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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스탄을 열망하다

알마티의 명소들
18.07.18 05:55l

검토 완료

이 글은 생나무글(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나는 지금 어디쯤에 서 있는가,
이곳은 낯선 도시,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이다.
무엇 하려 왔는가?
저녁 햇볕이 길게 그림자를 남기며 나에게 묻고 있다

. ⓒ 윤재훈

커다란 컨테이너 몇 개가 길게 누워있고 그 중 한 곳은 대형슈퍼다. 정면은 잘게 나누어서 작은 상점들이 있다. 그 중에서 케밥을 만드는 가게에 들어가 빵 두어 개로 허기를 채우고 나오는데 멀쩡하게 생긴 청년이 구걸을 한다.

슈퍼 안으로 들어가니 플래스틱 냄새가 먼저 코를 찌른다. 물건들도 산더미 같아 모든 것이 부족하던 옛 소련 시대와 대비가 된다. 목도 마른 오후라 그런지 생맥주를 담아주는 신기한 풍경이 먼저 눈에 뛴다. 이 나라는 맥주가 맛있는데, 그것을 커다란 페티병에 담아준다. 한 사내가 그것을 사가는 걸 보니 오늘 저녁 파티라도 할 모양이다. 가격은 400~500T 사이다. 나도 한 통 사 저녁 뷔페 만찬을 미리 대비한다. 밖으로 나오니 멀리 황금빛 돔의 모스코가 보이고 설산이 눈시리게 다가온다.

. ⓒ 윤재훈

사거리에 잡다한 물건을 파는 노점들이 몇 개 흐릿한 불빛 속에 서 있다. 주인들은 그다지 크게 호객을 하지 않는다. 건너편에는 어디론가 떠나는 미니버스들이 몇 대 서있고 그곳에서는 사람들이 악을 쓰며 누구가를 부른다. 차들은 그르렁 그르렁 할아버지 해소기침 같은 소리를 내며 힘들게 소리를 이어간다.
검정 커튼이 휘날리는 작은 점포 안에는 도박기계 세 대가 놓여있고 청년들이 잔뜩 행운을 기대하며 당기지만 돌아오는 건 매번 헛손질이다. 어느 도시의 뒷골목이나 이런 작은 기다림들이 그나마 팍팍한 하루의 삶을 지탱하게 해주는 작은 위안이 될 지도 모른다.
숙소에 가려고 손을 두어 번 위아래로 흔드니 금방 택시가 와 선다. 이곳은 영업용 택시보다 자가용 택시들이 훨씬 더 많다. 벤츠나 아우디도 흔하다. 그것을 이용하는 것이 더 일반적인 모습이다. 차 안에는 집으로 귀가하는 한 가족이 탔다. 가격을 물으니 어른들은 낯선 언어를 더듬거리며 대답을 못하는데, 초등학생쯤으로 보이는 어린 아이가 툭, 튀어나오더니 500팅게를 부른다. 이어 내가 외국인처럼 보이는지 1000팅게를 부르고 돌아서려 하자 800팅게를 부른다. 가격은 저렴하지만 사라져 가는 소년의 동심(童心)이 나를 더욱 슬프게 한다
. ⓒ 윤재훈

소련이 해체되고 나라는 독립된 지가 27년이 지났는데, 과연 누구를 위한 독립이었을까? 고위층과 눈치 빠른 자들만 더 잘 사는 세상이 되지 않았을까. 1991년 이 나라가 독립되고 한 대통령이 여태까지 장기집권을 하고 있다고 하니. 그나마 옆에 있는 키르키스탄에 비해 지하자원이 풍부해 나라의 경제를 매년 성장시키고 있다고 하니, 이 가벼운 자본주의 시대에 국민들은 그것하나로도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을까? 땅 밑는 무한정 지하자원이 묻혀있고, 카스피해에서는 매일 석유가 펑펑 쏟아져 나오고 있다고 하니 걱정거리 하나는 덜어낼 수도 있겠다. 지구의 자원이 과연 한 나라에 의해 독점될 수 있을까?
문득 통일이 되지 않으면 휴전선을 베고 눕겠다던 김구선생님의 말씀도 새삼 떠오르는데, 한반도는 미제의 비위를 마치던 친일파들이 아직도 떵떵거리며 더 잘 살고 있다. 여기에 철면피 같은 극렬 친일파 후손들은 친일을 해 하사받은 조국의 땅을 다시 달라는 소송까지 진행시키고 있다고 하니. 아직까지 진정한 해방은 이루어지지 않는 듯하다.
카자흐 국민 시인, 아바이 동상 . ⓒ 윤재훈

온통 나무숲에 둘러쌓인 도시, 쉬엄쉬엄 이곳의 유명한 시인인 <아바이>, 그의 이름을 딴 거리를 따라 숲길을 걷는다. 왼쪽 도로도, 오른쪽 도로도, 심지어 중앙로까지도 거대한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그 옆으로는 돌돌돌, 물이 흐른다. 피톤치드가 쏟아지고 음이온이 내 몸을 감싼다. 약간 어둠컴컴 하기까지 한 그 길을 따라 산행을 하듯 천천히 걷는다. 이런 숲속 도시가 어디에 또 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지베크 졸라Zhibeh zholy> 를 걷는다. 아르바트Arbat 도심 아래쪽 북쪽 부분에 위치한 보행자 전용도로로 모스크바 아르바트 거리의 알마티 버전이라고 한다. 양쪽으로 별로 필요할 것 같지 않은 기념품과 젊은 부부의 과일 가판대, 악사, 카페 등이 있고, 약간 컴컴한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조그만 가게들이 줄지어 서있다. 휴대폰이 필수품인 이 첨단시대에도 시계를 많이 판다.상인들은 그다지 친절하지 않다.
사회주의 체제에서 살아서 그러나. 굳이 내 것이 아니었던 시대, 사도 안사도 그만이었던 시대의 산물인가. 그러나 이제는 돈을 주고 사고파는 시대인데, 아직도 네가 필요하면 살 것 아니냐는 식이다. 자본주의의 서비스에 대한 개념이 아직 없는 것인지, 거리에는 온통 자국 글씨 뿐이고, 영어는 한 마디 없다. 대중이 모이는 식당, 터미널, 극장 등 어느 곳을 가도 마찬가지다.
트롤리 버스가 몇 대가 서는 걸 보니, 종점인 모양인데, 기사가 즉석에서 장대를 들고 돌아가는 선으로 교체하여 걸고 떠난다. 여자 운전사들도 있는데, 역시 거침이 없다
팔필로프 공원 . ⓒ 윤재훈

건너편에 <판필로프 공원>이 보인다. 이 이름은 1941년 모스크바 외곽의 마을에서 나치의 탱크와 맞서 싸우다 숨진 알마티 보병대의 28명의 병사를 <판필로프 영웅>들로 기념하고 있다. 동쪽으로는 전쟁기념관이 있다.
숲은 깊고 넓다. 산책하거나 이곳을 관통해서 목적지로 가는 사람들이 상당해 보인다. 10여분 걸어가니 가운데 공터가 나오고 오른쪽에는 알마티에서 유명한 <쟈코프 대성당>있는데, 내부는 화려한 성화 와 벽화로 복원되어있다. 건물은 갖가지 사탕색을 띄고 있어 오색찬란하며 오전 8시와 오후 5시에 미사가 있다.
이 건물은 모스크바의 상크트 바실리 대성당과 비슷하게 건축되었으며 알마티에 남아있는 소수의 제정러시아 시대 건축물 중 하나다. 1904년 AP 젠코프가 설계했으며 오로지 못까지도 나무만 사용해 지었다고 한다. 소련시절에는 점령자들의 뜻에 따라 박물관 및 콘서트홀로 사용되다가 1995년 러시아 정교회 성당이 되었단다. 그 큰 건물 전채를 지금은 포장을 씌워 공사중이다.
한 사내가 벤치에 앉아 아코디언 연주를 시작한다. 나를 보더니 국적을 묻고 <아리랑>을 연주한다. 사내의 눈치빠름에 동전을 넣지 않을 수가 없다. 그는 오랜 지기(知己)처럼 스스럼없이 말을 건네며 우리는 서로의 마음를 나눴다.
한 청년이 내게 다가오더니 밀짚모자을 쓰고 있는 나를 찍고 싶다며 연거푸 셔터를 눌러댄다, 마치 잠시 현지 로케를 온 스타가 된 기분이다. 연예인들의 기분이 이런 모양이다. 그와 서로 왓쳇를 나누었다.
판필로프의 용사들 . ⓒ 윤재훈

오른쪽으로 접어드니 나치 탱크에 맞서 함성을 지르며 막 벽을 뚫고 튀어나오려는 검은 색의 거대한 카자흐 전사가 있다. 그의 눈빛이 용맹하다. 구소련에 속한 15개 공화국에서 모인 병사들이 마치 소련 지도 바깥으로 튀어나오려는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꺼지지 않은 불꽃 . ⓒ 윤재훈

그 앞에는 <꺼지지 않은 불꽃>이 1917~20<러시아 내전>과 1941~45년 (2차 세계대전)당시 사라져 간 병사들을 추모하며 슬픈빛으로 이곳의 역사를 증명한다. 순국선열을 생각하듯 잠시 묵념을 한다.
악기 박물관 . ⓒ 윤재훈

앞쪽에는 인형의 집처럼 오밀조밀하고 소박한 목조 건물 한 채가 서있다. 1908에 지은 <카자흐 민속악기 박물관Kazakh Museum of Folk Musical Instruments>으로 이것 역시 성당건축가 젠코프의 작품이라고 한다. 전체적인 보수작업을 거쳐 2013년에 재개관 되었으며, 목조 하프와 뿔피리, 백파이프, 루트 비슷한 2현 돔브라, 비올라 같은 코비즈 등 카자흐 전통 악기들이 소박하게 놓여있으며 일부 악기는 연주법 강좌도 들을 수 있다.
악기 박물관에서 . ⓒ 윤재훈

막 들어가려는데, 아가씨 한 명이 다가와 한국 사람이냐고 묻더니 친구을 오라고 손짓을 해 사진을 찍자고 한다. 중앙아시아에서는 한류의 열풍이 대단하다고 하더니 그 열기가 전해진다. 드라마와 음악 등에 젊은이들이 열광하며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들도 넘쳐 난다.
악기 박물관 . ⓒ 윤재훈

입장료는 여행서에 나온 것보다 올라 500T이다. 놀랍게도 한국의 사물놀이를 비롯한 다른 악기들이 한 칸을 차지하고 있어, 양국의 우대를 증명하는 듯하다. 앞 건물에서 사람들이 우루루 나오고 있어 가보니 양쪽으로 공연장이 있고 막 무대가 끝난 모양이다. 공연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곳에서 카자흐의 전통문화를 엿볼 수 있겠다.
날이 저물어 가니 허기가 밀려온다. 낮에 그렇게 유쾌하게 지저귀던 새소리도 이미 잦아들었다. 공원을 나와 천천히 걷는다. 가게에서는 러시아 현지 한국공장에서 만들었다는 도시락라면이 보인다. 한글이 안보이는 것도 있는걸 보니 러시아 기업으로 완전히 넘어갔는지 궁금하다. 길거리에는 천지가 LG에어컨 냉각기가 있다

. ⓒ 윤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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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걸으니 유리창에 울긋불긋 꽃들이 붙여진 집이 있다. 들어가니 역시 뷔페식당이다. 자기가 먹을 만큼 음식을 시키고 카운터에서 돈을 내면 된다. 건너편 좌석에는 10대 소년과 소녀가 앉아 <소나기> 소설 같은 서툰 연애를 하고 있다. 두 번째인데 여기도 아가씨들이 참 불친절하다.
1000T3300원 정도면 한끼가 가능하다. . ⓒ 윤재훈

그럴 때마다 나는 오랫동안 중국을 여행하면서 그곳 아가씨들에게 감동할 정도로 받았던 친절이 잊혀지지 않는다. 심지어 잘 모르면 그 장소까지 데려다 주기도 하고, 차를 바꿔 타야할 경우 미덥지 않으면 버스비까지 내주면 같이 가 환승을 시켜놓고 가던 이름 모를 아가씨, 그들을 보면서 나는 중국의 미래를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었다.

덧붙이는 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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