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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회의 최종후보 선출 이후 언론보도를 통해 성희롱과 성추행 의혹이 제기되자 3일만에 사퇴한 강대희 교수
 이사회의 최종후보 선출 이후 언론보도를 통해 성희롱과 성추행 의혹이 제기되자 3일만에 사퇴한 강대희 교수
ⓒ 서울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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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서울대학교에서는 이사회에서 최종 선출된 제27대 총장 후보 강대희가 "저로 인해 상처 받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라는 내용의 글을 끝으로 사퇴하는 일이 발생했다. 3일 언론보도를 통해 처음으로 기자 성희롱 및 룸살롱 출입 의혹이 제기된 지 겨우 3일 만의 일이었다.

서울대 구성원들은 황당함을 감출 수 없었다. 3월 후보등록부터 5월 정책평가와 이후 이사회에 총장추천위원회(이하 '총추위')가 3인의 총장후보를 추천하기까지 세 달, 6월에 이사회가 최종후보를 선출하기까지는 네 달에 거쳐 진행된 총장선거였다. 그런데 총장후보에게 의혹이 제기된 지 3일 만에 파행에 이르렀다는 사실은 네 달에 걸쳐 후보등록의 자격조차 없는 후보를 뽑았다는 뜻이기에, 서울대 구성원 사이에서는 물론 대외적으로도 총장선출 과정에서의 부실검증 논란이 일기에 충분했다.

단지 강대희 후보의 성희롱, 성추행 의혹을 몰랐던 총추위와 이사회의 무능 때문이 아니었다. 놀랍게도 총추위와 이사회는 해당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교수 성추행 의혹을 제보 받은 여교수회는 총추위에 미투 검증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지만, 총추위는 이사회에 강대희 후보를 포함한 3인의 후보를 올렸다. 그리고 이사회는 조사위원회까지 꾸려 강대희 후보의 의혹을 확인했으나 그대로 표결을 진행하여 강대희 후보를 선출했다. 그 사이에 학내 구성원들은 어떤 의혹에 대한 내용도 공식적으로 공유 받은 바 없다.

검증시스템 '한참' 미흡한 총장간선제의 필연적 결과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살펴보기 위해 제27대 총장선거가 진행된 방식을 확인해 보자. 이번 총장선거는 최종 선출권한을 가진 이사회와, 총장선거를 주관하는 총추위 중심으로 진행된 선거였다. 물론 구성원들로 이뤄진 정책평가단이 75%라는 정책평가 권한을 갖고 있기는 했지만 애초에 총추위가 정책평가의 대상이 되는 후보 5인을 선출할 권한을 갖고 있고, 이사회에 올릴 3인의 후보를 추릴 때에도 정책평가단의 권한을 제외한 25%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었다.

후보진 구성부터 순위를 매기는 것까지 이사회와 평의원회가 추천한 인사 30인으로 구성될 뿐인 총추위가 총장선거의 모든 과정을 관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총추위만의 총장선거 절차가 진행된 뒤에는? 이사회가 총추위에서 올린 3인의 후보 중 본인들의 입맛에 따라 최종후보를 선출하면 그만이다. 표결의 사유는 물론 논의과정에 대해서는 공유되지 않는다.

총장선출 과정에서 총추위와는 전혀 상반되는 권한을 갖고 있는 학생들의 권한을 살펴보자. 학생은 제한된 정책평가단의 권한 속에서도 75% 중 7.9%만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었다. 즉 합산하면 5.9% 정도의 권한에 불과한 상황이다. 총추위가 총장선거 전반을 관장한다는 점을 제외하더라도, 정책평가 과정에서 대학원과 학부생 포함 약 3만 명의 학생은 5.9%의 권한을, 총추위원 30인은 25%의 권한을 갖는다는 사실은 애초에 아귀가 맞지 않는다.

이에 따라 학생들은 총장선거를 통해 후보 5인 중 선출하고자 하는 후보가 누구인지 학생들의 의지는 확인할 수 있었으나, 학생 정책평가 결과 최하위였던 강대희 후보가 최종 후보로 선출되는 결과를 낳는 극명한 한계와 마주해야 했다. 그럼에도 학생들의 선택은 옳았던 것일까, 학생 평가 꼴등인 최종후보가 사퇴하는 코미디가 벌어졌으니 말이다.

이처럼 2011년 서울대 법인화 이후 굳어진 이사회-총추위 중심의 총장간선제는 학내 구성원들에 의한 철저한 검증과 견제를 불가능하게 했다. 이사회와 총추위는 본인들끼리 정보를 공유하고 끝내면 그만이었다. 만약 언론보도가 나오지 않았다면 강대희 후보는 서울대학교 총장이라는 직위에 올랐을 것이고, 구성원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그를 총장으로 받아들여야 했을 것이다. 이후 의혹이 제기되어 구성원들이 퇴진을 요구했다 한들, 그 요구는 받아들여졌을까?

서울대의 총장선출제도에 대한 비판이 구성원들 사이에서 부재했던 것은 아니다. 2017년 하반기 서울대 구성원들은 너나할 것 없이 총장직선제를 요구했다. 학생은 물론 교수와 직원 사이에서도 총추위의 정책평가 권한을 폐지하고 정책평가단의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이화여대를 시작으로 대학가에는 총장직선제 열풍이 불어 닥쳤고, 국립대에서는 민주화의 흐름 속에 총장직선제가 다시금 당연한 제도로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고등교육의 상징인 서울대학교는 오히려 거꾸로 가는 길을 택했다. 서울대 구성원들은 총장직선제를 쟁취할 수 없었다. 법인이사회는 총장추천위원회라는 간선제 기구를 유지하는 것을 택했고, 그마저도 학생들에게는 75%의 권한을 갖는 정책평가단 중 7.9%라는 참여 비율만을 내어줬을 뿐이다. 그리고 이렇게 퇴보한 결과가 이번에 서울대가 마주한 강대희 후보 사태이다. 총장간선제 실시 이후 첫 번째 총장은 2등 총장이라는 멍에를 메고 취임한 뒤, 학생들로부터 퇴진을 요구받았고, 이번에 선출된 두 번째 총장은 아예 취임조차 하지 못했다. 이제라도 서울대의 현재를 다시 돌아봐야 할 때이다.

그리고 또다시 '그들만의' 총장선거를 위한 움직임

이번 총장선거 파행은 학생을 비롯한 구성원이 제대로 참여하여 제대로 검증할 수 없었던 탓이다. 이에 총장선거가 파행되자 교수, 직원, 학생들은 각자 입장을 내고 총추위와 이사회의 책임을 물었으며, 철저한 검증은 물론 민주적 총장선거를 실시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그들'은 또다시 '그들만의' 총장선거를 위한 움직임을 내보이고 있다. 지난 10일 교수협의회-평의원회-학원장협의회는 총장선거 파행에 대한 대응 논의를 하는 3자 협의체를 구성했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3자 협의체에서의 요구로 박찬욱 교육부총장의 권한대행이 시작됐다. 사태의 해결과정에서 또다시 학생은 배제되고 있다.

총장추천위원회의 구성은 이사회의 추천을 받은 3인, 평의원회의 추천을 받은 27인으로 이뤄진다. 한편 올해에는 평의원회의 부의장이 총장추천위원장을 맡았다. 즉 이번 총장선거에 있어 평의원회는 총추위 구성에 막강한 힘을 행사하고 있고, 그렇기에 평의원회 또한 총장선거 파행의 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교수 중심으로 이뤄져 있는 평의원회는 총추위의 책임을 부정하며 본인들의 책임을 회피함으로써 총장선출에의 권한을 유지하기 위한 전략을 펴고 있다.

지난 17일 평의원회는 본회의를 열어 총장선거 파행에 대한 대응방안을 논의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채 회의는 끝이 났고, 다시 24일에 본회의를 연다고 한다. 학생들은 총장선거가 파행된 날부터, 논의테이블에 학생들을 포함시킬 것을 요구해왔다. 그럼에도 평의원회는 아직까지 학생들에게 아무것도 약속하지 않고 있다.

만약 서울대학교의 총장선출 과정이 총장추천위원회에 학생을 비롯한 모든 구성원이 참여하여 총장선거를 관장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면, 투표 시 정책평가단에 100%의 권한이 쥐어지고 구성원들의 총의를 반영할 수 있는 구조였다면 강대희 사태와 같은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강대희 사태는 서울대의 비민주적 총장선출구조의 결과였다.

그렇기에 강대희 사태 대응 논의를 위한 협의체 구성 과정에서부터 모든 구성원의 동등한 참여가 보장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차기 총장 선출은 대학을 구성하는 교수, 학생, 직원의 직접적인 견제와 검증을 받는 상태에서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만 또다시 서울대가 의혹제기 3일만의 사퇴라는 총장 부실 검증의 오명을 뒤집어쓰는 일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협의체 구성을 논의하는 24일 평의원회 본회의에서는 민주적인 결과가 도출되길 바란다.


태그:#서울대, #총장간선제, #강대희, #성희롱, #부실검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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