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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빈소가 마련된 23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시민들이 헌화하며 오열하고 있다.
▲ 노회찬 의원 빈소에 조문행렬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빈소가 마련된 23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시민들이 헌화하며 오열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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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정의당원이에요. 노회찬 의원님, 지금쯤 가시는 길 어딘가에서 서성이고 계시다면 일개 당원 말 한 마디만 듣고 가세요.

저 사실 그렇게 열정적인 당원도 아니에요. 매달 당비만 낼 뿐이지, 정당 행사에 참여해 본 적도 거의 없어요. 어디 가서 정의당원이라고 잘 말하지도 않아요. 요즘은 여행 다니느라 정당 일에 관심도 없었어요. 돈에 쪼들릴 때마다 '아 나 아직 학생인데, 수입도 없는데 당비 그만 낼까' 하는 생각도 솔직히 백천 번은 했어요. 근데 이런 저라도 괜찮다면, 이 말은 손에 꼭 쥐어드리고 싶어요.

당신이 손 벌릴 데는 오직 국민들뿐이었다는 거 다 알아요

생에 쓰는 마지막 글에서까지 당원 앞에 고개를 숙인 당신. '이정미 대표와 사랑하는 당원들 앞에서 얼굴을 들 수가 없다'고 하셨죠. 당신이 자금을 받으셨다면 실망했을 거예요, 미워했겠죠.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었을 거예요. 비난에서 모든 논의를 끝내지는 않았을 거예요. 정의당과 당신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더 깊은 곳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이니까요. 다당제를 보장하지만 실질적 양당 체제인 우리 정치에서, 당신과 동료들이 정의당을 얼마나 힘겹게 일궈왔는지를 어떻게 모르겠어요.

정치자금법과 선거법은 당신 같은 정치인들에겐 더한 족쇄였겠죠. 그 법적인 제한들 속에서 돈이 진짜 필요했을 거예요. 정치는 그저 낭만이 아니잖아요. 결국 다 돈이잖아요. 근데 정의당, 가난하잖아요. 당원 수도 두 거대정당과 비교할 수 없이 적고요. 그리고 정경유착? 꿈도 못 꾸죠. 삼성과 싸우다가 혼쭐났었던 당신이잖아요.

거대양당에 몸을 담아본 적이 없는, 노동운동가 용접공 출신인 당신은 '엘리트 정치인'과는 거리가 몇 억 광년만큼이나 멀었죠. 인맥이 있겠어요 후원자가 있겠어요 뭐가 있겠어요. 당신이 손 벌릴 데는 오직 지지자, 국민들뿐이었다는 거 다 알아요.

'법정형으로도 당의 징계로도 부족하다'구요? 아니요. 제도의 한계를 너무나 잘 알기에, 당신은 우리에게 관용을 요구해도 됐다고 말하고 싶어요. 일단은 고개를 숙이더라도 더 나은 정치를 향한 걸음으로 활용해도 됐어요. 그거 비겁한 거 아니에요. 나는 사과를 받고, 용서를 하고, 그 과정을 다른 원동력으로 삼을 줄 아는 사람이에요. 그것이 내가 지지하는 정당이라면, 더 열심히 비판하되 더 열심히 힘을 실었을 거예요. 나는 때로 냉소적이어도, 사랑할 줄도 아는 사람이에요.

당신을 용서하는 것은 하나도 어렵지 않습니다

진보에게 요구되는 무결하고 순수한 깨끗함의 벽 앞에서 노회찬이 무너졌어요. 그 벽은 대중이 쌓아올린 것이기도 하지만, 우리 스스로가 쌓은 것이기도 해요. 그 벽에 부딪히고 깨져서 이미 떠나간 사람들이 있어요. 당신마저 잃어버린 오늘은 너무나 참담하네요. 도덕은 우리의 가장 큰 원동력이지만, 가끔은 그것이 우리를 죽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벽을 조금은 낮춰줄 필요가 있었는데... 나는 왜 더 적극적이지 못했을까.

'모든 허물은 제 탓이니 저를 벌하여 주시고 정의당은 계속 아껴주시길 당부드린다'. 스스로를 벌하셨잖아요. 왜 우리에게 모색할 시간을 주지 않으셨나요.

정의당을 계속 아껴야죠. 당신의 빈자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겠지만, 그저 울고만 있을 수는 없죠. 당신은 당신의 젊음을 인권과 평등에 온데 바친 노동운동가였고, 호주제 폐지에 앞장서 목소리 내던 페미니스트였고, 성소수자의 권리를 말하는 차별금지법을 발의한 최초의 정치인이었고, 거대 양당의 변두리에서도 당신의 영역을 건설해가던 곧은 심지였어요.

용접 일을 배워 직접 노동자들의 터전으로 뛰어들었고, 노동자연맹 활동은 인권의 가치를 노동 현장에 심어 넣은 대신에 당신을 감옥으로 보내기도 했죠. 그래도 멈추지 않고 진보정당 운동을 시작한 당신은 한국의 다당제가 숨쉴 수 있게 만들었어요. 매 선거마다 양당에 의해 단일화를 요구받는 가시밭길을 걸으면서도 당당히 3선 의원으로 120여 개의 법안을 만들었죠. 당신의 시각으로 쓰인 법들은 항상 소수자들을 품었고, 그 위에 여성과 성소수자들이 바로 서서 목소리를 낼 수 있었어요. 당신이 가진 권력을 갖지 못한 자들에게 모두 나누어주고, 당신 자신에게는 단 한 톨의 권위도 남기지 않고 언제나 허허 웃던 포근함을 저는 잊을 수 없습니다.

제가 겨우 스물 셋이에요. 예순 세 번째 생신을 앞두고 먼 길을 가신 당신보다 딱 40년 늦은 시간을 살고 있어요. 정치를 잘 알게된 지도 오래지 않았고, 정당에 가입한 건 이제 고작 1년이지만, 당신과 동시대의 담론을 공유해온 나날들은 제 삶에 배긴 가장 짙은 흔적 중 하나라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어요. 나보다 마흔 살 많은 할아버지 정치인을 떠나보내기가 참 쉽지 않네요.

노회찬 의원님, 걱정은 마세요. 당신을 용서하는 것은 하나도 어렵지 않고, 당신을 응원하는 것만큼이나 자랑스러운 건 없었으니까요.

부디 가시는 길에 위로와 평안이 흩뿌려지기를 바랍니다.


태그:#노회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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