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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18일 오전 기자들과 만난 청와대의 고위관계자는 "청와대가 병력 배치 계획이 첨부된 문건을 보고받은 시점이 언제인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변했다. 이어 "파악 좀 해 달라"라는 기자들의 요청에 웃음만 지어 보였다.

기자들이 이 관계자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 데는 이유가 있었다. 이날 <조선일보>가 "문재인 대통령이 기무사의 '계엄 문건'에 '병력 배치'가 포함된 것을 보고받고 격노했다"라고 보도해서 청와대가 병력 배치 계획이 첨부된 계엄령 문건을 보고받은 시점을 물어본 것이다.

송영무 장관, 4월 30일 청와대 회의에서 문건 전달 안해

 문재인 대통령이 16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16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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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가운데 <오마이뉴스>의 취재 결과, 청와대가 지난 6월 28일 국방부로부터 공식으로 보고받은 계엄령 문건은 '완본'이 아니라 '요약본'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당연히 요약본에는 '계엄임무수행군 편성안'이라는 병력 배치 계획안은 없었다.

'전시 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이라는 제목으로 작성된 계엄령 문건은 지난 2017년 3월 초 조현천 당시 기무사령관이 한민구 국방부 장관에게 보고한 것이다. 이것이 문재인 정부의 송영무 현 국방부 장관에게 공식 보고된 것은 지난 3월 16일이었다.

첫 번째 문제는 송 장관이 이석구 기무사령관으로부터 계엄령 문건을 보고받은 이후 4월 30일 전까지 청와대에 관련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평창동계올림픽과 남북정상회담, 6월 지방선거 등을 고려해 '비공개'했다는 것이 국방부의 설명이었다.

국방부의 직무유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지난 4월 30일 기무사 개혁방안을 논의하는 청와대 회의 자리에서 송영무 장관이 '계엄령 문건의 존재와 내용의 문제점'을 간략하게 언급했지만, 문건을 청와대에 전달하지 않았다는 점도 논란거리다.

국방부는 송영무 장관이 계엄령 문건의 존재와 내용의 문제점을 간략하게 언급했다고 하지만, 청와대쪽은 참석자들이 문건 얘기를 기억하지 못할 정도의 보고였다고 반박한다. 김의겸 대변인이 11일 "두부 자르듯 딱 잘라 말할 수 없다"라든가 "회색지대와 같은 부분이 있다"라고 묘하게 해명한 데는 이런 상황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국방부는 "국방부의 비공개 방침에 따라 청와대에 당해 문건을 전달하지 않아 (4월 30일 청와대 회의에서는) 이 문건에 대한 논의는 없었다"라고 해명했다(16일).

계엄령 문건이 청와대에 전달된 과정에서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송영무 장관이 임종석 비서실장과 조국 민정수석 등이 참석한 4월 30일 청와대 회의에서 계엄령 문건과 관련해 보고한 내용이 어느 수준이었는지가 충분히 확인되어야 한다.

6월 28일 청와대에 전달된 문건에는 '병력 배치' 빠져 있어

청와대는 4월 30일 이후 송영무 장관이 언급한 계엄령 문건과 관련해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당시 회의 참석자들이 송영무 장관이 언급한 문건을 기억하지 못할 정도였다는 청와대쪽의 반론을 따르자면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계엄령 문건이 청와대에 '공식 보고'된 시점은 지난 6월 28일이었다. 당시 문 대통령은 주치의의 권유에 따라 이틀간(6월 27일-28일) 연차를 신청해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날 청와대에 보고된 문건이 '요약본'이었다는 점이다.

지난 5일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계엄령 문건은 '전시 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이라는 제목의 문건이다. 하지만 이 문건에는 병력 배치 계획안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이 의원에 이어 지난 6일 군인권센터(소장 임태훈)이 공개한 문건이 '계엄임무수행군 편성안'이다. 이는 '전시 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 문건에 첨부된 것으로 병력 배치 계획안이 담겨 있다.

하지만 이보다 앞선 6월 28일 국방부가 청와대에 공식 보고한 계엄령 문건에는 병력 배치 계획안인 '계엄임무수행군 편성안'이 없었다. 이러한 국방부의 축소 은폐 시도로 인해 문건의 위법성과 중대성,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할 수 없다는 것이 청와대쪽의 주장이다.

'계엄임무수행군 편성안'까지 포함된 계엄령 문건의 완본이 청와대에 전달된 시점은 그로부터 1주일이 지난 5일 직후였다. 이철희 의원이 '전시 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 문건을 공개한 직후에서야 병력 배치 계획안까지 포함된 계엄령 문건의 완본이 청와대에 전달됐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독립수사단 구성'을 지시한 진짜 이유

계엄령 문건의 완본을 본 청와대 참모들은 격분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사시를 대비한 단순한 계엄령 검토가 아니라 계엄업무를 수행할 군 편성과 병력 동원 규모가 구체적으로 기술돼 있었기 때문이다.

계엄령 문건의 완본을 전달받은 청와대는 법률검토를 포함해 내부 분석작업을 벌였다. 이어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문건의 분석결과가 담긴 '긴급보고서'를 문 대통령에게 올렸다. 계엄령 문건을 분석하고 긴급보고서가 문 대통령에게 올라간 시점은 이철희 의원이 계엄령 문건을 공개한 5일에서 문 대통령이 첫 번째 특별지시를 내린 10일 사이였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올린 '긴급보고서'는 문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두 차례에 걸쳐 특별지시를 내리게 된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0일과 16일 각각 독립수사단 구성과 계엄령 문건 관련 문서.보고의 즉각 제출을 지시했다.

계엄령 문건을 둘러싸고 청와대와 국방부 사이에서 '직무유기-안일한 대응 논란'이 일고 있는 것과 관련, 청와대쪽은 문 대통령과 송영무 장관이 계엄령 문건의 위법성 여부를 서로 다르게 판단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즉 송 장관은 계엄령 문건이 유사시에 대비해 계엄령을 검토한 것에 불과한 문건이기 떄문에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고 판단한 반면, 문 대통령은 구체적인 군 편성과 병력 동원 규모까지 기술돼 있다는 점에서 중대한 사안이고 위법하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서로 다른 판단 때문에 문 대통령이 국방부 장관의 지시를 받지 않는 독립수단을 구성해 계엄령 문건을 수사하라고 지시했다는 것이 청와대쪽의 설명이다. 한마디로 청와대는 송영무 장관을 비롯한 국방부를 믿을 수 없었다는 얘기다.

남아 있는 의문점 두 가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의문점'은 남는다. 먼저 송영무 장관이 청와대에 처음으로 계엄령 문건의 존재를 알린 이후 청와대는 문건의 제출 요구 등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러한 방치 상태는 국방부가 문건의 요약본을 청와대에 전달한 6월 28일까지 약 두 달간 지속됐다.

또한 청와대는 7월 5일 직후 계엄령 문건의 완본을 받아본 이후에서야 사안의 심각성을 깨달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문건의 요약본을 전달받은 6월 28일부터 이철희 의원이 문건을 공개한 7월 5일까지 문건의 실체를 규명하기 위해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로 인해 여전히 청와대의 직무유기-안일한 대응 논란은 쉬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태그:#계엄령 문건, #문재인, #송영무, #국방부, #기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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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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