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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가 월드컵에 돌풍을 몰고 와 세인을 놀라게 했습니다. 놀랄 게 하나 더 있습니다. 크로아티아의 유서 깊은 고장 하나가 1402년에 한양에서 제작된 세계지도 '강리도(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1402년 제작)'에 크게 표시되어 있다면? 믿어지지 않을 겁니다. 그곳을 편의상 S성(城)이라 부르겠습니다. 이제부터 S성을 찾아가는 탐구여행을 시작합니다.

강리도에는 성곽마크로 둘러싸여 있고 그 내부는 붉은색으로 칠해져 있는 그림이 두 개 나옵니다. 동쪽과 서쪽에 각각 하나씩 있습니다. 강리도에서 가장 특별하게 다루어지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 두 곳이 과연 어디일까요? 먼저 이미지를 여기 옮겨와 봅니다.

조선이라고 쓰여 있음
▲ 강리도의 한양 조선이라고 쓰여 있음
ⓒ 류코쿠 대학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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昔克那
▲ 강리도 昔克那
ⓒ 류코쿠대학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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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둘은 크기도 모양도 색상도 같습니다. 첫 번째 것을 먼저 살펴봅니다. 붉은 원내를 채우고 있는 글자는 위에서 아래로 '朝鮮(조선)'입니다. 성곽 밖을 보면, 위쪽에 三角山(삼각산), 오른쪽으로 楊州(양주), 왼쪽으로 高陽(고양)이라 쓰여 있습니다. 이로써 이 성곽 마크는 조선의 수도 한양을 표시하고 있음을 쉬이 알 수 있습니다. 그다음이 문제입니다. 우선 원내의 글자는 昔克那(석극나), 중국어로는 '시커나'입니다.

이제 그것을 강리도에서 찾아봅니다. 지중해(아드리아해 포함) 위쪽에 있습니다.

昔克那
▲ 강리도 昔克那
ⓒ 류코쿠 대학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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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대 문학부 지리학교실 소장
▲ 강리도의 현대적 재현 교토대 문학부 지리학교실 소장
ⓒ 김선흥(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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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성 아래쪽에 굴곡이 심한 굵은 선이 그려져 있는데, 일단 해안선으로 봅니다. 그 아래에 바다 색깔이 누락되어 있지만 지중해(아드리아해, 에게해 포함)로 상정해 봅니다. 이제 S성을 규명해 봅니다. 성곽모양의 테를 두르고 있는 것으로 보아 성곽 도시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의 서울도 북한산과 남한산성 등으로 둘러싸인 성곽 도시입니다. S성은 유럽에서 아주 특별하고 유서가 깊은 성곽도시일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강리도에 이렇게 그려져 있을 까닭이 없겠지요. 이제 인터넷을 검색해 봅니다. 이를테면 Greatest Wall in the Europe 15th century, 뭐 그런 비슷한 거로 검색해 봅니다. 아래와 같은 내용을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유럽의 만리장성' 크로아티아의 스톤(Ston) 성곽은 세계에서 가장 긴 성벽 중의 하나이다. 1358년경 건축이 시작되었는데 완성 시에는 7km를 넘었다. 이 특별한 성곽은 14세기부터 스톤시를 650년 넘게 지켜 주었다. 스톤 성곽은 유럽의 만리장성(European Wall of China)이라 불리기도 한다.
성곽
▲ 크로아티아 Ston 성곽
ⓒ Anto/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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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리도에 그려진 성곽이 바로 이것이 아니겠는가? 세상에, 우리 선조들이 1402년에 붓으로 그걸 그려 놓았다니... 그러나 흥분을 가라앉히고 좀 더 탐구를 해 봅니다. 크로아티아의 스톤은 현재는 작은 마을에 불과하지만 옛날 로마 시대부터 유서 깊은 고장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옛 이름은 스타그넘(Stagnum, 라틴어)입니다. 지금 이탈리아어로는 스타그노(Stagno)라 부릅니다. '시커나(昔克那)'와 발음이 유사합니다. 하지만 더욱 일치하는 것은 아랍어 명칭입니다. 눌란 박사(카자흐스탄 출신, 강리도 지명 연구)의 설명을 들어봅니다.

강리도에서 놀라운 점 중의 하나는 유럽을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비록 지중해가 왜곡이 심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중략) 시커나(昔克那, 크고 붉은 톱니바퀴 모양으로 표시된 곳)는 대체로 Šighnu(시후누 혹은 시크누)와 그 발음이 일치한다. 이는 크로아티아의 유서 깊은 명소인 오늘날의 Stagno(Ston)을 가리키는 아랍어 명칭이다. - Nurlan, 114~115쪽

이곳을 가리키는 아랍어 명칭 'Sighnu'와 거의 정확히 일치한다는 것이 놀라울 뿐입니다. 昔克那(시커나)는 일본학자나 중국학자 혹은 서양학자가 아니라 뜻밖에도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 학자 눌란에 의해 처음으로 탐구되었습니다(국내에는 아직 알려지지 않음).

이제 인근 도시 하나를 살펴봅니다. 昔克那(시커나) 바로 오른쪽 약간 아래 네모 안에 네 글자가 적혀 있습니다. 즉 骨思嘆昔那, 중국어 발음으로 '꾸스탄시나'인데 콘스탄티노플, 즉 오늘날의 이스탄불을 가리킵니다. 강리도에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면 이상한 일일 것입니다. 현대 지도에서 터키의 이스탄불과 크로아티아 스톤의 지리적 위치를 살펴보면 크로아티아의 스톤이 이스탄불로부터 약간 북서 방향에 놓여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강리도에 표시된 두 곳의 상대적 위치와 일치합니다.

이상의 여러 사실로 보아 강리도의 '昔克那(시커나)'는 오늘날 크로아티아 스톤의 옛 고장을 가리키고 있음이 거의 확실합니다.

Ston
▲ 크로아티아 지도 Ston
ⓒ Zegrah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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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강리도의 유럽 지역에는 약 100개의 지명이 나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그 지리적 위치에 오류가 많겠지만(昔克那도 마찬가지), 15세기 한국인이 편찬한 지도에 그런 수많은 지명들이 수록되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상상을 초월합니다. 아직 규명되지 못한 것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스톤의 옛 이름 스타그넘(Stagnum)은 지금 그 고장의 세계적 명품 포도주로 빛나고 있다 합니다.
스타그넘(라틴어)
▲ 스톤산 포도주 스타그넘(라틴어)
ⓒ slobodnadalmacija.h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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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리도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지중해나 아드리아해 혹은 크로아티아를 여행할 때 강리도를 지참하고 가야 합니다. 그곳에서 크로아티아의 昔克那(시커나) 즉 스톤을 들러 스타그넘 와인 즉 '昔克那(시커나) 포도주'를 음미하면 묘미가 있을 것입니다. 그곳 사람들에게 강리도를 보여주면 더욱 좋을 것입니다. 당신네 고장을 600여 년 전에 우리 조상들이 비단바탕에 이렇게 멋지게 그려 놓았노라고. 월드컵 쾌거를 이 강리도로 축하하노라고.

이상으로 강리도 시공여행을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강리도는 실로 무궁무진합니다.

"지도는 현실과 상상의 세계를 펼쳐 보이며 사람들 마음속의 유랑과 동경을 일깨운다." - 제러미 블랙


태그:#크로아티아, #월드컵, #강리도, #포두주 스태그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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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만남이길 바래 봅니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제2의 코리아 여행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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