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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여년 전, 당시 다니던 직장의 상사로부터 달갑지 않은 잔소리를 듣곤 했다.

"쓸데없이 소설 좀 보지 마."

업무 시간에 책을 펼친 적은 없다. 통근길 지하철에서 마주치는 일이 왕왕 있었는데, 그때마다 그는 내가 읽는 책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 역시 책을 사랑했지만 오직 자기계발서만 읽었다.

어느 날엔가는 내가 정중히 사양했음에도 불구하고,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을 내게 빌려주기도 했다. '쓸데없는' 소설과 달리, 이건 반드시 한 번쯤은 읽어야 하는 인생의 교과서라며.

지금은 나도 자기계발서를 읽곤 하지만, 한동안은 애꿎은 그 장르를 미워했다. 내 취향이 비하되었다는 분노도 있었지만, 문학을 이해 못하고 평가절하하는 그의 오만함이 더 못마땅했던 것 같다. 영국의 자존심으로까지 불리는 셰익스피어는 대체 무엇을 썼다고 생각하는지.

그 후 인문학이 유행이라는 말을 들을 때면 종종 그를 떠올렸다. 그가 인문학의 중요성에 대해 알게 됐으면 했다. 오직 성공만을 인간의 가치라고 여겨 삶이 고단한 이들에게, 세상이 꼭 정글만은 아님을 알려줄 수 있는 것은 인문학일 것이다. 그러나 문득 의문이 들기도 한다. 인문학이 정말 유행하긴 한 걸까.

<반기업 인문학> 책표지
 <반기업 인문학> 책표지
ⓒ 인물과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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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에 인문학이 유행한다는 말이 나온 지가 거의 15년이 다 되어간다. 15년이면 상당한 사회변화가 일어나고도 남을 만한 세월이다. 인문주의란 '전복적 도전'과 거의 동의어다. 인문학적 사고는 반성, 회의, 비판이 핵심이다. 그러나 이 15년 동안 비판적 사유와 지성이 사회적으로 제고되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p15)

박민영의 <反기업 인문학>은 이 시대의 인문학에 대해 조명한다. 먼저, 사회에서는 인문학이 유행이라는데 대학에서는 인문학이 존폐 위기에 놓이게 된 원인을 분석한다.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학생들은 취업이 잘 되는 학과에 몰리게 되고, 인문학은 취직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지 않으므로 비인기학과가 된다. 비인기학과는 예산이 삭감되거나 다른 과와 통폐합되기 일쑤다.

"중고교 때는 학생들의 목줄을 대학이 잡고 있었다면,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는 '이렇게 해야 취직할 수 있다'며 그 목줄을 국가-자본이 움켜잡는다. 목줄을 잡고 있는 주체만 바뀌었을 뿐, 노예 신세인 것은 똑같다. 학생들은 국가-자본 앞에 경쟁적으로 줄만 서다, 자신만의 사상과 세계관이라 할 만한 것을 갖지 못한 채 졸업한다." (p82)

이는 학생만의 문제가 아니다. 비정규직의 젊은 인문학자들은 불안정한 고용과 생계를 유지하기 힘들 정도의 박봉에 시달리게 된다. 저자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주된 통치 전략이 여기서도 발휘되고 있음에 주목한다. 대중이 시간과 돈에 허덕이게 만들어 무기력, 무저항의 상태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비판 의식은 인문학에서 기본이다. 그럼에도 시간강사 제도가 강요하는 경제적 궁핍은 인문학자로 하여금 아무런 비판을 하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체제의 수호자가 되게 한다. 그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중략) 비판정신이 고도로 발달해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 인문학자들에게도 경제적 학대를 통한 길들이기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p44)

교육부 산하 한국연구재단의 학술 연구 지원에도 저자는 문제를 제기한다. 연구비를 받기 위해서는 해당기관의 심사를 받아야 하고, 이는 곧 연구 주제를 검열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의 이념에 맞는 연구가 이뤄지고, 국가를 비판적 검토 대상으로 삼는 것은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이마저도 인문학에 대한 지원은 미약해 한국연구재단의 2014년 총 예산 3조 6,993억 원 중 인문사회 분야 예산은 2,250억 원에 불과하다고 한다.

다행일까, 불행일까. 인문학에 대한 정부의 억압과 차별은 한국만의 일이 아니라고 한다. 세계적 현상이고, 신자유주의 시대의 전형적인 풍경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반성적 학문인 인문학이 인간의 지성과 학문의 발달, 사회와 역사의 진보에 꼭 필요한 반면, 기득권자들에게는 불편함을 안겨주기 쉽다는데 주목한다. 따라서 국가와 자본의 입장에서는 인문학을 억압, 차별, 통제함으로써 길들이려고 한다는 것이다.

저자가 규정하는 '기업 인문학'은 기존의 인문학과는 완전히 달라서, 인문학이란 이름을 붙여도 될지 의구심이 들 정도다. 그에 따르면 기업 인문학은 기업 이익과 자기계발에 복무하는 인문학이다. 정통 인문학이 존재 그 자체가 목적인데 반해, 기업 인문학은 하나의 수단으로서 생존, 출세, 성공, 경제적 이익 등의 목적에 복무한다.
"지금 유행하는 인문학은 '본격 인문학'이 아니라, 자본권력이 추동한 '기업 인문학'이다. 돈벌이에 복무하는 '기업 인문학'은 물질주의, 과학기술주의, 경쟁체제를 배제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적극 포용하고 추동한다. 인문학 열풍과 함께 물질주의, 과학기술주의, 경쟁체제가 심화되는 이유다." (p98)

저자는 기업 인문학이 비판 의식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소거시키고, 교묘한 논리로 주류적 사고에 영합하게 만든다고 지적한다. 현실 문제들을 해명하는 데 도움을 주지 않고 현실 인식의 감각을 마비시키거나 현실을 왜곡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는 기업 인문학은 기본적으로 공부와 앎을 생산하는 체제가 아니기 때문에, 어느 순간 '반反공부'로 전환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한다.

아이폰을 탄생시킨 스티브 잡스의 인문학은 대중의 정신을 이데올로기적으로 지배하고자 한 '인문적 수사'일 뿐인 사례로 제시된다. 진보 지식인의 기업 인문학 참여는 진보의 외연 확장이 아니라 타협이고 투항이며, 자본권력의 영토 확장으로 설명된다. 그에 따르면, 평생교육 역시 기업 주도의 국민 교육이다. 저자는 이 모든 것들이 결국 인문학 자체를 변질시킬 수 있음을 경고한다.

'기업 인문학'의 개념은 인문학 열풍과 인문학 위기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는 기이함을 설명해준다. 자선 사업, 사회적 기업, 평생 교육 등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저자의 문제의식은 매우 날카로웠다. 이러한 비판 정신이 바로 인문학 본연의 모습일 것이다. 그가 제기하는 모든 문제를 단 하나의 진실로 받아들이진 않겠지만, 사회를 성찰하고자 하는 하나의 제언으로서 충분한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책 전면에 걸쳐 묵직한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요즘 아이들의 장래희망은 '건물주'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농담이길 바라지만 그렇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신자유주의의 광풍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불평등이 심화되고 오직 생존과 경쟁만이 지상 최대의 과제로 남는다면, 과연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을까. 내게도 공감을 불러일으켰던 저자의 문제 의식 하나를 옮기며 글을 마친다.
"아동들에게 경제교육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당연히 나쁘지 않다. 문제는 그런 논리하에 아이들에게 신자유주의적 경제관념을 심어주는 책들이 대거 팔려나갔다는 사실이다. 자본가들은 어린이들이 보는 위인전 목록에도 입성했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가 교과서에도 실렸다. 학생들은 성공한 자본가들을 인생의 전범으로 삼고, 그들을 숭배하게 되었다." (p7)


反기업 인문학 - 인문학은 어떻게 자본의 포로가 되었는가?

박민영 지음, 인물과사상사(2018)


태그:#반기업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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