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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항공 촛불집회에서 가면을 벗고 얼굴을 공개한 유은정 부사무장.
 대한항공 촛불집회에서 가면을 벗고 얼굴을 공개한 유은정 부사무장.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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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요? 전혀 안 해요."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단호한 답변이 돌아왔다. 표정 또한 굳건했다. 그는 자신을 "나약한 사람"이라고 소개하면서도, "당당해지니 아무도 나를 못 건드리는 것 같다"고 힘주어 말했다. 대한항공 객실승무원 유은정 부사무장(43)의 이야기다.

유 부사무장은 지난 14일 청와대 앞에서 진행된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공동 집회'에서 가면을 벗었다(관련기사 : 벤데타 가면 벗은 승무원의 꿈 "나도 평범한 아줌마로 살고 싶다"). 4월 초 시작된 이른바 '대한항공 사태' 이후 최근 새로운 직원연대노조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유 부사무장은 처음 얼굴을 공개한 직원연대노조원이었다.

유 부사무장은 가면을 벗던 당시의 상황을 "목욕탕에서 아는 사람을 만난 느낌, 한 번도 가보지 않는 곳에 나서는 기분"이라고 떠올리며 웃음을 내보였다. 그러면서 "얼굴을 공개하기 전까지는 신분이 드러날까 두려웠고 슬슬 위축되더라"라며 "그게 회사가 원하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지금은 오히려 그들과 정면 대응할 용기가 생겼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요샌 혼자 밥 먹는다, 외롭다"라며 농반진반의 말을 건네면서도 "아군을 많이 얻었다"라고 얼굴 공개 이후의 상황을 전했다. 이어 "가면을 벗은 후 내 옆에 다가오는 사람은 줄어들었지만, 조용히 응원해주는 사람은 많아졌다"라며 "우리는 이길 수밖에 없는 싸움을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세 아이의 엄마

 대한항공 촛불집회에서 가면을 벗고 얼굴을 공개한 유은정 부사무장.
 세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유은정 부사무장을 지난 19일 서울 마포구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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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서울 마포구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만난 유 부사무장은 "회사가 (나처럼) 나약한 사람을 강하게 만들어준 것 같다"며 미소를 지었다. 그는 4월 초 '조현민 물세례 사건' 이후 만들어진 익명 채팅방에 '인피닛'이란 닉네임으로 접속했고, 이후 설립된 대한항공직원연대에서 운영위원으로 활동했다. 이어 직원연대가 노조를 만들자 곧장 가입해 지금은 직접 노조 홍보에도 힘쓰고 있다(관련기사 : 물세례 갑질 후 세 달, 대한항공에 새 노조 생겼다). 그 와중에 회사에 불려가는 등 약간의 부침을 겪기도 했다(관련기사 : '노조 홍보' 직원 소환한 대한항공, "조현아 남편 성형외과 홍보는?")

세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유 부사무장은 지난 3개월을 떠올리며 고개를 내저었다.

"정말 정신없이 보냈어요. 일과 가정에 힘을 나누는 것도 힘든데 이 일까지 생겼으니까요. 돌이켜보면 그 3개월 동안 정말 많은 일을 해낸 것 같아요. 아직 갈 길이 멀지만 많은 변화가 일어났잖아요."

유 부사무장이 얼굴을 공개한 데에는 약간의 사연이 있다. 앞서 블라인드(직장인 익명 어플)에서 누군가에 의해 그의 이니셜이 거론됐고, 급기야 기내식 사태 이후 만들어진 아시아나항공 익명 채팅방에 그의 실명이 담긴 회사 인사기록까지 올라왔다. 유 부사무장은 이를 회사가 벌인 일로 보고 있다. 이러한 사건은 얼굴 공개를 고민하던 그가 "내가 먼저 떳떳하게 나서자"며 가면을 벗게 된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다.

"그동안 인간 취급 못 받고 살아왔습니다. 누르면 누르는 대로 살고, 겁주면 겁주는 대로 살고... 근데 그건 정말 옛날 방식 아닌가요. 회사가 그런 방법으로 직원들을 대하는 건 결국 자기 얼굴에 침 뱉는 결과를 가져올 겁니다. 저도 사실 마음이 약한 사람인데 인사기록이 공개된 것을 보고 '뭐야, 쟤네 지금 나를 협박하는 거야?'라는 생각이 나더라고요. 지금은 그렇게 협박한다고 되는 시대가 아닙니다."


유 부사무장은 가면을 벗은 뒤 생긴 몇 가지 에피소드를 전하면서 "응원해주는 분들이 많다"라고 힘 있게 이야기했다. 그는 "사실 익명 채팅방에서 이런저런 이야기가 마구 쏟아져도 막상 회사에 가면 조용했다"라며 "하지만 요샌 이런저런 이야기가 들리더라, '샤이 객실(승무원)'이라 그렇지 모두 마음 편히 비행할 날을 기다리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어느 날은 회사 엘리베이터에 서 있는데 뒤에서 '인피닛 맞죠?'라는 말이 들리더라고요. 깜짝 놀랐죠. 회사에서 저를 감시하는 줄 알고... 근데 그분이 '저도 블라인드에서 여러 번 정지 먹었어요'라고 웃더라고요.(직원연대는 회사가 블라인드 내 일부 직원들을 조직적으로 신고해 이용을 정지시킨다고 주장하고 있다.)

엊그제는 승무원들과 모여 있는 자리에서 제가 가면을 벗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 이야기가 나오는 거예요. 그게 저인지 모르고(웃음)... 그 동영상을 거론한 직원이 '보면서 눈물이 났다'라고 말하길래, 제가 '그게 접니다'라고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냈어요. 그랬더니 모두가 '소름 돋는다'라며 웃더라고요. 그러면서 서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했어요. 그 동영상 보고 오랜만에 마음 편히, 시원하게 비행했대요."


'연대'라는 말

 대한항공 촛불집회에서 가면을 벗고 얼굴을 공개한 유은정 부사무장.
 "얼굴을 공개하면 어떻게 될까 정말 궁금했어요.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요. 오히려 당당하니까 회사는 저를 무시하지 못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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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부사무장이 회사를 바꾸기 위해 적극 나선 데에는 박창진 사무장의 영향이 컸다. 그가 육아휴직 후 회사에 돌아왔을 때, 박 사무장도 땅콩회항 사건 이후 복귀해 함께 복직 교육을 받았다. 유 부사무장은 "제일 마음이 아팠던 게 박 사무장이 점심을 먹으러 가지 않는 모습이었다"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교육원과 본사가 따로 있어서 밥을 먹으려면 셔틀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하거든요. 아침부터 교육받고 시험 보고 이러면 정말 배고파서 힘들어요. 근데 항상 박 사무장은 혼자 있더라고요. 그땐 박 사무장 옆에 가면 '너 저 사람이랑 친해? 왜?'라는 시선이 쏟아질 때에요. 저도 멀리서 지켜봤으니 비겁했죠. 그러다가 박 사무장님과 파리 비행을 함께 갈 일이 생겼고 그때 식사를 같이하게 됐어요. 돌아오는 길에 말씀드렸죠. '사무장님을 잘 모르지만 제가 돕고 싶다고'요."


유 부사무장은 박 사무장과의 비행 직후, 대한항공 직원들이 오래전부터 겪고 있던 휴가 문제를 공론화하는 데 힘을 쏟았다. 대놓고 활동할 순 없었지만, 100일 넘게 쌓여 있는 휴가 잔여일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료를 모았다. 처음엔 제보를 꺼리던 직원들이 나중엔 조금씩 자신의 남은 휴가 잔여일수 기록을 갈무리해 보내줬다. 그래서 결국 휴가 문제를 기사화할 수 있었고, 유 부사장의 말을 빌리면 "하늘이 내려준 기회처럼" 조현민 물세례 사건이 터져 지금에 이르렀다.

유 부사무장은 새롭게 만든 직원연대노조에 많은 이들이 동참해주길 바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직원연대노조가 힘을 갖게 되면 회사가 바뀔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현재 대한항공에는 직원연대노조와 같은 성격(조종사 외 직원들이 가입)의 일반노조가 존재한다.

"그동안 경영진과 일반노조는 서로 한 몸이라고 생각해왔어요.(일반노조는 이른바 어용 논란에 강하게 반박하고 있다.) 우리를 지켜줄, 우리의 힘든 점을 들어줄 노조가 필요했고 불편한 상황에 이르렀을 때 '이건 아니지 않느냐'라고 말할 수 있는 노조가 필요했어요. 회사의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게 우리 직원연대노조입니다."

그는 어쩌면 두려움에 떨고 있을지도 모를 다른 직원들에게 "오히려 당당해질 수 있다, 함께 하자"고 힘주어 말했다.

"우리가 나쁜 짓 하자는 것도 아니고, 우리의 목소리를 내서 권리를 찾자는 것 아닙니까.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도와주고 있습니다. 정치권, 언론, 시민들까지... 그런데 우리가 안 움직여서 되겠습니까. 저도 혼자 외롭게 지내는 거 싫거든요. 혼자서 밥 먹는 거 정말 못하고요. 그런데 얼굴을 공개하면 어떻게 될까 정말 궁금했어요.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요. 오히려 당당하니까 회사는 저를 무시하지 못해요. 지금 우리는 매우 중요한 시점에 와 있어요. 변화를 주도하고, 변화를 만들어낸다면 우린 역사에 남을 겁니다."

인터뷰 말미, 유 부사무장에게 최근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아시아나항공에 대해 물었다. 그는 "연대라는 말이 너무도 좋은 것 같다"며 짧지만 강한 어조의 답을 내놨다.

 대한항공 촛불집회에서 가면을 벗고 얼굴을 공개한 유은정 부사무장.
 "그동안 항공업계는 짧은 시간 내에 급속도로 발전했어요. 그 과정에서 오너가 원하는 대로 법과 원칙이 굴러갔고요. 이젠 노동자가 서로 연대해 힘을 합쳐야 합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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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상생하고 싶어요. 이전처럼 서로를 짓밟고, 노선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건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당당히 소비자의 선택에 맡기며 같은 업종끼리 어떻게 하면 함께 성장할 수 있을지 교류하고 싶습니다. 그동안 항공업계는 짧은 시간 내에 급속도로 발전했어요. 그 과정에서 오너가 원하는 대로 법과 원칙이 굴러갔고요. 이젠 노동자가 서로 연대해 힘을 합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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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법조팀. 선악의 저편을 바라봅니다. extremes88@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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