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의 가사들이 간직한 심리학적 의미를 찾아갑니다. 감정을 공유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의미까지 생각하는 '공감'을 통해 음악을 보다 풍요롭게 느껴보세요. - 기자말

휴가철이다. 여행하기 좋은 이 계절, 많은 사람들이 일상탈출을 꿈꾼다. 반복되는 일상을 잠시 떠나는 휴가 일정을 잡고, 여행을 계획할 때부터 마음은 설레기 시작한다. 막상 휴가지에서는 몰려든 관광객 때문에 정신이 없고, 평소보다 비싼 비용을 지불할지라도, 여행을 할 수 있다는 그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왜 사람은 여행을 하고, 이를 통해 에너지를 얻는 걸까? 여행이 필요한 이유를 상반된 분위기의 두 곡 볼빨간 사춘기의 '여행(작사 안지영/작곡 안지영 바닐라맨)'과 양희은 윤종신의 '배낭여행(작사 양희은/작곡 윤종신)'을 통해 생각해본다.

일상탈출 기분전환 '여행'

볼빨간 사춘기의 '여행'은 첫 리듬부터 여행을 떠날 때 느끼는 설렘을 고스란히 전한다. '핸드폰을 꺼놔요, 제발 날 찾진 말아줘'라고 사람들에게 선언하며 여행 짐을 꾸리는 순간 마음은 이미 '시끄럽게 소리를 질러도 어쩔 수' 없을 만큼 고조된다. '가볍게 손을 흔들며 bye bye' 인사하면서 가슴은 뛰기 시작한다. 특히, '쉬지 않고 빛났던' 치열한 일상을 살아내다 '이리저리 치이고 또 망가질 때쯤' 떠나는 여행은 그 어느 때보다도 기대된다. 비행기가 날아오르면 이미 나는 '날아다니는 새처럼' 자유로워진다.

그런데 정말 여행이 볼빨간 사춘기의 노래처럼 자유롭고 행복하기만 것일까. 실제로 여행의 과정을 찬찬히 살펴보면 곳곳에 스트레스 요인이 도사리고 있다. 여행 계획을 짜고 여기저기 가격을 비교해 교통수단과 숙소를 마련하는 것은 또 다른 업무처럼 느껴지곤 한다. 낯선 도시에서 길을 찾아다니는 것, 입맛에 맞지 않는 음식을 먹는 것, 낯선 언어로 의사소통을 해야 하는 것, 잘 모르는 화폐로 물건을 사는 것 모두 긴장감을 유발하는 일이다. 내가 살고 있는 도시의 한복판에서 길을 잃거나, 맛없는 식당에 갔거나, 말이 잘 통하지 않는다면 정말 짜증이 났을 텐데 왜 여행에서는 이 모든 것을 '자유'라고 느끼는 걸까?

역할을 내려놓을 때 느껴지는 자유

볼빨간사춘기 '여행'

볼빨간사춘기 '여행' 뮤직비디오 캡처 ⓒ 로엔 엔터테인먼트


그 답을 볼빨간 사춘기는 이렇게 노래한다. '아름다운 이 도시에 빠져서' 그리고 '답답한 이곳을 벗어나기만 하면'이라고. 일상에서 사람들은 주어진 역할 안에 자신을 포장하고 지낸다. 직장에서는 명함에 적힌 직함이 자신을 대신하며, 가정에서도 부모, 남편, 아내, 자녀 때로는 며느리와 사위로서 주어진 자신의 역할대로 행동한다. 많은 경우 이런 역할들이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는 역할일 뿐이지, 나 자신의 고유한 모습은 아니다. 실제 하루 중 우리가 온전히 우리 자신으로 사는 시간은 아마 잠들기 직전이나 방에 혼자 있는 아주 짧은 시간일 뿐이다.

이렇게 자기 자신이 아닌 역할에 맞춰 살아가고 있기에 우리는 일상에서 답답함을 느낀다. 노래 속 '답답한 이 곳'은 장소는 물론 나를 규정하는 역할도 포함한다 할 수 있다. 그런데 여행지에서는 이런 역할이 의미가 없다. 낯선 땅에서 나는 그냥 나일뿐이다. 사장이든, 부장이든, 사원이든, 공무원이든, 의사든, 변호사든 사회에서의 나의 위치는 내려놓게 된다. 물론, 가족과 함께 여행을 할 경우 가족 안에서의 역할은 계속되겠지만, 적어도 일터에서 나를 규정했던 역할로부터는 벗어날 수 있다.

역할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답게' 행동해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남을 의미한다. 때문에 '답답한 이 곳'을 떠난 여행자들은 심리적으로 유연해진다. 여행자이니 길을 좀 헤매도 괜찮고, 낯선 언어를 못 알아듣는 것도 당연한 일이며, 남들 시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평소 입고 싶었던 옷을 입어볼 수도 있다. 마음에 드는 풍경이나 상점 앞에서 긴 시간을 보내도 괜찮다. 나 자신을 보다 관대하게 대해주는 느슨한 마음은 '아름다운 이 도시에 빠져서' 지금-여기서의 시간에 보다 충실해지게 한다. 때문에 여행지에서 만나는 스트레스는 도전거리가 되고, 불편함 마저 자유로 느껴지는 것이다.

나를 보다 잘 들여다보는 '배낭여행'

볼빨간 사춘기가 신나는 멜로디와 리듬으로 여행에서의 자유와 정서적인 즐거움을 이야기한다면 양희은은 차분하게 읊조리는 '배낭여행'을 통해 여행에서의 사색을 노래한다. '배낭하나 짊어지고 떠나고만 싶어'라고 노래를 시작하는 양희은은 그저 훌쩍 떠나는 그런 여행길에 오른다. 조금은 외로울지 모르지만 '바람따라 구름따라 거칠 것 하나없이' 떠나는 여행길이다.

그리고 질문한다. '제자리에 머물면서 왜 알 수 없는 걸까' '멀리멀리 떠나야만 왜 내가 잘 보일까'라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여행을 통해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기도 하고 몰랐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왜 여행은 이런 기능을 하는 걸까. 이는 여행이 각 개인의 성찰적 능력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임상심리학자 David J. Willam은 <애착과 심리치료>라는 책에서 '마음이론'을 전개한 Main과 Fonagy의 의견을 빌어 정신건강의 핵심은 스스로와 타인에 대해 성찰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에 있다고 했다. 그는 경험에 '매몰'되어 있을 때는 그 경험 자체가 우리 자신인 것처럼 여겨지지만, 매몰에서 빠져나와 자신의 경험의 의미를 성찰한다면 자신과 타인을 보다 수용적으로 받아들이고 정신적으로 건강해질 수 있다고 한다. 거울에 딱 붙어선 상태로는 나의 모습을 전체적으로 볼 수 없듯,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자신의 경험을 보아야만 그 의미를 알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여행의 성찰적 기능

 2014년 양희은과 윤종신이 함께 작업한 '뜻밖의 만남 첫번째' 앨범

2014년 양희은과 윤종신이 함께 작업한 '뜻밖의 만남 첫번째' 앨범 ⓒ stone music entertainment


여행은 일상에 매몰된 상태에서 빠져나와 나 자신을 조망할 수 있는 적당한 거리를 제공한다. 때문에 여행을 하면서 지난 나의 일상을 돌아보면, 경험 안에서 내 마음이 작동하는 방식과 그 경험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경험의 의미를 알게 되면, 내게 상처를 준 것이 사건 자체가 아님을, 사건을 바라보는 내 마음을 바꾸면 상처가 다르게 해석됨을 깨닫게 된다. 상처와 나를 분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여행 중의 자유로움은 나 자신의 새로운 면을 발견할 기회를 제공한다. 여행 중에 심리적인 치유가 종종 일어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이 같은 여행의 성찰적 기능은 양희은이 노래 속에서 던지는 또 다른 질문인 '왜 모든 소중한 것들은 우리 눈에 안 보이는 걸까'에 대한 답을 제공한다. 밀착되어 있을 땐 볼 수 없었던 일상 속의 자잘한 행복들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또한, 경험 안에 매몰되어 있던 나의 마음에 대한 조망은 타인들 역시 그 각자의 마음이 작동하는 방식으로 경험을 이해하며, 서로 다르게 느끼고 행동할 수 있다는 깨달음으로 이어진다. 즉, 일상 속에서 이해하지 못했던 다른 이들을 보다 있는 그대로 수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성찰이 친밀한 다른 이들에 대한 수용으로 이어지면, 비록 여행에 그 사람이 함께 하지 못할지라도 마음 깊은 곳에서 연결감을 느끼게 된다. 노래의 처음부분에 '같이 떠날 누군가 있으면 참 좋겠어'라고 노래하던 양희은이 '마음에 한 사람 있어준다면 좋아'라고 바꿔 부르는 것처럼 말이다. 여행을 통해 친밀한 타인과 심리적 연결감을 회복해가는 것이다.

일상의 소중함

볼빨간 사춘기처럼 신나는 여행을 하든, 양희은처럼 사색하는 여행을 하든 여행에는 끝이 있다. 그 끝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답답한 이곳' 즉 나의 역할들과 치열한 일상이다. 하지만, 여행 후 다시 만난 일상은 예전과는 다르다. 기분전환을 하며 온전한 나를 만끽한 뒤 맞이하는 역할들은 그다지 답답하지 않다. 한 걸음 떨어져 나와 소중한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돌아온 뒤 만나는 소소한 일상들은 그 자체가 행복처럼 느껴진다. 여행 중 마음에 품었던 사람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여행이 끝나가는 아쉬움과 피로감을 뒤로하고 집에 돌아왔을 때 "그래도 집이 최고야"라는 말을 나도 모르게 뱉었다면 그 여행은 성공적인 여행일 것이다. 이 말 속에는 일상의 소중함과 편안함을 깨달았다는 의미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모든 여행의 목적은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는 데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내 집, 내 일상, 내 역할의 소중함을 알고 다시금 현실을 살아낼 수 있는 힘을 얻어 돌아온다면 어떤 여행이든 충분히 가치로울 것이다. 영원히 현실로 돌아오는 게 꺼려진다면 그건 여행이 아니라 '도피'일테니 말이다. 올 여름, 일상에 새로움을 더해줄, 지친 나를 깨워줄 여행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이미 휴가를 다녀왔다면 이 두 노래를 들으면서 여행의 추억을 꺼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저 오늘 떠나요 공항으로
핸드폰 꺼 놔요 제발 날 찾진 말아줘
시끄럽게 소리를 질러도 어쩔 수 없어 나
가볍게 손을 흔들며 bye bye

쉬지 않고 빛났던 꿈같은 my youth
이리저리 치이고 또 망가질 때쯤
지쳤어 나 미쳤어 나 떠날 거야 다 비켜 I fly away

Take me to London Paris New York city들
아름다운 이 도시에 빠져서 나
Like I'm a bird bird 날아다니는 새처럼
난 자유롭게 fly fly 나 숨을 쉬어

Take me to new world anywhere 어디든
답답한 이 곳을 벗어 나기만 하면
Shining light light 빛나는 my youth
자유롭게 fly fly 나 숨을 쉬어"

- 볼빨간 사춘기 '여행' 중에서.

"배낭 하나 짊어지고 길 떠나고만 싶어
바람따라 구름따라 거칠 것 하나없이
같이 떠날 누군가 있으면 참 좋겠어
외로울 때 혼자 부를 노래가.
마음에 한가득 남아있으면 좋아
제자리에 머물면서 왜 알 수 없는걸까
멀리멀리 떠나야만 왜 내가 잘 보일까

같이 떠날 누군가 있으면 참 좋겠어
외로울 때 내가 부를 이름도
마음에 한 사람 있어준다면 좋아

배낭하나 짊어지고 길 떠나고만 싶어
바람따라 구름따라 거칠 것 하나없이
산다는건 무엇일까?
행복은 또 어디에
왜 모든 소중한 것들은
우리 눈에 안 보이는 걸까
제자리에 머물면서 왜 알 수 없는걸까
멀리멀리 떠나야만 왜 내가 잘 보일까"

-양희은 윤종신 '배낭여행'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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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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