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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지난 4월 19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재상고심 사건 선고를 위해 입장해 착석해 있다.
▲ '국정원 댓글사건' 재상고심 선고 김명수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지난 4월 19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재상고심 사건 선고를 위해 입장해 착석해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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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대법원이 일본 기업을 대상으로 한 '일제강점기 강제노동자 손해배상 소송'을 두고 박근혜 정부 외교부의 요구에 따라 장기간 계류시켰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당시 법원행정처는 그 대가로 법관의 해외 공관 파견과 법원장 등 고위 법관이 외국을 방문했을 때 의전을 고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 전 대법원장의 숙원사업이었던 상고법원뿐 아니라 판사의 해외파견 등을 대가로 박근혜 정부에 협조해온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외교부 요청에 재판 미루고... 피해자는 단 2명 생존

23일 <오마이뉴스> 취재 결과, 검찰은 최근 임종헌 법원행정처 차장의 하드디스크에서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외교부의 민원을 반영해 작성한 문건 다수를 발견했다. 그중 2013년 9월, 사법정책실이 작성한 '강제노동자 판결 관련-외교부와의 관계(대외비)'라는 문건에는 그해 외교부가 '일본과의 외교 관계를 고려해야 한다'는 민원을 여러 차례 제기한 내용이 담겨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외교부 민원 대상이 된 재판은 당시 대법원에 재상고심으로 계류 중인 일제 강제동원 관련 손해배상 소송 두 건이다. 태평양전쟁 강제동원 피해자 9명이 일본 미쓰비시중공업과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각각 2005년과 2000년에 제기한 소송이다. 법원행정처가 해당 문건을 작성했을 당시에는 두 소송 모두 원고가 일부 승소한 파기환송심을 거쳐 일본 기업의 상고로 각각 2013년 8월, 9월에 대법원으로 올라왔다. 두 소송은 5년 가까이 지난 현재까지 계류돼 있다.

이 무렵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실은 외교부 관련 해당 문건을 작성하며 "외교부를 배려해서 절차적 만족감을 주자"고 판단하면서 그 대가로 법관의 해외 파견과 고위 법관 의전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결과적으로 당시 대법원은 외교부의 지속적인 요청에 따라 판결을 미뤄온 것으로 보인다.

앞서 해당 소송의 1, 2심은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피해자들의 청구권이 이미 소멸했다'고 판단해 일본 기업이 피해자에게 배상하지 않아도 된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2012년, 대법원은 '일본 판결의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며 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고, 부산고등법원과 서울고등법원은 파기환송심에서 미쓰비시중공업과 신일본제철이 각각 1인당 8천만 원과 1억 원씩을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에 일본 기업은 대형 로펌을 선임해 대법원에 상고를 제기했다. 대법원은 재상고심에서 새로운 쟁점이 없는 경우 통상 파기환송심 결과를 그대로 받아 신속하게 선고한다. 그러나 선고는 기약없이 미뤄졌다. 소송을 제기한 지 10년이 훌쩍 넘는 기간 동안 9명의 피해자 가운데 7명이 사망했다. 생존한 2명 중 한 명은 건강 악화로 요양원에 있는 상태다.

민주노총, 전교조 조합원 등이 지난 6월 7일 오후 경기도 성남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자택 앞에서 양 전대법관 사법거래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박근혜 전 대통령과 사법 거래장면을 퍼포먼스로 보여주고 있다.
 민주노총, 전교조 조합원 등이 지난 6월 7일 오후 경기도 성남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자택 앞에서 양 전대법관 사법거래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박근혜 전 대통령과 사법 거래장면을 퍼포먼스로 보여주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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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제징용 판결 지연으로 법관 해외파견·의전, 상고법원 거래 의혹

해당 소송은 최근 논란이 된 '재판거래' 문서에도 등장한다. 법원 내부조사단이 지난 5월 공개한 '상고법원 관련 BH 대응전략'에는 상고법원 로비의 접촉 사례로 해당 소송이 언급되기도 했다.

법원행정처가 2015년 3월 작성한 이 문건에는 이병기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최대 관심사로 '한일 우호관계 복원'을 들며 두 손해배상 소송과 관련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손해배상 청구 사건에 대하여 청구 기각 취지의 파기환송판결을 기대할 것으로 예상"이라고 적혀 있다.

대법원이 원고 일부 승소를 판결한 고등법원의 파기환송심을 뒤엎고 또 다시 파기환송할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다. 즉 일본 기업들이 제기한 상고 이유를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앞서 1, 2심의 '원고 패소 판결'을 파기 한 재판부에 당시 법원행정처장인 박병대 대법관이 포함돼 있다는 점에서 또 다시 파기환송하는 것은 부담스러운 상황이었다. 자신의 판단을 부정하는 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박근혜 청와대의 협조를 얻을 때가지 해당 판결을 미루는 방법을 택했다는 의심이 가능하다.

검찰은 지난 7월 중순, 소송을 대리한 변호인을 불러 소송 쟁점과 경과 등을 조사했으며 소송 관련 자료들을 제출받은 상태다. 향후 검찰은 일제징용 판결 의혹을 명확한 재판거래 실체로 인식해 집중 수사할 방침이다.



태그:#양승태, #박근혜, #외교부, #강제징용, #재판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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