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강 신화를 썼던 2002 한일월드컵은 한국 축구 최고의 '황금세대'로 평가 받는다. 고참급이었던 홍명보-황선홍을 필두로 중간 세대에는 안정환-김남일-이운재-이영표, 막내급이던 박지성-이천수-차두리에 이르기까지 신구 조화가 좋았고 이들 대부분이 이후로도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전설로 자리매김 했다.

2002 한일 월드컵 출신 중 가장 성공한 선수를 꼽으라면 역시 박지성이겠지만, 그가 활약했던 시기의 한국 대표팀은 결코 박지성에게만 의존하는 원맨 팀과는 거리가 있었다. 박지성이 대표팀 경력을 마무리 할 무렵에는 기성용-이청용-구자철-손흥민 같은 '유럽파 2세대'가 등장해 자연스러운 세대교체가 이루어졌다.

스타 플레이어 손흥민, 그러나 단 한 명뿐이라서

아쉬움 남기고 귀국한 손흥민 러시아월드컵에서 세계 1위 독일팀을 2대 0으로 이겼으나, 16강 진출에는 실패한 축구대표팀이 29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을 통해 귀국했다. 조별예선에서 2골을 기록한 손흥민 선수가 소감을 밝히고 있다.

▲ 아쉬움 남기고 귀국한 손흥민 러시아월드컵에서 세계 1위 독일팀을 2대 0으로 이겼으나, 16강 진출에는 실패한 축구대표팀이 29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을 통해 귀국했다. 조별예선에서 2골을 기록한 손흥민 선수가 소감을 밝히고 있다. ⓒ 권우성


2018년 현재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최고의 선수를 꼽으라면 단연 손흥민의 이름을 가장 먼저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손흥민에 견줄 만한 스타급 선수를 더 꼽으라면 댈 수 있는 이름이 많지 않다. 주장 기성용은 어느덧 대표팀 은퇴의 기로에 서있고 이청용-구자철 등 또 다른 유럽파 선수들의 위상도 예전같지 않다. 이승우-황희찬-백승호-이강인 등 손흥민의 다음 세대는 아직도 유럽 빅리그에서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유망주들에 불과하다.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주목할 만한 현상 중 하나는 '슈퍼스타 의존도'가 높은 팀일수록 대체로 성적이 기대에 못미쳤다는 점이다. 리오넬 메시의 아르헨티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포르투갈, 네이마르의 브라질, 로베르토 레반도프스키의 폴란드, 모하메드 살라의 이집트 등이 대표적이다. 한국도 손흥민이 홀로 팀내 최다인 2골을 넣으며 분전했지만 조별리그 탈락의 수모를 피하지 못했다. 현대 축구가 갈수록 스타 플레이어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던 시대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증거다.

반면 러시아월드컵에서 4강 이상의 성적을 거둔 강팀들은 하나같이 '황금세대'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또래 세대의 선수들이 대표팀에서 함께 경험을 쌓으며 성장한 것이 이번 월드컵을 통하여 두각을 드러냈다. 특히 우승국 프랑스나 4강에 진출한 벨기에- 잉글랜드는 모두 꾸준한 유소년 육성 정책의 성과를 바탕으로 젊은 선수들을 중심으로 한 세대교체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골든볼 수상자 루카 모드리치(크로아티아)나 킬리앙 음바페(프랑스), 에당 아자르(벨기에)등 상대적으로 다른 선수들보다 더 두각을 나타낸 스타 플레이어는 있었지만 이 팀들은 결코 특정 선수에게만 의존하는 팀과는 거리가 멀었다.

한국 축구는 2002 한일월드컵 세대와 2012 런던올림픽 세대의 뒤를 이을 만한 제3의 황금세대가 아직 보이지 않는다. 대표팀은 역시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던 지난 2014년 브라질 대회와 비교해도 선수들의 경험치나 수준이 크게 향상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이번 러시아월드컵은 손흥민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는 약점이 두드러졌다. 권창훈·김민재·김진수 등 일부 주전급 자원들이 줄줄이 부상으로 낙마하자 대표팀의 전력 자체가 급격히 하락했다. 만약 손흥민마저 당장 부진하거나 부상으로 빠진다고 가정하면 한국 축구는 답이 보이지 않는 게 현실이다. 선수들의 국가대표 은퇴 시기가 점점 빨라지는 추세인 점도 생각해볼 부분이다. 손흥민도 대표팀 은퇴를 고려해야 할 시기가 찾아올 수 있다.

황금세대 구축 위해서는 축구 시스템과 철학 바뀌어야

손흥민 의존도를 탈피하기 위해서는 걸출한 1~2명의 슈퍼스타 발굴보다도 선수들의 전반적인 경험치가 더 성장해야 힌다. K리그의 수준이 발전하는 것도 필수조건이지만 자국리그나 아시아무대에서 쌓는 경험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향후 월드컵이 아닌 이상 A매치 평가전 등을 통하여 유럽이나 남미같은 강팀들을 접할 기회가 더욱 줄어들 가능성이 높아진 만큼 선수 개개인의 능력치를 키우는 것도 더욱 중요해졌다.

아시아 국가 중 유일하게 16강에 진출한 일본의 사례는 두 가지 측면에서 한국도 본받아야할 부분이다. 일본은 할릴호지치 전 감독 체제에서 한때 직선적이고 빠른 피지컬 축구로의 변화를 모색했지만 실패로 돌아가면서, 정작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익숙한 본연의 패스축구 스타일로 회귀했다. 하지만 일본이 갑작스러운 감독교체에도 예상보다 혼란이 적었던 이유는 일본 선수단 전체가 유소년과 프로리그, 대표팀에 걸쳐 일관적으로 유지해온 축구철학과 시스템의 영향력이 컸다. 학원축구에서부터 프로에 이르기까지 축구에 대한 전술적-이론적 철학을 공유하고 유망주 발굴을 중시하는 것은 스페인이나 독일, 프랑스같은 축구 선진국들도 마찬가지다.

또한 선수들의 해외진출을 중시하는 일본은 아시아에서 유럽파의 비중도 가장 높다. 선발진 전원을 유럽파로만 구성할 수 있는 아시아 국가는 현재로서는 일본이 유일하다. 일본 선수들은 굳이 빅리그-빅클럽이 아니라도 기회가 생기면 한번쯤 유럽 무대에 도전하는 분위기가 어느 정도 정착돼 있다.

한국은 러시아 월드컵 이후 새롭게 유럽 무대에 도전하는 선수들이 나오지 않고 있다. 월드컵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준 김영권이나 조현우의 유럽 진출설이 거론되지만 이들은 이미 나이가 적지 않거나 혹은 병역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선수들이다. 좀더 어린 나이의 유망주들이 일찍 해외무대에서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나야 한다.

한국 축구는 순간의 유행을 따라잡는 데 집착하면서도 정작 체계적인 시스템 구축에는 소홀하다. 히딩크와 한일월드컵의 영향으로 한동안 네덜란드식 토탈사커를 추종하다가, 세계축구의 유행이 바뀌자 2010년대에는 스페인식 점유율 축구를 어설프게 모방하려던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기도 했다. 단순히 대표팀 감독 교체나 걸출한 슈퍼스타의 출현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확실한 방향성의 설정과 시스템의 정비가 없다면 4년 뒤의 한국축구는 지금보다 더 힘겨운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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