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랑>에 출연한 배우 강동원.

영화 <인랑>에 출연한 배우 강동원. ⓒ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최근 영화 속에서 강동원은 방황하는 청년이었다. 실제 나이로 치면 어떤 유혹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불혹'에 가까워졌지만, 화면에서만큼은 시대와 사회, 그리고 개인의 가치관 사이에서 고민하고 방황하고 있었다.

25일 개봉한 김지운 감독의 신작 <인랑>, 그리고 올해 초 개봉한 <골든 슬럼버>와 지난해 말 관객들의 사랑을 받은 <1987>이 떠오른다. <인랑>은 일본 유명 작가가 각본을 쓴 애니메이션을 실사화한 작품이고, <골든 슬럼버>는 억울하게 범죄 누명을 쓴 한 청년의 이야기다. 그리고 <1987>은 알려진 대로 민주화 항쟁을 극화한 작품.

이처럼 최근 그의 출연작들의 간극은 매우 크지만 그 틈을 강동원이라는 렌즈로 바라보면 묘한 공통점이 있다. 앞서 말한 청년의 정서, 그는 그 정서를 오롯이 표현하고 있었다.  

늑대인가 사람인가

<인랑>의 시대적 배경은 2029년, 급변하는 국제정세로 경제위기에 몰린 한국은 북한과 전격 협상을 통해 통일국가를 만들기로 한다. 국민적 불안이 가중되는 가운데 정부의 통일 계획에 반대하는 무력시위단체 섹트와 이들을 진압하며 사회 정화를 이루려는 특기대 간 긴장관계가 계속된다. 강동원은 바로 특기대 정예 요원 임중경 역을 맡았다.

시위 진압, 나아가 때로는 무장한 시민들을 향해 무자비한 살상까지 감행하는 중경은 조직 내에서 인정받는 요원이다. 그런 그에게 우연을 가장해 한 여성(한효주)이 접근하며, 중경은 심리적 변화를 겪게 된다.

"(오시이 마모루 감독이 각본을 쓴) 원작 만화는 이미 2012년, 김지운 감독님이 이 영화를 하자고 제안하셨을 때 봤다. 대학생 때도 봤던 것 같은데 원작 속 주인공은 저와는 많이 다른 캐릭터 같았다. 어쨌든 실사화를 하면서 원작 이야기를 각색하는 게 쉽지 않았던 것 같다. 요즘 애니메이션이야 해피엔딩도 많지만, 과거 일본 애니메이션엔 우울함이 좀 있더라. 감독님이 고민 끝에 지금의 이야기를 만들었다.

개인적으론 원작 속 캐릭터를 참고하려 했다. 스토리는 다른데 캐릭터마저 달라지면 원작 팬들이 안 좋아하실 것 같아서였다. 애니메이션을 실사화하는 데 있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돌이켜 보면 뭘 더 할 수 있었을까 그런 생각도 든다. 뭔가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개봉 시기를 바꾸는 정도? 요즘 대작들이 너무 많이 나와서(웃음)."

 영화 <인랑>에서 강동원은 경찰 조직인 특기대원으로서 무장 시위 단체를 해산시키는 임무를 맡은 임중경을 연기했다.

영화 <인랑>에서 강동원은 경찰 조직인 특기대원으로서 무장 시위 단체를 해산시키는 임무를 맡은 임중경을 연기했다. ⓒ 워너브라더스코리아


감정이 잘 드러나지 않는 캐릭터, 게다가 상당 분량은 강화복을 입은 채 연기해야 했기에 그만큼 어려움이 컸다. 액션을 위해 체중조절과 근력과 체력 운동을 하면서 힘든 점을 토로했지만, 더 어려운 지점은 강화복은 입은 채로 관객에게 감정을 잘 전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김지운 감독은 "강화복 마스크 안에서도 표정 연기를 하고 있더라"며 반 농담처럼 지난 언론시사회 때 말했지만 일정 부분 사실이었다.

"무용수 분들이 몸을 움직일 때 연기를 안 하는 게 아니잖나. 강화복을 입고 있지만 표정을 짓지 않으면 몸으로 느낌이 나오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피아노 치시는 분들도 손가락만 움직이는 게 아닌 것처럼 말이다. 다만 좀 다른 점은 제가 입은 수트가 약간 틈이 있다. 몸에서 약간 떠 있는데 그래서 가면을 쓰고 멀뚱히 서 있으면 눈이 좀 멍청해 보이더라. 약간 고개를 숙이고 턱을 움직여서 표정을 지으면 반달 눈처럼 보여 못 돼 보인다. 그런 식으로 얼굴을 움직이고 그랬다(웃음)."

퇴보한 미래

영화에서 가장 의문점이 든 건 근 미래지만 우리 눈에 익숙한, 심지어 다소 연식이 돼 보이는 소품들이 대거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차량 추격 신, 임중경과 이윤희가 사용하는 휴대폰 등은 일부를 제외하고 지금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제품들이었다. "2029년이지만 우리끼리는 현재와 많이 다르지 않다고 설정을 잡았다"며 그가 말을 이었다.

"사실 조금 더 퇴보한 사회를 그리려 했다. 경제 상황이 안 좋아지면서 다들 삶이 어려워 진 것이니 말이다. 생각해 보면 10년 전과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잖나. 음... 차량 추격신에선 저도 의견을 내긴 했다. 중간중간에 낯선 차들이 섞여 있긴 하지만 너무 신차가 없는 거 아니냐고 말했었다. 우리가 (할리우드 SF 영화에 비해) 저예산이다 보니(웃음). 수트에 일단 돈을 너무 많이 썼고, 지하 수로 세트와 서울타워세트를 만드는 데에도 돈을 많이 쓰다 보니까 어려움이 좀 있었다. 사실 통일 한국 설정은 제가 작품을 제안받았을 때만 해도 예상치 못한 신선한 설정이었다. 그런데 지금 보면 한반도 주변 정세가 난리지 않나. 참 신기했다."
 배우 강동원.

배우 강동원. ⓒ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어지러운 정세 속에서 임중경은 조직의 임무와 개인의 가치관 사이에서 고뇌한다. 섹트 관련 인물이자 특기대와 적대 관계인 공안부에게 매수당한 이윤희를 특별하게 여기게 되면서 갈등은 더욱 심해진다. 조직 논리를 따를 것인가 그것을 박차고 개인으로 살아갈 것인가가 어쩌면 <인랑>이 가장 전달하고 싶은 중심 메시지일 것이다.

"이윤희라는 인물로 고뇌를 하는 설정이니 제 캐릭터를 의심하며 연기하진 않았다. 영화에 멜로와 정치적 상황 등 두 스토리가 있는데 화려한 액션도 보여야 했으니 감독님이 힘드셨겠지. 저야 원래도 갈등하던 인물이 여자를 만나 더 갈등하다가 뛰쳐나가는 것이니까. 특기대는 과연 어디서부터 왔을까를 생각해봤다. 임중경도 나이를 보면 다른 곳에서 일하다가 온 사람일 것이다. 아마 특수군인이지 않았을까. 사람을 죽이는 일까진 안 했을 텐데 특기대를 하면서 살상을 하게 되니 가책을 느끼고 흔들리는 것이라 생각했다. 사람을 당연하게 죽이는 인물이 아닌 셈이지.

(조직에서 소모되는 임중경처럼 실제 본인 역시 소모된다고 느낄 때가 있는지 묻자) 임중경은 소모되고 있는 것이 맞다. 그리고 아이러니 하지만 저 역시 소모되고 있는 면이 있다고 본다. 광고도 그런 이유로 많이 안 하려 하고, 홍보 역시 마찬가지다. 근데 날이 갈수록 해야 할 게 많아지더라(웃음). 인스타그램 라이브도 해야 한다고 하고, 무비톡도 하라고 하고. 한국 시장이 큰 시장이 아니라 노출이 많아지면 관객들 입장에선 피로감을 느낄 것 같다. 배우가 연기로 신선함을 줘야 하는데 자꾸 나오면 안 궁금해하시지 않을까."

 배우 강동원.

배우 강동원. ⓒ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새로운 도전

강동원은 여전히 작품에 목말라 했다. "작품 활동을 계속 해야 연기가 는다고 생각한다"며 그는 전부터 구상하고 있던 드라마 제작과 곧 촬영에 들어갈 할리우드 영화 < LA 쓰나미 >에 대해 전했다.

"여전히 제작에 대한 꿈은 가지고 있다. 계획도 짜 놨는데 일단 지금은 다 멈췄다. 영화를 열심히 하자는 생각이다. 지금은 다른 걸 할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없는 상태다. <인랑> 홍보가 끝나면 바로 미국으로 넘어가 촬영해야 하기에 영어 수업도 집중해서 받고 있다. 한국 배우로 거기 가서 창피해지지 않으려면 잘 해내야 하는데 걱정이 많다! 예전엔 친구 사귀는 게 좋아서 영어를 했는데 지금은 선생님을 두고 집중 수업을 받다 보니 뇌가 타 들어가는 느낌이다(웃음).

한국 시장이 작긴 작다. 그렇다고 엄청 작다고 할 순 없지만 한계가 있잖나. 관객 눈높이는 높아지고, 근무환경 역시 선진국처럼 되어 가고 있다. 제한된 시간에 높은 수준의 작품을 뽑아 내야 하는데 예산은 그만큼 안 되니 할리우드처럼 촬영팀이나 미술팀을 두 개, 세 개 돌릴 수 없고. 스태프 분들의 노동 문제를 고민하면서 해야 할 것 같다."


강동원은 단순히 연기만 잘 하려는 배우가 아닌 자신이 몸담고 있는 현장과 업계에 대한 고민도 함께 하는 모습이었다. 다시 처음에 던진 질문으로 돌아갔다. 그가 표현해왔던 청년의 정서를 <1987> 속 이한열 열사를 통해 물었다. <인랑>에서 조직 논리를 거부하고 뛰쳐나오려 한 임중경에게 근 과거, 역사 속 선배가 무엇이라 말했을까.

"(웃음) 엉뚱하면서 신선한 질문이다. 이한열 열사께서 살아계셨다면 지금쯤 연세가 환갑일 것이다. 임중경처럼 고뇌에 휩싸인 젊은이에게 뭔가 조언을 하지 않았을까. 임중경은 조직에 저항하고 있지만 동시에 사회에 저항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이한열 열사도 그러셨듯 말이다. 많이 궁금하더라. 지금도 계셨다면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정치인이 되셨을까. 민주화 운동을 했던 분들 중 정치하는 분들이 많으니 말이다." 
 배우 강동원.

배우 강동원. ⓒ 워너브러더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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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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