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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강 물돌이. S자 형태의 독특한 물돌이가 언뜻 한반도 지형을 닮았다. 나주 동강의 느러지 전망대에서 본 모습이다.
 영산강 물돌이. S자 형태의 독특한 물돌이가 언뜻 한반도 지형을 닮았다. 나주 동강의 느러지 전망대에서 본 모습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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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에서 발원한 영산강은 115.5㎞를 흘러 목포 앞바다에 몸을 섞는다. 너른 호남평야와 나주평야를 적시는 젖줄이다. 강물은 바다로 가는 길목인 무안에서 폭을 넓혀 더욱 당당해진다. 강폭은 몽탄에 이르러 S자 형태의 독특한 물돌이 지형을 빚어낸다.

강 건너 나주 동강의 느러지 전망대에서 보면 한반도 지형을 닮아 있다. 거침없이 흐르던 강물도 물돌이를 만나 더디 흐른다. 바닷물을 만나기에 앞서 겸손해진 모양새다. 숨가쁘게 흘러 온 지난 시간을 잠시 되돌아보는 듯하다. 더위에 지쳐 멈춘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고목과 어우러진 영산강변 식영정. 전라남도 무안군 몽탄면 이산리 배뫼마을에 있다. 뒤에는 산이, 앞으로는 강이 펼쳐지는 배산임수의 명당 자리다.
 고목과 어우러진 영산강변 식영정. 전라남도 무안군 몽탄면 이산리 배뫼마을에 있다. 뒤에는 산이, 앞으로는 강이 펼쳐지는 배산임수의 명당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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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강변의 식영정. 고목이 둘러싸고 있다. 고목 사이로 영산강 물줄기가 흐르고 있다.
 영산강변의 식영정. 고목이 둘러싸고 있다. 고목 사이로 영산강 물줄기가 흐르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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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돌이가 형성된 이곳, 전라남도 무안군 몽탄면 이산리 배뫼마을에 정자가 있다. 식영정(息營亭)이다. 정자 뒤에는 산이, 앞으로는 영산강이 펼쳐지는 배산임수의 지형 그대로다. 풍수지리로 볼 때 명당 중의 명당이다.

예전엔 오지 중의 오지였다. 산바람과 강바람이 만나 한결 시원하다. 정자 터로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곳이다. 영산강변의 정자 가운데서도 가장 아름다운 풍치를 지니고 있다. 지금은 풍광이 나무에 많이 가려졌지만, 영산강과 들판을 바라보기에 이만한 곳이 없었다.

정자는 정면과 측면 각 3칸에 팔작지붕을 얹었다. 가운데에 방을 넣고 삼면에 마루를 뒀다. 식영정 현판에다 '어약연비(魚躍鳶飛)'라 새겨진 현판을 하나 더 둔 게 눈길을 끈다. '어약연비'는 물고기가 연못에서 날뛰고 솔개가 하늘을 난다는, 만물이 제자리에서 자연스럽게 산다는 뜻을 담고 있다. 태평성대를 바라는 마음이었을 게다.
고목과 어우러진 영산강변의 정자 식영정.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 방어에 참여했던 한호 임연이 쉬면서 세상 경영의 구상을 한 곳이다.
 고목과 어우러진 영산강변의 정자 식영정.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 방어에 참여했던 한호 임연이 쉬면서 세상 경영의 구상을 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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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영정 현판과 함께 걸린 ‘어약연비(魚躍鳶飛)’. 물고기가 연못에서 날뛰고 솔개가 하늘을 난다는, 만물이 제자리에서 자연스럽게 산다는 뜻을 담고 있다.
 식영정 현판과 함께 걸린 ‘어약연비(魚躍鳶飛)’. 물고기가 연못에서 날뛰고 솔개가 하늘을 난다는, 만물이 제자리에서 자연스럽게 산다는 뜻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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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영정은 한호 임연(1589~1648)이 1630년에 지었다. 통정대부, 형조참의, 좌·우승지를 거쳐 영암군수, 진주목사, 남원부사에서 물러난 뒤 머문 공간이다. 담양 광주호반의 식영정이 그림자 영(影)을 쓴 것과 달리 경영할 영(營)을 썼다.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 방어에 참여했던 그의 이력으로 미뤄 전쟁을 끝내고 쉰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쉬면서 앞날을 짊어질 인재를 키운다는, 세상 경영의 의미로 읽힌다. 임연은 여기서 그의 호(閑好)처럼 여유를 즐기며 학문을 갈고 닦았다. 수많은 시인 묵객과 교류하면서 제목을 붙여 읊은 제영시(題詠詩) 92편을 남겼다.
고목 사이로 보이는 영산강 풍경. 여름 한낮의 햇볕을 받은 강물이 눈에 부시게 반짝인다.
 고목 사이로 보이는 영산강 풍경. 여름 한낮의 햇볕을 받은 강물이 눈에 부시게 반짝인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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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목 팽나무와 어우러진 식영정. 고목이 정자의 품격까지 높여준다. 나무가 드리운 그늘도 넓다.
 고목 팽나무와 어우러진 식영정. 고목이 정자의 품격까지 높여준다. 나무가 드리운 그늘도 넓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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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영정을 팽나무와 푸조나무 몇 그루가 둘러싸고 있다. 모두 500살이 넘은 고목들이다. 10m 넘는 큰 키와 3m가 넘는 가슴둘레로 정자의 품격까지 높여준다. 나무가 드리운 그늘도 넓다. 오래 전엔 마을사람과 뱃사공들의 쉼터였다. 관리의 손길이 수시로 미친 덕에 주변이 깔끔하다. 길손의 땀을 식히기에도 그지없다.

느릅나무과에 속하는 팽나무는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잘 자란다. 소금기 머금은 바닷가에서도 끄떡없다. 수백 년을 산 나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껍질도 얇고 매끄럽다. 당산나무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 푸조나무는 비옥한 땅에서 잘 자란다. 대기오염에 약하지만, 바람에 대한 저항력은 강하다. 팽나무도, 푸조나무도 강변 정자와 어우러져 더 멋스럽다.

식영정 마루에 앉아 잠시 쉬면서 푸조나무 사이로 바라본 강 풍경이 시원하다. 한낮의 햇볕을 받은 강물도 눈에 부시다. 나무가 무성하기 전, 탁 트인 풍광이 그려진다. 여러 들녘을 적시며 흐른 영산강은 고을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불렸다. 영산강의 마지막 여울인 몽탄에서는 몽탄강으로 불렸다. S자로 굽이쳐 흐른다고 '곡강'이라고도 했다.
푸조나무 고목이 식영정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나무가 드리운 그늘이 넓어 오래 전 마을사람과 뱃사공들의 쉼터로 인기였다.
 푸조나무 고목이 식영정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나무가 드리운 그늘이 넓어 오래 전 마을사람과 뱃사공들의 쉼터로 인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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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강변에서 식영정으로 통하는 돌계단. 위에는 식영정이 자리하고 있고, 아래에는 영산강이 흐른다.
 영산강변에서 식영정으로 통하는 돌계단. 위에는 식영정이 자리하고 있고, 아래에는 영산강이 흐른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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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조나무 옆으로 난 돌계단을 내려가면 몽탄나루다. 강정나루라고도 불린다. 영산강이 하구언으로 막히기 전까지 많은 배들이 드나들던 포구다. 영산포로 오가는 배들이 줄을 이어 번성했다. 당시엔 주막집도 있었다는 게 마을 어르신의 말이다. 포구에 남아있는 녹이 슨 계선주가 당시의 영화를 증거하고 있다. 강가에 묶여 있는 빈 배도 호젓해 보인다.

"옛날에는 물살이 얼마나 셌는지 몰라. 숭어도 많이 올라왔어. 정말 맛있었는데, 지금은 숭어를 구경하기도 힘들어."

마을 어르신의 말에서 숭어가 펄떡이던 지난 시절의 강변 풍경이 잠시 그려진다. 포구는 마을의 유래와 엮인다. 옛날에 전선창(戰船倉)이 있었고, 여기에 배를 매어뒀다는 뜻의 '배매'를 한자로 쓰면서 이산(梨山)이 됐다는 얘기다. 배의 지형을 닮은 뒷산이 주산(舟山)이었고, 일제강점기에 '이산'으로 바뀌었다는 설도 있다. 뒷산에 흐드러진 배꽃이 영산강에 꽃그림자를 드리웠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식영정 앞 영산강 포구에 남아있는 녹이 슨 계선주. 오래 전 번창하던 당시의 영화를 증거하고 있다.
 식영정 앞 영산강 포구에 남아있는 녹이 슨 계선주. 오래 전 번창하던 당시의 영화를 증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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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영정 앞 영산강변에 세워진 ‘몽탄노적(夢灘蘆笛)’ 비석. 꿈여울에서 듣는 갈대피리 소리를 상징하고 있다.
 식영정 앞 영산강변에 세워진 ‘몽탄노적(夢灘蘆笛)’ 비석. 꿈여울에서 듣는 갈대피리 소리를 상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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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뫼마을(이산)을 품은 몽탄(夢灘)은 '꿈여울'이다. 후삼국 때 왕건이 후백제의 견훤과 싸울 때다. 견훤에 쫓기던 왕건이 범람한 영산강에 막혀 죽을 위기를 맞았다. 그날 밤, 잠깐 눈을 붙인 사이 왕건의 꿈에 한 백발의 노인이 나타나 "지금 물이 빠지고 있으니 빨리 개울을 건너고, 그곳에 군사를 매복시켜 뒤따라오는 견훤군을 치라"고 훈계한다. 왕건은 노인이 일러준 대로 움직여 견훤의 군사를 물리친다. 왕건이 꿈속에서 건넌 여울이다.

강변에 '몽탄노적(夢灘蘆笛)' 비석이 세워져 있다. 꿈여울에서 듣는 갈대피리 소리, 갈대의 합창이 피리소리처럼 들린다는 곳이다. 왕건과 견훤도 그 소리를 들었는지 사뭇 궁금해진다. 영산강 8경 가운데 2경이다.
고목과 어우러진 무안 식영정 풍경. 담양의 식영정과는 또다른 풍경과 멋으로 다가선다.
 고목과 어우러진 무안 식영정 풍경. 담양의 식영정과는 또다른 풍경과 멋으로 다가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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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난이동산의 곧미남. 짧은 다리에 풍만한 몸매, 파마머리를 한 못난이 조형물이 눈길을 끈다. 영산강변에 자리하고 있다.
 못난이동산의 곧미남. 짧은 다리에 풍만한 몸매, 파마머리를 한 못난이 조형물이 눈길을 끈다. 영산강변에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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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영정에서 가까운 데에 금남 최부(1454~1504)의 사당과 묘가 있다. 조선시대 문신이었던 최부는 '표해록'의 저자다. 1487년 부친상을 당해 임지(任地)였던 제주에서 돌아오는 길에 풍랑을 만나 표류했다. 14일 동안 표류한 끝에 중국 절강성에 닿은 뒤 항주, 소주, 양주, 산동, 북경을 거쳐 6개월 만에 한양으로 돌아왔다.

참말로 별스런 못난이동산도 들러볼 만하다. 못난이들은 짧은 다리에 풍만한 몸매, 파마머리를 하고 있다. 두 볼은 양쪽으로 처져 있고, 입은 앞으로 튀어 나오고, 눈은 찢어져 있다. 코는 낮고 귀도 없어 볼품없이 생겼다. 무안군 일로읍 청호리에 있다.
못난이미술관 옥상에서 내려다 본 못난이동산 풍경. 볼품 없는 못난이 조형물이 군데군데 세워져 있다.
 못난이미술관 옥상에서 내려다 본 못난이동산 풍경. 볼품 없는 못난이 조형물이 군데군데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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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식영정, #배뫼마을, #느러지, #한호 임연, #못난이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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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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