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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이 지구에서 없으면 안 될 한 가지를 고른다면?" 하고 묻는다면, 저는 바로 "숲. 숲은 꼭 있어야 합니다" 하고 대꾸합니다. 그런데 누가 다시 물을 수 있어요. "이 지구에 더할 나위 없이 넘쳐나서 지구를 흔들거나 무너뜨리는 한 가지를 대라면?" 하고요. 이때에 저는 서슴없이 "비닐자루. 여기에도 저기에도 온통 비닐이에요. 이 비닐이 지구를 벌써 집어삼켰어요" 하고 대꾸합니다.
 겉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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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웅진주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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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겨지고 돌돌 말리고―
봉지들은 이제 끝이라고 생각했어요.
"여기까지야."
"다시는 우릴 찾지 않을 거야."
"어쩌면 쓰레기를 담을지도 모르지……."
한숨을 담은 봉지들은 말이 없어요. (4쪽)

<나는 봉지>(노인경, 웅진주니어, 2017)는 비닐자루가 나오는 그림책입니다. 이 그림책에서 비닐자루는 곁다리가 아닙니다. 이 그림책 줄거리를 이루는 바탕입니다. 이른바 주인공이 되어 이야기를 이끌어요.

다만 넘치고 넘치는 비닐자루는 사람한테 썩 사랑받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비닐자루를 엄청나게 집에도 쟁이고, 곳곳에서 거저로 얻을 뿐 아니라, 쉽게 버리고 굴리는데요, 이 비닐자루는 스스로 생각한대요. '딱 한 번 쓰이고 버림받을' 삶이라고, 때로는 '아예 한 번조차 안 쓰이고 버려질' 삶이 될는지 모른다고.

그런데 한숨을 쉬면서 걱정이 가득한 숱한 비닐자루 가운데 한 아이는 달리 생각했다는군요. 노란 비닐자루 하나는 동무 비닐자루처럼 처음에는 쓸쓸한 생각이 똑같이 들었다지만, 문득 바람노래를 들었대요. 바람노래를 듣고는 걱정 아닌 꿈을 키웠대요. 쓰레기통이나 구석진 곳을 떠나 멀리멀리 온갖 곳을 누비고 싶다는 꿈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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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웅진주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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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창밖에서 바람의 노래가 들려와요.
바스락바스락
노란 봉지는 바깥 세상이 궁금해요. (4쪽)

그림책 <나는 봉지>는 두 가지 뜻을 밝힙니다. 첫째, "나 = 봉지"입니다. 둘째, "날다 + 봉지"입니다. '나'는 비닐자루이면서 '하늘을 나는' 비닐자루입니다. 노란 비닐자루는 바람노래를 듣고 문득 눈을 뜬 뒤로 바람을 타고 온누리를 실컷 날아다닙니다. 사람을 구경하고 도시를 구경합니다. 바람이 들려주는 보드라운 소리를 맞이하면서, 바람이 보여주는 갖은 곳을 지켜봅니다. 이러다가 사람들하고 상냥하게 눈짓을 하고, 아이들하고 뛰어놉니다(날아놉니다 : 날아서 놀다).

어쩌면 꾸며낸 이야기로 여길 만합니다. 그리고 어쩌면 꾸며낸 이야기가 참말 있는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어른이 된 사람들은 못 보거나 모를 테지만, 맑고 밝게 뛰놀면서 꿈을 키우는 아이들은 비닐자루도 놀이동무로 삼을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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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닐자루한테 걱정을 털어놓습니다. 비닐자루한테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비닐자루를 곁에 두고 낮잠을 잡니다. 비닐자루를 옷걸이에 곱게 걸어 놓고서 다음에도 또 놀자고 말을 겁니다.

가만히 보면 우리 삶은 꿈을 꿀 적에 꿈처럼 바람노래를 듣고 바람놀이를 할 만할 수 있습니다. 꿈을 꾸지 않고서 근심걱정에 한숨이 가득하다면 쓰레기통에 처박혀 끝장이 나고 마는 비닐자루처럼 풀죽거나 고되거나 슬픈 삶이 될 수 있습니다.

어느 길을 가면 즐거울까요? 우리는 오늘 아침에 바람노래를 들으면서 문득 웃음을 지을 수 있을까요? 우리는 오늘부터 바람을 타고 훨훨 날아다니는 신나는 삶을 지을 수 있을까요?

덧붙이는 글 | 흔할 뿐 아니라, 쉽게 쓰거나 버려지는 비닐자루를 놓고 재미나게 이야기를 잘 엮은 그림책입니다.



나는 봉지

노인경 지음, 웅진주니어(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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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말사전 편집자로 일하면서, 전남 고흥에서 <사전 짓는 책숲집 '숲노래'>를 꾸립니다.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읽는 우리말 사전》《골목빛》을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