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0일 오후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인 박정기(90)씨가 입원한 부산의 한 요양병원을 찾은 문무일 검찰총장이 박씨의 손을 잡고 쾌유를 빌고 있다.
 지난 3월 20일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인 박정기(90)씨가 입원한 부산의 한 요양병원을 찾은 문무일 검찰총장이 박씨의 손을 잡고 쾌유를 빌고 있는 모습. 안타깝게 박정기씨는 7월 28일 오전 별세했다.
ⓒ 정민규

관련사진보기


[기사보강 : 28일 낮 12시 20분]

6월항쟁의 도화선이 된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박정기(90)씨가 아들 곁으로 떠났다. 아들 박종철 열사가 사망한 지 31년 만이다.

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에 따르면, 박씨는 이날 오전 5시 50분께 부산 수영구의 한 요양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지난해 1월 넘어져 척추 수술을 한 뒤로 급격히 쇠약해진 박씨는 결국 자리를 털고 일어나지 못하고 숨을 거뒀다.

장례는 부산 부산진구 시민장례식장에서 4일장으로 치러지며, 발인은 31일 엄수될 예정이다.

서울대 언어학과에 다니던 박종철 열사는 1987년 1월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경찰의 물고문을 받아 목숨을 잃었다. 경찰은 "책상을 '탁' 치니 갑자기 '억' 하고 쓰러졌다"며 사건을 은폐하려고 했지만, 결국 물고문 사실이 드러나며 국민의 분노를 자아냈다. 이는 같은 해 6월항쟁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영화 <1987>의 한 장면.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가 아들의 영정을 끌어안고 눈물 흘리고 있다.
 영화 <1987>의 한 장면.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가 아들의 영정을 끌어안고 눈물 흘리고 있다.
ⓒ CJ엔터테인먼트

관련사진보기


2012년 12월 개봉한 영화 <1987>은 당시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특히 박씨가 아들 박종철 열사를 떠나보내는 장면이 많은 이들의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실제 1987년 당시 박씨가 한 말이었던 "철아, 잘 가그래이... 아부지는 할 말이 없대이"라는 대사가 다시 회자되기도 했다.

지난 1월, 이철성 당시 경찰청장은 경찰 지휘부와 함께 남영동 대공분실을 찾아 박종철 열사의 영정에 고개를 숙였다. 문무일 검찰총장도 지난 3월 박씨가 입원 중인 병원을 찾아 당시 은폐에 가담한 검찰을 대표해 사과했다. 문 총장은 박씨가 위중하다는 소식을 듣고 지난 21일 다시 병문안했다. 한편 박종철 열사의 사인을 단순 쇼크사로 은폐하려고 한 강민창 전 내무부 치안본부장은 지난 6일 노환으로 숨졌다.

이날 더불어민주당은 "고 박종철 열사의 부친 박정기님의 명복을 빈다"라고 밝혔다. 김효은 더불어민주당 부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1987년 경찰에 불법 체포돼 고문 사망한 박종철 열사 아버지께서 오랜 투병 끝에 한 많은 생을 마감했다"라며 "고문치사 사건은 조작과 은폐를 시도한 군사독재정권에 맞선 6월항쟁으로 이어져 민주화의 문을 활짝 열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작년 3월 문무일 검찰총장이 박 열사의 부친 병상을 찾아 사과도 했지만, 검찰 등 공권력은 억울하고 원통한 국민이 없도록 항상 깨어있어야 한다"라며 "젊은 자식을 먼저 보내고 '아부지는 할 말이 없다'고 통곡하시던 아버지의 영면을 기원한다"라고 위로했다.

그러면서 "(6월항쟁) 이후 30년 세월 동안 헌법을 훼손하고 민주주의를 파괴하려는 권력과 자본의 온갖 시도에도 우리 국민들은 피로 만든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왔다"라며 "최근 드러난 기무사 계엄 문건 등 민주화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려는 반헌법적·시대착오적 시도는 역사 속으로 사라져야 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댓글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오마이뉴스 법조팀. 선악의 저편을 바라봅니다. extremes88@ohmynews.com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