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어름박골 쪽빛나라> 김성동 작가가 옷감에 쪽물을 들이다가 포즈를 취했다. 작가는 스스로 '물장이' '농사짓는 사람'이라고 했다.
 <어름박골 쪽빛나라> 김성동 작가가 옷감에 쪽물을 들이다가 포즈를 취했다. 작가는 스스로 '물장이' '농사짓는 사람'이라고 했다.
ⓒ 김희정

관련사진보기


靑取之於藍 而靑於藍 (청취지어람 이청어람. 순자(BC 300~230)의 '권학편(勸學篇)')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푸른색은 쪽에서 나왔지만 쪽빛보다 푸르다'라는 뜻으로 우리가 흔히 제자가 스승보다 나음을 비유한 靑出於藍(청출어람)과 같은 의미다.

여기서 람(藍)은 위에서 언급했듯 '쪽'을 말한다. 우리나라 토종 쪽은 마디풀과 한 해살이 풀로 땅에 물기가 있고 일조량이 좋은 곳에서 잘 자란다. 염재식물로 씨는 3월쯤에 뿌리고 키가 70~80cm 자라면 연초록잎에서 맑고 파란 색소(indigo)를 얻을 수 있다. 본초강목, 동의보감, 규합총서 등에 따르면 쪽은 강한 향균력과 살균력, 해열효과, 방충•방독 효과 등이 있다고 한다.

이러한 쪽을 20년 이상 심고 가꾸고 자연 발효시켜 옷감에 물을 들이는 작가가 있다. <어름박골 쪽빛나라>김성동(49) 작가다. 스스로를 '물장이'라고 부르는 작가는 사라져간 우리나라 토종 쪽을 살리고 우리나라 전통 염색법인 자연발효 쪽 염색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숨이 막힐 것처럼 후덥지근한 지난 15일, 작가의 쪽 연구소가 있는 어름박골을 찾았다. 경기도 이천의 어름박골은 마장면에서도 구불부불한 산길을 지나 숲속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2013년 한국천연쪽협동조합 선정(안전행정부), 2014년 전국우수마을기업으로 선정된 마을이다. 작가는 쪽물(남빛)을 들인 옷감을 빨랫줄에 널고 있었다. 얼마 전 시작한 스토리펀딩으로 주문받은 여름 상품이라고 했다.

쪽물 들인 옷감이 7월 중순의 뜨거운 햇볕과 파란 하늘, 뭉게구름, 바람, 나무 냄새, 풀냄새와 함께 푸르러지고 있다.  이천시 마장면 <어름박골 쪽빛나라>마당에서.
 쪽물 들인 옷감이 7월 중순의 뜨거운 햇볕과 파란 하늘, 뭉게구름, 바람, 나무 냄새, 풀냄새와 함께 푸르러지고 있다. 이천시 마장면 <어름박골 쪽빛나라>마당에서.
ⓒ 김희정

관련사진보기


"천을 쪽물에 담근 후 햇볕에 꾸득꾸득하게 말려요. 물기가 80% 정도 말랐다 싶으면 걷어서 다시 쪽물을 들이고요. 최소 3번, 많게는 9번 정도 반복해요. 진한 색을 내기 위해서는 횟수에 상관없이 몇 달에 걸쳐 쪽물을 들이기도 한답니다. 단박에 되는 것은 없어요. 기다려야 하죠. 쪽물 염색은 자연의 이치를 닮았어요."

우러난 쪽물을 받아둔 통, 쪽물 염색을 한 천 등이 있는 작업실은 시원했다. 선풍기 한 대만 돌아가는데도 바깥의 내리쬐는 땡볕과는 아무 상관없다는 듯 그랬다. 쪽은 자외선 차단효과와 열을 낮추는 효능이 있다고 작가는 말했다. 작가에게 쪽으로 전통발효염색을 하게 된 까닭을 물었다.

"대학교 방학이면 보석을 찾아 세계 오지를 다녔어요. 여름방학이었는데 하루는 미얀마 국경 지역 작은 마을을 지나다가 주민들이 모여 천에 물을 들이는 풍경을 봤습니다. 처음에는 무심코 지나쳤죠. 그런데 다음에 갔더니 또 그 광경을 보게 됐어요. 호기심도 생기고 궁금해서 주민들한테 밥을 얻어 먹으며 무엇을 하느냐고 물었죠.  그 사람들이 물을 들이는 염료로 사용하고 있는 것도 조금 얻어왔고요.

한국에 돌아와 시간이 흐른 어느 날 푸른 색 물이 나온 그 풀이 '쪽'이라는 사실을 알았죠. 그 후 우리나라에도 쪽이 있었는지 자료를 찾아봤어요. 그 과정에서 우리 민족은 고조선 이전부터 푸른색과 함께 해왔고 쪽은 우리 토종식물이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전국의 요소요소마다 쪽을 재배했다는 기록도 있고요. 

한데 일제강점기 말부터 1950년 6.25 전쟁 후 쪽 씨앗은 소멸됐다고 하고요. 배고픈 시절이라 자연스럽게 쪽농사를 짓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그럼에도 전라남도와 경상남도에서 몇 분이 쪽 염색을 하셨지만 서울 한복판에서 전통발효염색을 하는 사람을 찾기 어렵다고 하더군요. 

쪽에 관한 여러 자료를 찾는 과정에서 쪽은 염재 식물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푸른색을 내며 전통발효 염색은 염색방법 가운데 으뜸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이왕 염색을 할 거면 쪽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쪽밭의 쪽이 더운 줄도 모르고 지치지 않고 7월 뜨거운 햇볕에 온 몸을 맡기고 있다. 잎마다 색소가 듬뿍 들어 있겠다.
 쪽밭의 쪽이 더운 줄도 모르고 지치지 않고 7월 뜨거운 햇볕에 온 몸을 맡기고 있다. 잎마다 색소가 듬뿍 들어 있겠다.
ⓒ 김희정

관련사진보기


1994년 무렵, 작가는 쪽 색소에 비피더스 유산균, 청주 막걸리 등 여러가지를 넣어보며 실험을 거듭했다. 계속 실험을 하다보니 데이터가 나왔고 그것을 정리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쪽을 먹어보고 피부에 발라보는 등 다양한 실험 끝에 인체에 이롭고 가장 아름다운 푸른빛을 내는 쪽발효법을 찾기 시작했다.

전통 쪽 발효법에 대해 묻자 김성동 작가는 "말린 콩대, 명아주대, 쪽대 등을 태운 잿물에 효모가 살아있는 생막걸리, 요리할 때 사용하는 물엿을 넣은 뒤 양에 따라 상온에서 3일~10일 정도 지나면 자연스럽게 발효가 됩니다"라고 말했다.

쪽은 잎에 색소가 있는데 겉모양으로는 색소 양을 알 수 없다고 한다. 쪽잎을 2~3일 동안 물에 담가 우러난 양으로 알 수 있다. 작가는 쪽밭에서 쪽잎 상태를 살피고 잎을 뜯어 광목 조각이나 하얀 손수건에 찍어 본단다.

김성동 작가는 귀농 귀촌에 관심 있는 분들한테 이렇게 말했다.

"두려워하지 말고 오셨으면 좋겠어요. 요즘은 시골에도 다양한 시스템과 네트워크가 잘 갖춰져 있어요. 특히 청년들은 누릴 수 있는 혜택이 많습니다. 인터넷으로 습득한 정보는 간접 지식일 뿐 자기 자식이 될 수 없습니다. 할 일이 많아요. 도움 주시는 분들도 많답니다. 일단, 오셔서 몸으로 부딪혀 보시기 바랍니다. "

쪽물 든 김성동 작가의 손톱,  장갑을 끼지 않고 손으로 쪽물을 들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손톱에 쪽물이 든다고 한다.
 쪽물 든 김성동 작가의 손톱, 장갑을 끼지 않고 손으로 쪽물을 들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손톱에 쪽물이 든다고 한다.
ⓒ 김희정

관련사진보기


작가는 쪽으로 염색은 물론 먹거리, 관광산업 등 구상하고 있는 게 많다. 항암 성분이 들어있는 쪽을 접목시킨 이천쌀, 식품, 의류, 차, 장애인자활센터와 연계한 일자리 및 인건비 창출, 국제교류 등. 혼자 할 수 없고 여러 기관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작가는 한 걸음씩 하려고 한다. 7월 중순, 폭염이 이어지는 여름 한낮 쪽밭의 푸른 쪽잎을 만지며 작가는 말했다.

"보석을 찾아다니다가 세계를 다니다가 쪽을 만났습니다. 쪽은 내 인생의 최고의 보석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천소식 8월호에 실릴 예정입니다.



태그:#어름박골 쪽빛나라 , #토종식물, #마을기업, #스토리펀딩, #보석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