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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롭게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문재인 대통령이 기무사가 작성한 ‘계엄령 검토 문건’ 관련 자료를 즉각 체출 할 것을 지시한 16일 오후 경기도 과천 기무사 정문 앞 모습.
 문재인 대통령이 기무사가 작성한 ‘계엄령 검토 문건’ 관련 자료를 즉각 제출할 것을 지시한 16일 오후 경기도 과천 기무사 정문 앞 모습.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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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가까이 국방부를 출입하면서 만난 군인들의 정치적 성향은 바깥세상과 크게 차이나지 않았다. 제복을 입은 사람의 특성상 이를 쉽게 드러내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신뢰관계가 만들어지고 나면 속내를 털어 놓았다. 대화를 나누다보면 군인은 대부분 보수정당을 지지할 것이란 생각은 그야말로 편견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곤 했다. 그래서 지난 촛불 정국 당시 기무사가 작성한 문건으로 촉발된 이번 사태를 더욱 이해하기 쉽지 않다.

보수 정권이 들어섰던 지난 9년 동안 부분적인 역사의 퇴행을 겪기도 했지만 적어도 군사 쿠데타만큼은 이제 시도할 수도, 성공할 수도 없다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 의결을 막기 위해 야당 의원들의 국회 등원을 방해하는 구체적 내용까지 담겨 있는 문건을 들여다보면 이런 믿음은 무색해진다. 탄핵정국 당시 박근혜 정부의 지지율은 한 자리 숫자로 추락했고,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 결정은 대부분의 국민들이 예상하고 있었던 바다. 그래서 문건을 작성한 기무사 요원들은 40년 전 세상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사람들은 아닌지, 그렇지 않다면 어떤 생각으로 이런 문건을 작성할 수 있었는지 더욱 궁금해진다.

1979년 10월 26일은 기자에겐 특별한 풍경으로 기억에 남아있다. 그날은 할머니의 환갑잔치를 이틀 남겨둔 금요일이었다. 당시만 해도 환갑은 집안의 큰 행사여서, 시골에서 일찍 올라온 친척 어른들로 집은 북적였다. 잔치에 쓰일 음식을 장만하느라 집안에는 기름 냄새가 진동했고, 이리저리 부산한 어른들을 보면서 국민학교 5학년 꼬마는 괜히 맘이 설레었다. 밤늦게 용달차를 운전하는 오촌 당숙의 차를 타고 시장에 다녀온 후 토요일 오전수업만 마치면 친척 형제들과 맘껏 놀 수 있다는 생각에 애써 오지 않는 잠을 청했다.

다음날 아침, 집에서 구독하던 신문 1면에는 "박정희 대통령 서거"라는 굵은 글씨가 대통령의 사진과 함께 실려 있었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TV앞에 모여 앉은 남자 어른들은 담배연기만 뿜어댈 뿐 별 말이 없었고, 할머니를 비롯한 여자 어른들은 연신 앞치마로 눈물을 찍어냈다.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이미 새벽 4시를 기해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는 비상계엄이 선포된 후였다.

'기무사 문건 논란' 와중에 떠오른 1979년 10월 26일

1979년 10월 27일 자 경향신문 1979년 10월 27일 자 경향신문에는 박정희 대통령 서거 소식과 함께 계엄포고문이 실려있다.
 1979년 10월 27일자 <경향신문>에는 박정희 대통령 서거 소식과 함께 계엄포고문이 실려있다.
ⓒ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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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다니던 국민학교 정문과 동네 목욕탕 담벼락엔 계엄포고문이 나붙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포고문의 몇 구절이 내내 마음이 쓰이셨다. "일체의 옥내외 집회는 허가를 받아야하며, 시위 등의 단체 활동은 금한다." 또 야간 통행금지 시간을 2시간 앞당겨 오후 10시부터 다음날 새벽 4시까지로 한다는 조항도 있었다. "상기 포고를 위반한 자는 영장 없이 체포, 구금, 수색하며 엄중 처단한다"는 경고까지 적시된 9항의 포고문 끝에는 '계엄사령관 육군대장 정승화'라고 되어 있었다.

대통령의 죽음도 큰일이지만, 장남인 아버지에겐 할머니의 환갑잔치도 중요했다. 하루 앞으로 다가온 환갑잔치는 도대체 옥내외 집회에 속하는 것인지, 또 계엄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지 답답했던 아버지는 직접 경찰서를 찾아가 문의했다. 관혼상제와 종교행사는 허가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답변을 들은 후에야 비로소 아버지는 마음을 놓았고, 우여곡절 끝에 할머니 환갑잔치는 무사히 치를 수 있었다. 일요일이었던 그날 저녁 TV에는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장 전두환 소장이 등장해 대통령 시해사건 중간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전두환 이라는 이름이 국민 앞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그로부터 40여 일 후 전두환 합수본부장은 사조직을 동원, 상관인 정승화 계엄사령관을 체포하고 군을 장악했다. 12.12 쿠데타였다. 그해 겨울부터 다음 해까지 돈암시장에서 장사를 하시던 고모 댁에 심부름을 갈 때마다 고려대 학생회관 앞에 서 있던 계엄군 장갑차들을 볼 수 있었다. 버스 안 어른들은 목소리를 낮춰 수군댔지만, 철없던 소년은 장갑차를 보는 것이 그저 신기할 뿐이었다. 6학년이 되었던 1980년 5월 광주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당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할머니 환갑잔치가 있던 날 텔레비전에서 봤던 그 군인은 대통령이 되었다.

좀 더 나이를 먹으면서 의문이 하나 생겼다. 쿠데타를 방지하는 '대(對)전복 임무'를 주요 업무 중 하나로 삼고 있는 보안사령관이 어떻게 군사반란을 일으킬 수 있었는지 쉽게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강산이 거의 4번 바뀌는 시간이 흐른 지금, 보안사의 후신인 기무사가 작성한 '전시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 대비계획 세부자료를 보면서 비슷한 당혹감을 느끼고 있다.

혹자는 기무사의 특성에서 그 해답을 찾으려 한다. 5.16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했던 군사정권은 자신들이 했던 방식으로 자신들의 정권이 뒤집어질까봐 두려워했다. 그래서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장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보고하도록 보안사의 권한을 대폭 강화했다. 1990년 민간인 사찰이 드러난 후 기무사로 이름을 바꾼 뒤에 들어선 문민정부는 기무사가 작성해 올리는 각종 보고서 없이도 군을 제대로 통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없었다.

보안사에 끌려가 모진 고초를 당했고, 군사재판에서 사형까지 언도받았던 김대중 대통령은 집권한 후 기무사 개혁을 추진했지만, 큰 진전을 보지는 못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기무사령관의 대통령 독대보고를 폐지함으로써 정보의 민주적 유통이라는 부분적 개혁을 이루어냈지만, 기무사 자체를 개혁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리고 정권이 다시 보수로 넘어간 후 기무사는 민주정부 10년간 숨죽이고 있던 본색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그 과정에서 사찰과 감청뿐만 아니라 인터넷 공간을 통한 여론 조작이라는 이전에는 없었던 행태도 보였다.

2014년 10월 단행된 군 인사에서 당시 조현천 국군사이버사령관은 기무사령관에 임명됐다. 군내 사조직인 알자회(1976년 육군사관학교에서 결성) 출신의 조 전 사령관은 기무사의 감시와 사찰을 누구보다 많이 받았던 피해자로 비쳐졌기에 그가 강도 높은 기무사 개혁을 하리라고 보는 시각도 존재했다. 실제 조 전 사령관은 취임 초기 언론사를 초청해 개혁 관련 세미나를 여는 등 이전에는 없었던 모습을 보여주면서 일각의 기대를 모으기도 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기무사 수사 시작합니다 (서울=연합뉴스) 한상균 기자 = 13일 오후 기무사 특별수사단 사무실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진 국방부 검찰 별관에 관계자들이 들어가고 있다. 특수단은 이번 주말에 준비를 마치고 16일부터 공식 수사업무를 시작할 것으로 밝혔다. 2018.7.13
▲ 기무사 수사 시작합니다 13일 오후 기무사 특별수사단 사무실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진 국방부 검찰 별관에 관계자들이 들어가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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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무사의 계엄 대비 계획 세부 자료(청와대 대변인 브리핑 자료)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기무사의 계엄 대비 계획 세부 자료를 브리핑하였다.기무사의 계엄 문건이  실제로 계엄을 선포하려는 계획이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 기무사의 계엄 대비 계획 세부 자료(청와대 대변인 브리핑 자료)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기무사의 계엄 대비 계획 세부 자료를 브리핑하였다. 기무사의 계엄 문건이 실제로 계엄을 선포하려는 계획이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 청와대 브리핑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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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내 사정에 정통한 정치권 인사는 조 전 사령관 시절의 기무사에 대해 "기무사를 마치 북한군의 총정치국 같은 역할로 이해했던 박근혜 대통령은 기무사를 자신에게 충성을 다하는 친위장교들의 그룹으로 바꾸려고 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또 그는 "조 전 사령관의 개혁은 박 대통령에 반대하는 '반VIP 세력 제거'라는 데 가장 큰 목적이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인사의 말 속에서 어쩌면 이번 기무사 문건 정국을 보는 실마리 하나를 찾을 수 있을 듯도 하다. 하나회 출신의 보안사령관 전두환과 알자회 출신의 기무사령관 조현천. 자신들이 충성을 바치던 최고 권력자의 몰락. 그 속에서 그들은 역사의 물줄기를 거꾸로 돌려서라도 스스로 정권을 쥐거나 절대 충성의 대상이었던 그 누군가를 위해 군을 동원하는 방법을 제시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지 않고는 대전복 임무를 맡은 기무사가 사실상의 친위 쿠데타를 염두에 둔 문건을 만들었다는 이 희한한 아이러니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철없던 유년 시절의 기억 한 자락에 자리한 계엄령의 풍경... 나는 꽤 오랫동안 이 기억을 잊고 살았다. 하지만 지난주 청와대가 관련 자료를 추가로 공개한 이후, 이 스산한 풍경들이 40년의 세월을 넘어 21세기의 대한민국에서 다시 한 번 재현될 수도 있었다는 생각에 섬뜩함을 느낀다.

 조현천 국군기무사령관이 24일 국회에서 열린 정보위원회의 국군기무사령부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 출석하고 있다.
 조현천 국군기무사령관이 2016년 10월 24일 국회에서 열린 정보위원회의 국군기무사령부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 출석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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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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