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책 추천을 하는 것은 내게 중매 못지않게 어려운 일이다. 잘못 된다고 설마 따귀야 맞겠느냐마는, 나를 믿고 물어온 사람에게 실망감을 주고 싶진 않은 까닭이다. 나만 해도 몇 해 전에 열광한 책을 다시 펼쳐보고는 그땐 왜 그렇게 좋아했나 싶었던 경우도 있고 그 역도 얼마든지 있다. 그러니 나와 취향도, 고민도 다른 사람에게 좋은 책을 골라주기란 영 쉽지 않다.

그럼에도 누구에게든, 언제든 추천하고 싶은 책을 딱 한 권 고르라면, 고민 없이 <월든>을 선택할 것이다. 저자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외딴 숲 속 월든 호숫가에 손수 오두막을 짓고, 최소한의 노동을 하며 2년 여를 살아 본 기록이다. 그의 실험은 나의 고정관념을 완전히 뒤흔들어 놓았다. 출판된 지 160여년이 지났지만, 그의 실험은 여전히 파격적이고, 유효하다.

 <느낌의 0도> 책표지
 <느낌의 0도> 책표지
ⓒ 돌베개

관련사진보기


<월든>과 맥을 같이 하는 책, 에코페미니스트이자 영문학자 박혜영의 <느낌의 0도>를 만났다. 그는 양차 세계대전과 중동전쟁, 전후 전 세계를 휩쓴 경제개발과 신자유주의의 광풍을 경험한 20세기 작가 일곱 명과 그보다 이른 시기를 살다 간 소로, 이렇게 총 여덟 작가의 삶과 글을 통해 현 시대를 생태적 관점으로 조명하고 있다.

책을 여는 작가는 레이첼 카슨이다. 카슨은 생물학을 전공한 과학자인 동시에,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줄 아는 시적 상상력과 자연에 주의를 기울일 줄 아는 뛰어난 감수성을 지닌 작가로 소개된다. 그녀가 남긴 <침묵의 봄>은 화학 물질의 독성에 관한 전문적 자료 조사와 연구에 기초한 저서임에도, 그 감수성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그녀는 인류가 진보와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서식처에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주목한다. 선별적으로 해충을 박멸할 수 있다는 과학의 오만이 자연 생태계를 어떻게 교란시키는지를 관찰하고, 치명적인 살충제 사용과 화학 산업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그녀의 책은 현대 환경운동의 탄생을 가져온 획기적인 저서로 꼽힌다고 한다.

카슨은 과학의 현명한 이용을 권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았다. 인간의 자의적 기준으로 특정 해충을 박멸하려고 할 때 그것은 부메랑처럼 되돌아와 인간 자신도 해치고, 나아가 생명체들이 계속해 스스로를 무장함으로써 지구 생태계 전체를 항구적인 전시(戰時)상태로 만든다는 사실을 짚어냈다.

내성이 생긴 곤충이 반격하고, 더욱 강한 살충제를 동원하는 식의 끝없는 화학전에 승리란 결코 있을 수 없음을 카슨은 지적한다. 진화를 거듭하며 서식지에 적응하는 다른 생물과 달리, 인간만이 자신의 편의와 이익을 위해 서식지를 바꾸려 함을 주시한다.

"카슨은 주어진 삶의 조건을 편리하게 바꾸려는 욕망의 근저에 본질적으로 우리 문명의 파괴성이 존재한다고 보았다. 왜냐하면 어떤 특정 생명체를 선별하여 깨끗하게 박멸할 수 있다는 생각은 근본적으로 전쟁의 논리이자 파시즘의 논리이기 때문이다." (p26)

인간이 마음대로 익충과 해충을 구분하는데서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쉽게 박멸하려는 욕망에서 살충제와 핵무기가 다르지 않음을 읽어내는 카슨의 통찰은 화학산업계와 과학계의 반발과 비난을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자연의 신비와 영겁의 역사를 느끼는 카슨의 생태적 감수성은 비과학적이거나 비현실적이라는 비난을 받지만, 저자는 반문한다.
"인간이 만든 철 드럼통이 영겁의 세월을 견디며 안전하게 방사능을 붙잡아줄 것으로 믿는다면 이것이 훨씬 더 비과학적이지 않은가? (중략) 존재하는 모든 생명을 부주의하게 다루면서도, 생명 간의 그물망을 부숴버리고 그 서식처를 악의적으로 파괴하면서 인간에게만은 이 지구가 계속 살 만할 것이라고 믿는다면 그게 더 신비주의적이지 않은가?" (p34)

두 번째 소개되는 작가는 미하엘 엔데다. 그의 작품 <모모>는 출판 당시 아이들의 우정을 그린 아름다운 동화로 소개되었지만, 엔데는 마치 암세포처럼 무한정 증식하는 고독한 돈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를 순환하다가 언젠가 자연스럽게 소멸하는 새로운 화폐 개념을 생각하며 작품을 썼다고 말한 바 있다. 내용을 말하자면 이렇다.

어느 마을에 모모라는 어린 소녀가 나타난다. 사람들은 모모가 정착할 수 있도록 돕고, 모모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와 친구가 된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우애의 공동체는 은행원들의 등장으로 깨지게 된다. 은행원들은 사람들의 삶이 궁핍하다고, 어울려 노느라 시간을 다 써 시간저축은행의 잔고가 남지 않았다고 말한다.

은행이 마을 중심부에 들어선다. 사람들은 저축을 늘리고자 수시로 은행을 드나든다. 최대한 짧은 시간에 최대한 많은 일을 하는 것이 사람들의 삶의 목표가 되어버린다. 은행이 삶을 지배하자 돈과 시간은 시장에서 생산되고, 거래되고, 증식과 축적도 가능한 상품이 된다. 시간을 아끼려는 사람들은 서로 멀어지고, 영혼은 가난해진다.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내겐 우화가 아니라 르포로 느껴질 정도다.
"엔데의 말대로 성장에 대한 강박적인 집착과 욕망으로 마음이 사막화되고, 생기 넘치던 생명의 시간이 모두 고독과 불안의 시간으로 바뀌게 되면, 그런 현재의 희생이 약속하는 미래의 안락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p57)

그밖에도 '즐겁지 않으면 좋은 노동이 아니다'라는 소제목으로 E.F.슈마허가, '평화의 시작은 집으로 돌아가는 것'에는 웬델 베리, '모두에게 정의로운 삶을 위하여'의 마흐무드 다르위시 등 총 여덟 명의 작가가 소개되고 있다.

하나같이 잠자는 나의 감성을 흔들어 깨운다. 그들은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들여다 볼 줄 알아야 한다고, 고독한 각자로 고립될 것이 아니라 서로를 느끼고 연대해야 한다고, 인간만이 아닌 생태계라는 거대한 안목에서 세상을 바라볼 때 끝없는 불안과 영혼의 황폐함과는 작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나직하지만 분명한 어조로 말한다.

<월든>의 감동을 이 책으로 다시 만났다. 이 책이 아니었다면 알지 못했을 일곱 명의 작가들 또한 책으로 만나볼 생각이다. 피로를 딛고 책을 펼친 날은 따분할 수도 있지만, 눈과 귀와 마음을 열게 된 순간, 익숙한 사물과 세상이 달라져 보이게 되는 경험. 많은 사람과 함께 누리고 싶다.

책의 부제는 '다른 날을 여는 아홉 개의 상상력'이다. 그렇다. 여덟 명의 작가의 뒤를 이을 아홉 번째 상상력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졌다. 새로운 세상을 상상하는 것은 설레는 일이다. 상상하지 않으면 바꿀 수 없을 테니까.

"여기 소개한 작가들이 깨어 있는 감각의 중요성을 말한 것은 그저 우리가 마음만 바꾸면 된다는 뜻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행동이다. 주의를 기울이면 다른 것이 보이고, 다른 느낌이 깨어나고, 그러면 누구든지 저항할 수 있기 때문이다." (p10)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