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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부메랑은 돌아오지 않아. 그저 땅에 떨어져 뒹굴 뿐이지. 내 아이에게 우리의 문화를 물려주고 싶어도 물려줄 수가 없어."

호주 북동부에서 동부로 2000km 히치하이킹 일주를 하던 때의 대화다. 그날은 히치하이킹을 하며 처음으로 대형 화물 트럭을 얻어탔다. 트럭 운전사인 그는 내게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 맞춰보라고 했다. 호주인이지, 했더니 자신에게 국적은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원주민이기 때문에.

그는 여섯 살의 순간들을 기억한다. 덤불 속의 쓰러져가는 집, 자신을 데리러 온 백인들, 울고 소리지르는 엄마의 모습, 차 창 밖으로 멀어지는 순간 이전의 삶.

1900년대 중후반의 호주 원주민 아이들은 모두 가족으로부터 격리되어 고아원에서 자랐다. 원주민 아이들에게 '근대 교육과 삶'을 가르치겠다는 정부의 격리 정책 때문이었다. 이를 '도둑맞은 세대'라고 한다.

도둑맞은 세대의 한 사람인 그는 고아원에서의 삶을 그리 끔찍하게 기억하지는 않는다. 색연필 한 자루를 훔쳐 일주일간 밥을 굶고, 찬물이 담긴 욕조에 억지로 몸을 담그는 벌을 받는 삶이었지만 부모님과의 삶이 그보다 더 나았을 것 같지는 않다고 말한다. 고아원에서 나와 13살부터 17살까지, 하루에 2달러를 받으며 12시간 중노동을 했지만 그래도 숙식은 공짜였으니 괜찮다고 말한다.

이후에는 나아져 하루에 4달러를 받으며 휴일 없이 중노동을 했지만 어쨌든 지금은 자기 힘으로 뭐든 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있으니 자랑스럽다고 말한다. 비록 사람들이 어디서 훔친 거냐, 뭘 해서 정부에서 지원해준 거냐고 묻는게 화나지만.

백인들은 그를 원주민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그는 백인이다. 백인들의 세계에 속해 백인들이 지정한 백인의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다. '원주민적' 삶은 기억 나지 않는 어린 시절뿐이다. 하지만 백인들은 그가 원주민적 모습을 보이길 바란다. 그들이 기대하는 원주민 춤을 추고, 부메랑을 던지고, 원주민 요리를 하길 바란다.

그도 그가 원주민 춤을 추고, 부메랑을 던지고, 원주민 요리를 하길 바란다. 사람들이 말하듯 그의 정체성이 원주민이라면, 최소한 그 정체성의 파편이라도 지니고 있어 아이들에게 물려줄 수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의 부메랑은 돌아오질 않는다.

나는 호주에서 약 3000km 히치하이킹을 했다. 아주 많은 시간을 도로에서, 차 안의 사람들과 눈 마주치며 보냈다. 그는 내가 본 처음이자 마지막 '원주민' 운전자였다.

덧붙이는 글 | 일다에 송고했습니다.



태그:#히치하이킹, #세계여행, #호주여행, #인종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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