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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인터넷 이용자 2명 중 1명은 인스타그램 유저인 시대. #인스타 때문에 울고 웃는 사람들의 다양한 사연을 들어봤습니다. [편집자말]
 드라마 <블랙미러3> '추락'편 스틸컷
 드라마 <블랙미러3> '추락'편 스틸컷
ⓒ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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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드라마 <블랙미러 3>의 '추락' 편 주인공은 '자신의 행복한 일상'을 보여줄 수 있는 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아래 인스타) 같은 SNS에 올린다. 주인공은 많은 이에게 좋은 평점을 받기 위해 웃는 연습도 하고, 감성적인 카페에 간다. '보여주기 위해' 사는 그녀의 모습은 어쩌면, 2년 전 내 모습이었는지도 모른다.

스무 살이 되던 해인 2016년, 처음으로 인스타 계정을 만들었다. 좋아하는 해외 배우의 사진에 댓글을 달기 위해서였다. 주변에 인스타를 운영하는 지인들도 꽤 많았기에, 나도 이제 남들 다 하는 SNS 활동이란 걸 해보기로 했다.

좋아하는 연예인 계정에 업로드된 사진을 보는 것이 퍽 즐거웠다. 얼굴 모르는 이들의 독특한 라이프스타일을 구경하는 것도 흥미로웠다. 내 일상을 찍어 사진을 올리고 해시태그를 재치 있게 다는 일 또한 소소한 재미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인스타는 내게 단순한 놀이에 불과했다.

여행, 음식, 축제 등등... 세상에는 내가 못 가보고 못 먹어본 것들이 수두룩하다는 걸 인스타 세계를 통해 알게 됐다. 누군가의 화려하고 멋들어진 계정을 보며 나의 계정을 비교하기 시작했다. 사진에 달린 하트(사진 호감을 표하는 버튼)와 팔로워(해당 계정을 구독하는 사람) 수에 예민해졌고, 나도 '있어 보이고 싶다'라는 욕심이 피어올랐다.

일부러 콘셉트를 연출하거나 사진을 보정하는 횟수가 늘었다. 보다 '특별하고 행복하며 즐거운' 일상처럼 보이기 위해서였다. 나의 하루가 정사각형 사진틀에 갇혀 잘리는 기분이 들었지만 멈출 수 없었다. 사진 속의 완벽한 모습은 단지 삶의 일부임에도, 마치 그게 내 삶의 전체인 것처럼 보이고 싶었다.

이리저리 배치하고, 여기저기 보정하고

"잠깐, 숟가락 들지 마! 음식 모양 흐트러진단 말이야."

음식을 먹기 전에는 사진부터 찍었다. 먹음직스럽게 담긴 음식을 정사각형 사진 프레임에 담았다. #지역, #분위기, #식사, #데이트... 검색에 쉽게 잡히기 위해 각종 해시태그를 알사탕처럼 줄줄이 달았다. 몇 번의 보정을 거쳐 완성된 '인증샷'을 인스타에 업로드했다.

사진을 올린 후에도 스마트폰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댓글과 하트 수가 얼마나 늘어나는지 추이를 지켜보기 위해서였다. 대화가 사라진 테이블엔 보기 좋은 음식만이 덩그러니 놓여있을 뿐이었다.

"내 통통한 볼살 봐. 이런 사진을 어떻게 올려?"

보정하지 않은 사진은 절대 원본 그대로 인스타에 올리지 못했다. 요즘 나오는 웬만한 사진 애플리케이션에는 몸 늘리기, 눈 키우기, 화장하기 등 외모를 꾸미는 기능들이 상상 이상으로 잘 갖춰져 있다.

조금만 손봐도 단점이 감쪽같이 사라진 나를 만들어낼 수 있다. '예쁘다', '잘 나왔어요'... 훈훈한 댓글을 보며 만족감을 얻었다. 보정 전이 진짜 내 모습인데도, 보정 후 사진이 곧 나라고 믿고 싶었던 것 같다.

 언젠가부터 나 역시 인스타 속 '있어빌리티'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언젠가부터 나 역시 인스타 속 '있어빌리티'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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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사각형 사진 속은 언제나 완벽해야 했다. 어느 것 하나 흐트러지지 않고, 감성과 분위기가 자연스레 묻어나야 했다. 엉망진창인 주변은 저만치 밀쳐놓기만 하면 됐다. 취업준비에 추레해진 내 모습이 아닌, 깔끔하고 여유 있어 보이는 일상만 보이길 바랐다. 그렇게 나는 현실과 인스타 속 사진, 두 세계를 동시에 살아내고 있었다.

'있어빌리티'(자신의 일상을 '있어 보이게' 하는 능력)이라는 신조어가 있다. 언젠가부터 나 역시 인스타 속 '있어빌리티'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나 빼고 다들 여유 넘치고, 돈도 많은 것 같아. 하나같이 날씬하고 이쁘잖아."

자괴감이자 열등감이었다. 모두가 돈 걱정 없이 여기저기 여행 다니고 비싼 맛집을 다니는 듯한 인스타 세상에서 나는 초라하기만 했다. 하트 수가 적다고 해서 내 일상이 별 볼 일 없는 건 아닌데, 팔로워가 적다고 해서 내 인간관계가 실패한 것도 아닌데... 자꾸 남의 계정에 기웃거리며 부질없는 자기비교에 괴로워했다.

'셀카(셀프카메라로 찍은 사진)'는 결점 없이, 카페는 감성적으로, 음식은 맛깔나게. 내 일상은 인스타를 위한 '모델'이 되었다. 끊임없이 연출되고 보정됐다. 내게 인스타는 더는 재미를 위한 놀잇감이 아니었다. 타인의 평가와 관심을 받고 싶은 전시장이 돼 있었다.

사진 속 세상에서 나오다

인스타그램을 그만둔 건 이듬해 초였다. 모든 것에 지쳐버린 어느 날, 이제 그만하자고 결심했다. 탈퇴 버튼을 누르기 전, 스무 살부터 올리기 시작한 사진들을 톺아봤다. 허탈한 웃음이 새어나왔다. 남은 건 결국 SNS 사진일 뿐인데, 나는 그 사진 속 일상에 왜 그렇게 목을 맸던 걸까.

 특별하고 행복해 보이지 않더라도, 엉망진창 걱정 많은 내 삶에 집중하기로 했다.
 특별하고 행복해 보이지 않더라도, 엉망진창 걱정 많은 내 삶에 집중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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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 계정을 없애자 있어 보이려고 고군분투했던 과거들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조용하고 평범한 내 현실만 남았다. 하루하루가 파티 같은 세상, 닿을 수 없는 이상 같던 사진 속을 벗어나자 드디어 내 진짜 일상을 직시할 수 있게 됐다.

사진을 찍어 내기 위해 쏟아부었던 노력, 시간, 돈들은 이제 씁쓸한 회한으로 남았다. 수많은 팔로워도 탈퇴 한 번이면 뚝 끊어질 실에 불과했다. 난 그 네모난 인스타 세상에서 무엇을 얻고 싶었던 걸까.

"뭐야, 사진 안 찍네? 원래 먹기 전에 스마트폰부터 꺼내잖아."

남자친구의 말에 배시시 웃고만 말았다. 인스타를 그만두자 좀체 핸드폰을 쳐다보는 일이 없어졌다. 식사할 때는 앞에 앉은 사람에게 집중한다. 좋아하는 사람과 맛있는 걸 먹으며 대화 나누는 그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이제야 깨달았다. 셀카도 더 이상 보정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남과 비교하며 깎아내리지 않기로 했다.

그렇다고 사진을 아예 안 찍는 건 아니다. 여전히 나는 좋아하는 이들을 찍고, 플레이팅이 이쁜 음식과 여행지의 신나는 분위기와 어스름한 노을을 사진에 담는다. 블로그에 포스팅하기 위해 촬영하기도 한다. 다만 '있어 보여야 한다'라는 강박을 갖지 않는다. 지인들과 추억할 수 있는 그 순간을 담는 사진이면 그저 충분하다.

특별하고 행복해 보이지 않더라도, 엉망진창 걱정 많은 내 삶에 집중하기로 했다. 나는 이제 사진 속에서 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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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여행·문화 담당 기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기 위해선 이야기의 힘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