사구조를 깨고 과할 정도로 여백을 둔 미니멀리즘에 대해 안드레아 팔라오로 감독은 "직접적인 설명보다 관객들로 하여금 각자의 판단에 맡기면 스스로 상상하며 흥분하게 되는 형식"이라고 이야기한다.

영화는 한나가 처한 상황만을 보여준다. 정신적 고통과 사회적 고립의 원인인 된 남편이 저지른 범죄가 무엇인지 밝히질 않는다. 관객은 영화가 제공하는 몇 가지 단서로 어렴풋이 어떤 범죄를 저질렀을 거라고 추론할 따름이다. 여백의 연출법은 관객이 한나의 삶을 궁금하게 만든다. 영화는 자신의 경험과 상상으로 영화 속 공백을 채우길 원한다. 또한, 남편을 믿고, 그것으로 인해 관계의 단절마저 받아들이는 한나를 지켜보라고 요구한다.

<한나>는 공간, 촬영, 대비를 활용해 한나가 처한 환경과 그녀의 심리를 전달한다. 영화에서 지하철 내부는 가장 빈번히 등장하는 공간이다. 그곳은 한나의 외부세계와 내부세계를 비추는 장치처럼 느껴진다. 사람들은 한나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무시하고 죄인인 양 바라본다. 사회가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처럼 말이다. 말다툼을 하는 연인들의 모습은 한나가 남편에게 느끼는 마음을 대변한다. 자유롭게 춤을 추는 사람을 물끄러미 응시하는 장면에선 벗어나길 바라는 꿈이 감지된다.

카메라는 창문, 문, 거울 등을 이용하여 한나를 화면에 담았다. 어두운 색감에 빛이 부족하고 비좁은 한나의 집은 창문, 문, 거울 등 제한된 프레임과 만나면서 외로움과 갇힘의 정서가 커진다. 반대로 한나가 일하는 부잣집은 흰색으로 칠해졌고 빛이 가득하며 넓다. 이곳은 마치 조각난 가족이 다시 붙여졌을 때를 바라는 한나의 희망일지도 모른다.

비어 있는 서사를 채우는 것은 배우 샬롯 램플링

 영화 <한나>의 한 장면

영화 <한나>의 한 장면 ⓒ 영화사 마농(주)


영화는 한나가 이상한 소리를 내는 걸 첫 장면으로 보여준다. 이어지는 장면을 통해 관객은 연극 연습이란 걸 알게 된다. 이 장면은 몇 가지의 의미를 지닌다. 하나, 한나가 주위 사람들을 향해 '가면'을 쓰고 있다는 뜻이다. 그녀는 계속 자신의 속내를 숨긴다.

둘, 한나가 연습하는 대본은 헨리크 입센의 1879년 희극 <인형의 집>이다. <한나>는 <인형의 집>이 다룬 '주체적인 여성'으로의 변화를 차용한다. 말하자면 극 중 <인형의 집> 연습은 한나의 변화를 담은 서브플롯인 셈이다. 셋, 영화는 한나를 클로즈업으로 잡았다. 한나가 마치 절규하는 포효나 고통에 찬 외침을 지르고 다른 사람의 소리에 반응하는 표정을 포착한다. 이것은 '관계 속의 나'라는 영화의 내용을 함축적으로 담고 있다.

샬롯 램플링은 비어있는 서사를 다른 형태로 채웠다. 1965년 데뷔 이후 지금까지 70여 편의 영화에서 주연과 조연으로 활약하며 프랑스를 대표하는 배우로 자리를 잡은 샬롯 램플링은 믿음, 불신, 고독, 상처, 인내, 수치심, 죄책감 등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휘몰아치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오롯이 얼굴로 나타낸다. '얼굴의 드라마'가 존재한다면 아마도 <한나>의 샬롯 램플링이 아닌가 싶다. 26일 개봉. 제74회 베니스 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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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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