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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가 쓰는 한 주간의 퍼포먼스 2

교육
18.07.20 17:16l

검토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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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과 야망! 이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줄곧 귀를 따갑게 하는 보편적인 소리중의 하나다. 동시에 삶의 과정에서 듣게 되는 예언가의 메아리와도 같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했듯이, 고난과 역경이 다가오면 그것을 극복하지 않고서는 성공하기 어려움을 제시한 말이다. 매일 우리는 학교에서 친구들과 선생님과 때로는 외부에서 초청된 또 다른 기관의 조언자를 만나 지나간 그들의 삶의 과정을 한 줄기 소낙비처럼 시원하게 들을 때, 어떻게 살아야 진정 좋은 삶인지 어떻게 해야 성공하는 삶을 사는지 생각이 필요할 때가 있다.
세계의 베스트 소설인 '제인에어'는 영국의 여류작가 샬럿 브론테가 썼다. 주인공 제인에어는 어린 시절에 부모를 잃고, 친척과 고아원에서 배척당하고, 결혼 실패로 이어지는 설상가상의 상황에서 그녀의 앞길에 거대한 유산이 주어지지만 오히려 화려하고 고풍스러운 삶과 결혼을 거절하고 화재로 시력을 잃고 사람을 싫어하는 대인기피증이 돼버린 남자의 배우자로 자청해 가는 소설의 마지막 장면이 가슴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게 한다. 나다니엘 호손의 작품 '큰 바위 얼굴'에서는 성공한 사람들의 성품이 다양하게 나타난다. 위대한 장군이 되었지만 뭇 사람들로부터 존경받지 못하고, 거대한 부를 축적해 성공했지만, 거리의 천사에게 돈 한 푼 던지지 않는 구두쇠의 모습에서 모두가 성공에 대한 회의를 드러낸다. 그렇다. 오늘의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가 아무리 물질만능이라 해도 진정한 성공을 꿈꾸는 자는 정직한 삶으로 주변 사람들의 칭송을 변함없이 받으면서 함께 행복을 나누는 삶을 추구하는 이 소설의 주인공 어어니스트와 같은 사람. 1979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유고슬라비아 출신 테레사 여사와 같은 인물임을 생각하게 한다. 사람들이 추구하는 성공은 제각기 다른 까닭은 성공의 길은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기 때문이다. 학자로, 기능인으로, 정치인으로, 기업인으로, 예술인으로 등등.
다시 우리가 앉아 있는 현실로 되돌아와 보자. 교실에서 너와 내가 마주 보면서 생활해 나가는 과정은 진정 어디에 있을까? 인간이기에 단순이 학교를 거쳐 가는 통과의례 과정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우리는 아침에 만나 학습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서로 간에 주고받는 다양한 체험을 이심전심으로 느끼게 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나 보이는 곳에서나 알게 모르게 서로 경쟁의 틀에서 움직인다. 시험을 거치면서, 게임을 하면서, 그리고 다양한 배움의 시간을 거치면서 협력도 하지만 동시에 서열의 영역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것이 곧 군집생활을 하는 동물의 세계에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다만 인간이기에 군집이라는 표현을, 경쟁이라는 표현을 자제하여 더불어 살아가는 행복한 공존의 터널을 만들어 가도록 애쓸 따름이다. 그래야만 빈부간의 갈등, 집단 간의 갈등을 완화시켜 서로 간의 불신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똑같이 학교를 졸업하고 똑같이 대학을 졸업해도 너와 내가 추구하는 길이 다른 이유는 추구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도 되지만 미래는 각자가 만들어 갈 수 있는 무한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학창시절에 교실에서 불을 밝히고 웃으면서 멘토-멘티를 하면서 다정하게 지냈지만 사회라는 또 다른 공간에서 다른 사람과 더불어 경쟁의 우열을 다투는 사각의 링을 만들면서 치열한 성공의 열쇄를 만들어 내는 것이 우리들의 삶이다. 성공이란 한 집단에 우두머리가 되었다고 성공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으나 진정한 성공은 뭇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킬 수 있는 자신의 바른 마음씨, 미래를 이끌어 갈 곧은 정신, 그리고 이웃과 공존하는 공동체 의식의 공간이 내 마음 속에 변함없이 흐르고 있을 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까? 나를 위해 기도하는 시간은 몇 분에 지나지 않으면서 게임하는 시간, 휴식 시간, 잠자는 시간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면 진정한 나를 이끌어 갈 마음 속 성공의 공간부피는 얼마나 되는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나를 위한 헌신적인 기도시간을 더 늘리고 간절할 때 내 자신을 위한 시간에 더 투자를 하게 되는 것이다. 혹자는 말하곤 한다. 굳이 그렇게까지 하면서 살 필요가 있느냐고? 옳은 말이다. 그러나 스티브잡스는 어떠했는가? 세계 사람들에게 일을 위한 사랑의 기도를 간절하게 그리워했던 그는 왜 그랬을까? 무엇이 부족해서, 무엇이 부러워서. 스티브잡스는 그의 일에 몰두하였을까?


태그:#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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