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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의 별'이 된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 그는 언제나 소외받는 사회적 약자들의 곁에 함께했다. 금배지를 달았을 때든, 달지 않았을 때든, 그는 '진보 정치인'으로서 여러 투쟁 현장을 찾았다. 손을 맞잡고, 함께 아파하고, 함께 싸웠다.

그가 걸어온 역사를 뒤돌아봤을 때 무겁지 않은 발걸음이 없지만, 인상적인 현장 세 곳을 '굳이' 꼽아봤다. 누군가는 그 현장 덕분에 노회찬이라는 이름을 평생 잊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평생에 각인된 그 신(Scene)을, 우리의 기억에도 나누어 담는 것. 그것이 그가 떠나는 길을 외롭지 않게 만드는 방법 중 하나일 것이다.

[삼성] 2014년 2월 6일, 구로 CGV

삼성 직원의 백혈병 문제 다른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이 개봉된 6일 오전 서울 구로구 구로 CGV에서 영화 속 주인공의 실제 모델인 삼성반도체 피해자 고 황유미 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와 노회찬 정의당 전 의원,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이 영화를 관람한 뒤 박수를 치고 있다.

이날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수리기사로 일하다가 부당함을 폭로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최종범 씨의 부인 이미희 씨와, 위영일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 지회장 등 삼성 관련 피해자 가족과 삼성 반도체 재해 문제를 고발해 왔던 이종란 노무사도 함께 영화를 관람했다.
▲ <또 하나의 약속>감동의 박수 물결 삼성 직원의 백혈병 문제 다른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이 개봉된 6일 오전 서울 구로구 구로 CGV에서 영화 속 주인공의 실제 모델인 삼성반도체 피해자 고 황유미 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와 노회찬 정의당 전 의원,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이 영화를 관람한 뒤 박수를 치고 있다. 이날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수리기사로 일하다가 부당함을 폭로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최종범 씨의 부인 이미희 씨와, 위영일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 지회장 등 삼성 관련 피해자 가족과 삼성 반도체 재해 문제를 고발해 왔던 이종란 노무사도 함께 영화를 관람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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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제작 과정부터 참여했습니다. 삼성 직업병 피해자들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2014년 2월 6일 오전 구로 CGV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을 보기 위해 모인 이들이었다. <또 하나의 약속>은 삼성 반도체 백혈병 피해자인 고 황유미씨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2007년, 삼성 기흥공장에서 2년 가까이 일하던 황유미씨는 급성 백혈병 진단을 받고 세상을 떠났다. 비슷한 사례가 한둘이 아니었다. 하지만 삼성은 책임을 회피했다. 딸의 죽음이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지 아버지는 따져 묻기 시작했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이 만들어졌다.

<또 하나의 약속>은 시민들의 자발적 모금을 통해 간신히 개봉할 수 있었다. 고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는 딸의 유품을 가지고 영화관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그가 앉은 자리 바로 옆에는 노회찬 의원이 함께 했다. <또 하나의 약속> 개봉 전, 노 의원은 자신의 트위터에 아래와 같은 글을 올렸다.

"예고편 보고 울컥하기도 처음입니다. 우리 모두가 '변호인'이 되어야 할 현실을 감동적으로 다뤘습니다. 영화를 보는 것부터 세상을 바꾸는 작은 실천입니다."

당시 노 의원은 이른바 '삼성 X파일' 사건으로 인해 의원직을 상실한 상태였다. 삼성으로부터 '떡값'을 받은 검사들의 명단을 공개했으나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유죄를 선고받은 탓이었다. 노 의원과 삼성의 악연은 질겼다. 하지만 그는 지속적으로 삼성의 노조 탄압과 경영권 편법 승계 등 여러 문제를 비판했다. 백혈병 문제 역시 그가 예의주시하던 이슈 중 하나였다.

3선에 성공하며 원내 복귀한 노 의원은  2017년 4월 민주노총과 함께 '중대재해기업처벌법(재해에 대한 기업 및 정부 책임자 처벌에 관한 특별법)'을 발의했지만 계류중이다. '위험의 외주화'를 막고, 산업재해가 발생했을 때의 책임자 처벌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그가 끝내 읽지 못한 마지막 메시지 중 하나도 이들을 향한 것이었다.

"삼성전자 등 반도체사업장에서 백혈병 및 각종 질환에 걸린 노동자들에 대한 조정합의가 이뤄졌습니다. 10년이 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동안 이 사안을 사회적으로 공감시키고 그 해결을 앞장서서 이끌어 온 단체인 '반올림'과 수많은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사업장에서의 백혈병 등 질환 발병과 관련한 문제 해결을 위한 조정위원회'(조정위)가 내놓은 조정안을 수용하겠다는 의사를 지난 22일 밝혔다. 11년에 걸친 반올림의 투쟁이 마무리되는 순간이었다. 24일, 삼성전자와 반올림은 서로 손을 맞잡고 분쟁합의에 서명했지만, 함께 기뻐해야 할 노회찬 의원은 그 자리에 있을 수 없게 됐다.

황상기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대표가 25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황상기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대표가 25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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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고 노회찬 의원의 빈소를 찾은 김시녀씨는 "이 기쁨을 같이 누렸어야 했는데"하고 비통해 했다. 그는 한혜경씨의 어머니로, 삼성전자 LCD공장 노동자였던 한혜경씨는 뇌종양을 앓고 있다. 김씨는 "국회에서 청문회 하고 이럴 때 다른 의원들은 '가면 가고 오면 오나'보다 하는데, 노회찬 의원님은 저희한테 끝까지 따라 나오셔서 '우리 혜경이'라고 등 두들겨 주면서 '잘 될 거야'라고 하셨다"라며 "하나하나 손 잡아주시면서 힘내라고 하셨는데..."하며 아쉬워했다.

황상기씨 또한 "마음이 안 좋다"라면서 "노회찬 의원은 반올림 활동 처음 할 때부터 많이 지지해주셨다"라고 말했다. "반올림 시위, 집회할 때도 많이 보살펴주시고, 많이 응원해주시셨는데..."라면서 "세상에 이런 일이 어떻게 있을 수 있나"라며 안타까워했다. 황씨는 노회찬 의원과의 기억을 떠올리기도 했다.

"처음 반올림 만들고 나서 삼성 기흥공장에 다니다가 (한 노동자가) 백혈병에 걸렸다는 제보가 들어왔어요. 그분이 조금 이따가 돌아가셨죠. 그 장례식장에 가서 노회찬 의원님이 엄청나게 비통해하셨어요. 그 모습이 떠오르네요."

[KTX] 2008년 5월 9일, 서울역 광장

"긴 기간 동안 온갖 고초를 겪은 승무원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그동안 지나간 일들만 생각하면 가슴이 울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멈출 수는 없습니다. 800일이 지났지만 깃발을 내려서는 안 됩니다. 단순히 역사에 기록될 상징으로만 남길 수 없습니다. 실질적인 복귀를 위한 싸움이 돼야 합니다. 다시금 힘을 내주십시오."

KTX 여자 승무원들의 투쟁이 800일을 맞이하던 2008년 5월 9일. 서울역 광장 계단에 노회찬이 있었다. 2004년, KTX 첫 개통을 앞두고 여자 승무원들이 대규모 채용됐다. 이들은 정규직 전환을 약속받고 입사했다. 그러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지난한 파업 투쟁이 시작됐다.

2006년 4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에서 노 의원은 감사원장을 향해 "KTX 여승무원은 철도공사의 직접적인 지휘감독을 받고, 승무업무는 근로자 파견이 허용되는 업무가 아니므로 철도공사에서 직접 고용해야 하지 않느냐"고 따져 물었다. 전윤철 당시 감사원장은 "KTX 여승무원은 철도공사가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문제는 쉬이 해결되지 않았다. 2008년 9월, 노회찬 의원은 추석을 앞두고 오미선 당시 전국철도노조 KTX 열차승무지부장에게 "추석이 끝나기 전에 내려올 수 있도록 돕겠다"고 약속했다. 서울역 철탑 위에서 고공농성 중이었던 오 지부장은 "이번 추석에는 내려올 수 없을 것 같다"고 답했다. 약속은 결국 지켜지지 못했다.

이후 법원에서 시비를 가리게 되었지만, 2015년 2월 대법원은 "직접 근로관계가 성립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라며 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직접 근로관계 성립을 인정했던 1심과 2심을 뒤집는 판결이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은 이 판결을 '2015년 최악의 판결'로 선정했다.

KTX 해고승무원인 김승하 철도노조 KTX열차승무지부장이 24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빈소를 찾아 심상정 대표와 인사를 나눈 후 눈물을 흘리고 있다.
 KTX 해고승무원인 김승하 철도노조 KTX열차승무지부장이 24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빈소를 찾아 심상정 대표와 인사를 나눈 후 눈물을 흘리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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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이 판결은 양승태 당시 대법원장이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청와대와 '사법거래'를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지난 5월 30일,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한 노회찬 의원은 "해고가 정당하다는 판결이 나면서 그동안 앞선 판결 때문에 받은 임금 다 환수당하고, 자살한 분까지 생겨났다"라면서 "아마 전 세계에서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평했다.

지난 21일, 극적으로 노사협상이 타결되면서 KTX 승무원들의 복직이 12년 2개월 만에 확정됐다. 국정감사 때마다 꾸준하게 문제를 제기했던 노회찬 의원은 KTX 승무원들에게 축하 인사를 남겼다. 그러나 끝내 자신의 육성으로 읽지는 못했다.

"KTX 승무원들 역시 10여년의 복직투쟁을 마감하고 180여 명이 코레일 사원으로 입사하게 됐습니다. 입사한 뒤 정규직 전환이라는 말을 믿고 일해 왔는데 자회사로 옮기라는 지시를 듣고 싸움을 시작한지 12년 만입니다. 오랜 기간 투쟁해 온 KTX 승무원 노동자들에게 축하의 인사를 전합니다."

24일, 고 노회찬 의원의 빈소를 찾은 김승하 KTX 열차승무지부장은 "마지막 남기신 말씀이 '축하한다'라는 말씀이라는 얘기를 들었다"라며 "그걸 직접 들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하고 말을 잇지 못했다.

[젠더] 2007년 6월 2일, 서울 청계광장

2008년 5월 31일, 제9회 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해서 발언하고 있는 노회찬 당시 진보신당 공동대표의 모습. 그는 2008년뿐만 아니라 그 이전에도 그리고 그 이후에도 종종 퀴어퍼레이드에 참여했다. 마이크를 잡을 때도 있었지만, 개인 자격으로 와서 즐기고 간 경우도 많았다.
 2008년 5월 31일, 제9회 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해서 발언하고 있는 노회찬 당시 진보신당 공동대표의 모습. 그는 2008년뿐만 아니라 그 이전에도 그리고 그 이후에도 종종 퀴어퍼레이드에 참여했다. 마이크를 잡을 때도 있었지만, 개인 자격으로 와서 즐기고 간 경우도 많았다.
ⓒ 서울퀴어문화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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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가 아름다운 것은 하나의 색깔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 아닙니다. 일곱 가지 색깔이 서로 공존하기 때문입니다."

2007년 6월 첫 번째 토요일, 서울 청계광장에는 무지개색 깃발들이 나부꼈다.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의식이 지금보다도 훨씬 낙후되어 있었던 11년 전, 그 무지개 깃발 앞에 노회찬 당시 민주노동당 의원이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우리 헌법에는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고 나와 있다"라면서 "종교든, 사상이든, 양심이든, 학문이든, 그 어떤 이유로도 차별해선 안 된다"라고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자신의 양심과 선의에 기초해 스스로 가족 구성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 자리에서 노회찬은 동성결혼 합법화, 성전환자 성별변경 입법화 등을 약속했다.

실제로 노 의원은 2006년 10월 '성전환자의 성별변경 등에 대한 특별법안'을 대표 발의했으나 통과되지 못했다. 2008년 1월에는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포함한 차별금지법을 대표 발의했다. 국회에서 성소수자를 제도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국회의 첫 시도였으나, 기독교계의 반발 등으로 결국 처리되지 못했다. 실패로 끝난 사례만 있는 건 아니었다. 노회찬 의원이 의정활동을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대표 발의한 법안은 호주제 폐지를 골자로 하는 민법 개정안(2004년 9월)이었다. 국회에서 반대하는 의원들을 논리적으로 격파하고 결국 호주제 폐지를 이뤄냈다.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고 노회찬 의원의 빈소를 찾은 뒤 "그 누구보다 젠더 감수성이 탁월하셨다"고 회고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노 의원은 실제로 여성을 포함한 젠더 문제에 많은 관심을 쏟았고, 성 평등을 위해서 오랜 노력을 기울여 왔다. 2005년을 시작으로 매년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마다 꽃을 선물해온 건 유명한 이야기이다. 꽃을 받는 대상은 여성 오피니언 리더들부터 여성 당직자, 보좌진, 국회 여성 청소 노동자, 국회 출입 여성 기자 등 다양했다. 올해 3월 8일에도 그는 어김없이 장미꽃을 선물했다. 그 꽃에는 아래와 같은 편지도 동봉되어 있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의 회장인 정연순 변호사가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올린 사진. 노회찬 의원이 올해 세계 여성의 날에 선물한 장미꽃 한 송이와 편지이다. 노 의원은 2005년부터 14년째 매년 여성의 날마다 주변 여성들에게 장미꽃을 선물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의 회장인 정연순 변호사가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올린 사진. 노회찬 의원이 올해 세계 여성의 날에 선물한 장미꽃 한 송이와 편지이다. 노 의원은 2005년부터 14년째 매년 여성의 날마다 주변 여성들에게 장미꽃을 선물했다.
ⓒ 정연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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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힘으로 강제된 성적 억압과 착취가 침묵과 굴종의 세월을 헤치고 터져 나오는 현실을 보며 정치인으로서, 한 여성의 아들이자 또 다른 여성의 동반자로서 부끄러운 마음을 감추기 어렵다."

노회찬 의원이 조남주 작가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문재인 대통령 내외에게 선물했다는 것 역시 유명한 일화이다.

강명진 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장은 26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노회찬 의원께서는 퀴어퍼레이드 참여 규모가 2000~3000명일 때부터 함께해주셨다"라면서 "규모가 작다고 자긍심이나 중요도가 떨어지는 게 아닌데, 노회찬 의원께서 와주시는 게 그런 면에서 감사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노 의원은 마이크를 잡고 발언을 하지 않으시더라도, 종종 와서 같이 즐기고 가셨다"라면서 "언제나 약자들의 곁에 함께하셨던 분으로 기억하겠다"라고 밝혔다.


태그:#노회찬, #삼성전자, #KTX, #퀴어퍼레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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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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