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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마르티나(1930~ ). 동티모르 카사바우크 생, 1942 년, 12세, 3년간 동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마르티나(1930~ ). 동티모르 카사바우크 생, 1942 년, 12세, 3년간 동원.
ⓒ 안세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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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겹-지울 수 없는 흔적."

인권자주평화다짐비지키기시민모임과 일본군위안부할머니와함께하는마창진시민모임(대표 이경희)이 여는 안세홍 작가의 "아시아의 일본군 성노예 피해 여성들의 사진전" 제목이다.

사진전은 여성가족부 후원으로 17일부터 30일까지 경남 창원 마산합포구 창동예술촌 내 창동갤러리에서 열린다.

마창진시민모임이 일본군'위안부'피해자기림일(8월 14일)을 앞두고 마련한 행사다.

이경희 대표는 "안세홍 작가가 수년간 아시아 지역을 구석구석 온 몸으로 누비면서 담아 온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여성들의 아픔과 상처를 지역시민들과 널리 공유하려고 한다"고 했다.

이번 전시회에는 피해여성 사진 90점, 위안소와 각국의 상황, 피해자 지도 등 20점, 8명의 증언 영상(30분, 한일어 자막)이 선을 보인다. 관람객들은 '피해 여성에게 엽서쓰기'를 할 수 있다.

아시아 여러 나라의 피해여성이 등장한다. 동티모르 카사바우크 출신인 마르티나(1930 ~ )는 나이 12살 때인 1942 년에 '위안부'로 끌려가 3년간 동원되었다.

마르티나는 "부모님을 협박하고 때리며 피해자를 끌고 갔다. 비슷한 시기 다른 곳에 살던 언니도 끌려갔다. 아파도 치료도 약도 안 주고, 밥만 주었다. 당시의 일을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프다"고 증언했다.

중국 하이난성에서 태어났던 리메이진(1923~ )은 나이 16살이던 1940년에 3개월간 동원되었다. 그는 "당시 '위안부'라는 말을 몰랐다. 낮에는 비행장을 만드는 일을 했고, 밤에는 다른 사람들과 200m 떨어진 곳에 5~6명의 여성들을 머물게 했다. 매일 2~3 명의 일본군이 찾아왔다"고 증언했다.

필리핀 아라얏 출생인 루시아 루리즈(1930~ )는 1942년(12살)에 2개월간 동원되었다. 그는 "3명의 일본군에게 잡혀 당시 위안소로 사용하는 아랴얏 중앙학교로 갔다. 지금도 일본말이 들릴 때면 악몽에 빠진다. 일본 정부는 전쟁 중에 일어난 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한다"고 했다.

인도네시아 출신 이사 다인테네(1925~ )는 나이 20살이던 1945년에 끌려가 6개월간 동원되었다. 그는 "매주 일본군 2명이 와서 데려갔다. 일본군이 화를 내며 '빠게로'라고 할 때는 무서워 따를 수밖에 없었다. 6개월 후 도망쳐 네덜란드인 집에 숨어 지내다 전쟁이 끝나 집으로 돌아 왔다"고 했다.

북한 평안남도 출신인 이수단(1922~2016)은 18살이던 1940년에 끌려가 5년간 중국의 위안소에 동원되었다. 중국에 남겨진 조선인 이수단 피해자는 당시의 상처로 자신의 아이를 임신할 수 없었고, 2016 년 95세의 나이에 홀로 경로원에서 외로운 사투를 벌이다 운명을 달리했다.

안세홍 작가는 전시회와 관련해 낸 자료를 통해 "20여 년 전 한국의 '나눔의 집'에서 처음 만난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들의 가슴 속에서 묻어 나오는 한 맺힌 눈빛과 말을 잊을 수 없었다"며 "그것이 지금까지도 내가 그분들을 만나고 사진을 찍는 원동력이다"고 했다.

그는 "2001년에는 전쟁이 끝나고서도 척박한 중국에 버려져야만 했던 조선인 피해 여성들을 만나면서 나는 가슴 깊이 그녀들의 고통을 받아들였다"며 "아시아 여러 나라의 피해자들까지도 만날 수 있었다"고 했다.

2013년부터는 한국, 중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동티모르에서 90여 명의 생존 피해자들을 만났던 안 작가는 "낯선 이방인의 방문에도 그녀들은 스스럼없이 나를 맞아 주었고, 가슴 속에 묻어 두었던 눈물과 고통을 보여 주었다"고 했다.

그는 "팔뚝에 문신으로 새겨진 일본식 이름, 토막 난 기억 속에서도 그녀들의 증언은 생생하게 전해져 왔다. 80~90대의 고령이  되어 버린 그녀들의 가슴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응어리는 더  이상 지울 수 없는 흔적이 되어 버렸다"고 했다.

안세홍 작가는 "그녀들은 병들고, 혼자서는 무엇조차 할 수 없는 몸인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더 이상 누군가의 기억과 눈물이 아니라 이제는 모두의 역사와 인권으로 남아야 한다"며 "아시아의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들의 증언은 과거가 아닌, 우리가 풀어야 할 미래의 메시지이다"고 했다.

안세홍 작가.
 안세홍 작가.
ⓒ 안세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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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일본군 위안부, #안세홍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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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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