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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대면에 딱 좋은 사람이 있듯 듣자마자 딱 꽂히는 명칭이나 표현도 있다.

'오름'이 그랬다.

생전 제주도에 한 번도 못 가봤던 내가 누군가의 글을 통해 우연히 '오름'이라는 명칭을 접했을 때, 마치 이름만 듣고도 끌리는 상대를 만난 것만 같았다.

내게 있어 오름은 명사인 동시에 하나의 동적인 표현으로도 느껴진다. 그 자체의 형상이나 특징에서만 작명의 동기를 찾은 게 아니라 그곳을 바라보거나 찾는 다른 대상들의 눈과 동선까지 담아낸 이름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래서 자연과 인간을 포함한 동식물의 교감이 한 덩어리로 조합되는 것 같이 느껴졌다. 게다가 제주라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구순한 순우리말에 입히니 더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듯하다.

40이 넘어서야 두어 번 여행해본 게 전부인 제주가 유난히 살갑고 애틋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이 '오름'이라는 명칭이 준 첫 설렘 때문인 것 같다. 그렇게 오름은 내게 특별하다.

그런데... 오늘 아침 거실에 나뒹구는 신문지들을 정리하다가 이 광고 문구를 보고는 뭔가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제주 더 오름... 아파트 분양, 시세차익 기대..

아, 이런 엉뚱하게 찰진 카피라이트라니!

경향신문 2018년 7월 12일자 제주 아파트 분양 광고 문구
▲ 제주 아파트 분양 광고 문구 경향신문 2018년 7월 12일자 제주 아파트 분양 광고 문구
ⓒ 김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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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018년 7월 12일자 신문 광고 내용
▲ 제주 아파트 광고 가피라이트 경향신문 2018년 7월 12일자 신문 광고 내용
ⓒ 김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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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때 우연히 눈 마주친 뒤로 설렘을 갖게 된 남자 반 동급생이 있었다. 그 당시 이성교제는 꽤나 용기 있는 아이들의 몫이었으니 말이라도 걸어볼 엄두는 애당초 내어 보지도 못했다. 그저 우연히 마주치는 기회나 노리며 짝사랑에 만족하며 지냈다.

어느 날, 그 아이가 운동장에서 노는 모습이 보여 창가에 같이 있던 친한 반 친구에게 "쟤 멋있지? 나 요즘 쟤한테 마음이 끌려"하고 말했다. 그랬더니 친구는 "우리 학교에 저렇게 멋있는 애가 있었어?" 하며 관심을 보였다.

얼마 후 그 친구의 권유로 가게 된 롤러스케이트장에서 바로 그녀와 손을 잡은 채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있는 짝사랑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롤러스케이트를 잘 타지도 못하는 나에게 같이 가자고 조른 이유는 도대체 뭘까?

배신한 친구 덕에 제대로 해보지도 못한 사랑에 상처 받은 나는 꽤나 오래 설렜던 짝사랑의 종지부를 찍었다.

한동안 서먹해졌던 그 친구에게 둘 관계의 안부를 물으니, "좀 만나 보니 시시해졌어"라며 시큰둥하게 답했다. 그 말에 내 아픈 짝사랑은 또 한 번 내동댕이쳐졌다.

제주 '더 오름'의 작명이 딱 그렇다. 내 소중한 짝사랑을 빼앗긴 느낌... 그렇지만 이젠 어른이니까 통 크게 웃자!

부디, 제주를 좋아하고, 놀거나 살러가는 사람들이 제주의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고 소중히 여겼으면... 제주를 자주 못 가지만 여전히 사랑하고 아낄 예정인 나이든 소녀의 기도.

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본인 페이스북(친구공개)에 포스팅된 글을 일부 수정한 글입니다.



태그:#제주, #오름, #제주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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